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유엔 사무총장은 세계의 대통령이라 불린다. 세계 어디를 가나 그는 국가 원수에 준하는 예우를 받으며 활약한다. 한국이 그런 출중한 세계적인 인물을 배출할 줄이야. 이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탄생이 현실화되고서야 실감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한국 정부는 그를 유엔 사무총장으로 만들기 위해 다변다각적인 외교 노력을 기울였다. 그 같은 정부의 노력과 융성하는 국운, 개인의 탁월한 역량과 운(運)이 합해져 세계의 대통령인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있었다. 그는 1기 5년 임기의 유엔 사무총장직을 연임하는 데 성공해 두 번째 임기의 거의 끝 무렵에 와 있다. 공교롭게도 그가 유엔을 떠나는 때는 한국의 새 대통령선거일 1년 전이다. 

이래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가 모국인 한국의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는 ‘대망론(大望論)’이 회자돼 관심을 끈 지 오래다. 그것은 국민의 여망이 구름처럼 모이는 뛰어난 인물의 부재로 고민하는 우리 정치계와 정당들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얘기다. 물론 세계를 무대로 활약한 반기문 총장은 한국의 대통령이 되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는 인물이며 그런 그가 우리의 대통령이 돼주기를 염원하는 사말들도 결코 만만치 않는 숫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를 둘러싸고 나오는 ‘대망론’은 가능성이 점차 농후해져는 가지만 뚜렷한 입장 표명은 없는 상황이어서 정말 그가 마음속에서 불태우는 그 자신의 ‘대망’을 말하는 것인지는 지금도 딱 잘라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다만 지금 당장에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떡 줄 사람은 말이 없는데도 꽃가마를 준비하고 김칫국부터 마시는 일부 사람들과 정당들의 그를 모셔오고자 하는 ‘대망’ 내지 ‘야망’인 것만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를 대통령으로 모시고자 하는 사람들과 정당들의 ‘대망’ 내지 ‘야망’이 이루어져 그의 대통령 입후보가 확실해질 때 그 너머로 그의 무지개 같은 ‘대망’도 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어떻든 반기문 총장은 아직 가타부타 뚝 부러지게 말을 하진 않는다. 노련한 외교관답게 연기는 피우지만 부정도 긍정도 않는 ‘NCND(neither confirm nor deny)’의 자세를 아슬아슬하게 견지해간다. 그럼에도 끈질기게 쏟아지는 두 가지 선택지의 질문, 즉 대통령에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에 대해 대통령에 ‘나온다’는 말을 한 일도 없지만 ‘안 나온다’는 말은 더 더욱 절대로 한 일이 없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는 집요한 질문에 의해 궁지에 몰리는 어떤 경우에도 ‘안 나온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의 의중은 이렇게 소리 없이 깊이깊이 흐르는 물과 같지만 그 물밑의 의미를 곰곰 씹어본다면 반 총장 의중의 강조점은 “‘안 나온다’고 말한 일이 절대로 없다”는 데에서 찾아질 수 있다고 봐진다. 바로 여기에 그의 진짜 속마음도 자리하고 있다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디선가 그를 향해 불어오고 그로부터 불어가기도 하는 ‘대망론’의 ‘바람’은 흔들리지도 않는 나무를 흔들려 공연히 불어제치는 바람이 아니다. 그 바람은 ‘나무가 가만히 있으려 하지만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고 하는 고색창연한 옛 고사성어(故事成語)에서와 같은 공연한 바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바람’에 대해서는 그 자신도 오직 ‘나무’나 귀찮고 성가시게 하고 짜증이나 나게 하는 그런 부질없는 성질의 바람이라고는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긴 그가 가타부타 뭐라 딱 잘라 말하기를 서두르지 않는 그의 ‘NCND’에 대해서는 당장은 유엔 사무총장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음을 세계에 보여주어야 하는 때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감할 만한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긴 해도 먹잇감을 노리는 굶주린 포식자(predator)들이 득실거리는 대초원 사바나에서와 같이, 공격수 저격수들이 사냥감을 기다리는 살벌한 풍토의 정치 검투장에 성급하게 몸을 드러내지 않아야겠다고 판단했다면 그것은 본능적인 자구책이며 지혜다. 그렇기에 그는 세계적으로 뚜렷했던 존재감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가까운 듯 먼 듯, 손에 닿을 듯 말 듯, 보일 듯 말 듯, 전설인 듯 현실인 듯 애매모호하게 있어왔던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반 총장이 한국에 왔다. 제주도에서 열리는 유엔 주관의 행사 참석이 방문 목적으로 표방됐지만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은 온통 그가 보라 하고 가리키는 허공의 달과 같은 유엔 행사가 아니라 그의 손가락과 얼굴과 그의 동정에 모아졌다. 이것이 무얼 시사하고 있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자명하다. 그가 애써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을 피하기 위해 선문답과 묵언(默言)의 정중동(靜中動), 신중한 행보를 보여 왔음에도 그가 배제된 다음 대선(大選)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국민들이 부쩍 늘고 있지 않은가. 일반의 예측이 이런 정도에 가 닿았다면 반 총장의 모국 방문을 두고 우리의 정당들과 정치세력들이 보이는 예민하며 상반된 반응들은 더 사실적(寫實的)이고 구체적인 판단과 전망에 근거해서라고 봐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이에 의해 어떤 당은 반 총장과의 접촉면과 교감의 확대를 꾀하려는 기회를 가지려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당 회의와 모임을 그가 묵는 제주도에서 열기로 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당은 반 총장의 영입 가능성이 희미해 보여서인지 그가 오랜 동안 거취를 명확히 하지 않은 것이 국민 사이에 ‘피로감’을 불러 ‘대통령 되기는 어렵다’고 폄하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솔직히 모든 당과 정치세력이 일찍부터 그와 인연을 맺으려 경쟁했던 것이 사실이어서 이제 와서 그를 폄하하는 것은 그를 빼앗기는 아픔에 ‘심통’을 부리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이 마당에 국민들에게 중요한 것은 정당들과 정치세력들의 그 같은 엇갈리는 반응이 아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그의 대선 참여는 훌륭한 지도자에 대한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일로서 반겨하지 않을 까닭이 없다. 다만 그가 자신의 정당을 만들어 출마하거나 어떤 당의 경선에 참여할 입장이 아니라면 ‘영입’이 유일한 방법일 수밖에 없는데 그럴 때라도 국민의 공감대를 최대한 확보하는 모양새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당이 그를 영입해 갈지라도 마찬가지다. 단적으로 말해 그의 영입이 어떤 당에서도 어떤 특정 계파의 권력과 기득권 유지의 연장책으로 비쳐지면 그것은 진정 국민의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도 누구에게도 정당하고 이로운 일이 될 수도 없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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