최상현 주필

 

태산이 울리는 것 같더니 겨우 쥐 한 마리 잡는 데 그치고 말았다. 자고로 그런 것을 태산동명서일필(泰山動鳴鼠一匹)이라 일러왔다. 동남권 신공항 후보지가 부산 가덕도냐 밀양이냐를 두고 10여년 이상 밀고 당기고 으르렁거려왔으나 결론은 슬그머니 이도 저도 아닌 샛길로 새버리고 말았다. 바로 제3의 방안이자 미지근한 절충안이며 성난 바다 같은 민심을 피하기 위한 샛길이요 도피로(逃避路)이며 궁여지책이라 할 수 있는 기존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더 말할 것 없이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오랫동안 사력을 다해 가덕도에 매달리는 부산과, 밀양에 집착하는 대구 경북 울산 경남의 대립으로 지역이 찢어지고 나라가 심각히 분열돼 우려를 자아내던 일이었다. 각각의 지자체와 지방의회 및 주민, 지역출신 국회의원, 심지어 전체 국민을 의식해야 하는 잠재 대선 주자까지 지역이기주의에 불타고 불을 붙이며 신공항 유치에 팔을 걷고 뛰어들었었다. 만약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정치와 정치인’은 빠지고 순수하게 경제논리와 지역발전 및 지역 민생 수요에 따라 비롯되고 추진돼왔다면 이처럼 지역주민들이 민란(民亂)이라도 일으킬 듯이 흥분되고 심각한 갈등과 분열 대립의 늪으로 빠져들 진 않았을 것이다. 정치논리와 정치이기주의가 주민들을 극도로 흥분케 하고 사태를 걷잡을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갔다는 의미다. 

따라서 어차피 처음부터 정치가 개입한 일이어서 결말도 정치적 절충으로 끝나고 만 것은 어쩌면 사필귀정이라 할 만하다. 두 지역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상황에서 한 지역만을 선택하고 다른 지역 주민에 굴욕을 안기는 것은 그것이 갖는 경제적 논리의 타당성과는 상관없이 세상의 평화를 앗아가는 것이 되며 정치적으로는 커다란 모험을 자초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부러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이것이 옹색하지만 불가피하게 안전한 절충안, 다시 말하면 ‘기존 공항의 확장’으로 결론을 내지 않을 수 없었던 배경이라 볼 수 있다. 워낙 사안이 민감한 성격을 띠고 있어 후보지 선정을 위한 평가에 객관성의 구색을 갖추기 위해 외국 전문기관 바로 프랑스 공항 공단에 삼시를 맡겼지만 그들 역시 사안의 복잡성과 민감성, 위험성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봐진다. 그렇긴 해도 옹색한 결론이라 해서 꼭 나쁜 것이라 한다면 공정한 평가는 될 수 없으며 기실 ‘기존 김해공항의 확장’으로 낙착된 결론은 그렇게 결론이 나지 않았을 때의 사태를 상상할 때 무난하지 않다고 볼 이유는 없을 것이다.

정치인은 자신을 표로 뽑아주는 지역주민과 그 주민들이 생활을 영위하는 지역 개발에 관심을 쏟지 않을 수 없음을 이해 못할 것은 없다. 다만 아무리 자신의 정치 이기적인 목적에 부합하더라도 터무니없는 지역이기주의에 편승하고 그것을 부채질하며 솔깃한 지역개발 공약으로 지역주민을 선동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안타깝지만 우리 풍토에서 그런 일들은 어떤 단위의 선거에서나 즉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에서도 비일비재하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 문제가 하마터면 우리를 헤어 나올 수 없는 심각한 지역갈등과 국론분열의 늪에 빠뜨릴 뻔 했던 것도 그 같은 배경을 갖고 출발했었기 때문이다. 

이러했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 그가 부산상공회의소를 방문했을 때 그곳 경제인들이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건의했었다. 이에 그가 ‘적당한 위치를 찾아보겠다’고 한 것이 지금과 같이 일이 전개되면서 결말이 나게 된 사태의 발단이었다. 급기야 2006년 노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동남권 신공항 건설문제는 공식적으로 검토에 들어갈 수 있었다. 불은 그렇게 붙여졌다. 그렇긴 했지만 5년 단임 짧은 정권에서 끝이 그리 쉽게 날 일은 아니었으며 계획에 대한 폐기 선언이 없는 한 다음 정권으로 숙제가 되어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일은 그렇게 이명박 대통령 정부로 이월돼 계획이 도리어 구체화됨으로써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계획이 자동적으로 이월된 것이 아니라 그 역시도 전국 최대의 표밭인 그곳의 신공항 건설을 공약으로 채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래서 이명박 정부는 드디어 2009년 부산 가덕도와 경남 밀양을 동남권 신공항 최종 후보지로 선정해 발표하게 된다. 이 같은 발표로 두 후보지를 대상으로 심사에 들어가면서 사태는 두 지역의 첨예한 대립이 시작돼 정치에 엄청난 부담을 안기고 나라 전체를 긴장에 빠뜨리는 의도하지 않은 수순을 따라 전개돼 나가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두 지역 모두 주민들은 들뜨고 기대는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2011년 4월 1일 두 지역 주민 모두에 실망스러운 뜻밖의 발표를 하게 된다. 가덕도와 밀양 두 지역이 모두 신공항 건설 입지로서 경제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돼 선정에서 탈락됐음을 발표하고 나선 것이다. 이에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은 백지화됐다. 그는 국민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결과적으로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처럼 그가 계획을 백지화한 진짜 이유로 그가 말한 경제성 부족에 주의가 쏠리기보다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지역 민심과 이로부터 초래되는 정치적 부담에 국민의 시선은 집중돼 있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후 백지화된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계획은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대선 공약으로 되살아난다. 솔직히 지역 표심을 모으기로는 이 만큼 쓸 만한 공약 재료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어떻든 그 대선 공약에 따라 박 대통령은 당선된 뒤인 2013년 신공항 건설재추진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공약 이행에 나선다. 그 결과는 비록 신공항 건설은 아니고 신공항 건설과 맞먹는 기존 공항의 확장에 불과하지만 대선 공약을 옹색하게나마 지킨 것이 되며 공약을 파기했다는 비난에서는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물론 여객수송과 산업적인 물류, 안보적인 측면에서 동남권 신공항 건설은 절대로 가치가 없거나 부족한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이번 일은 정치논리나 정치 이기적 목적으로 정치인들이 함부로 지역개발 공약을 남발하거나 거기에 개입해서는 안 됨을 가르치는 뼈저린 교훈이 돼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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