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전설의 복서도 죽어서는 다른 사람과 다름없이 공동묘지의 좁디좁은 한 뼘 묘역에 묻혔다. 장례식은 법석을 이루었지만 묘지는 초라했다. 장군이 죽으나 대통령이 죽으나 그들을 위한 특권 묘역을 제공하지 않는 미국에서는 추호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는 미국 내외에서 온 10여만 애도 인파가 참여한 가운데 그가 난 고향 켄터키 루이빌의 공동묘지에 묻혀 영면(永眠)에 들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많은 사람들이 그의 운구 행렬이 지나는 길과 묘지에 향기로운 꽃을 뿌리기도 했다. 이로 보아 그가 생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등대였으며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는지를 여실히 알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중에 허다한 사람들은 인종적으로, 사회 역학적으로 억눌리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알리의 장례식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 확정자 힐러리 클린턴의 남편이자 전 미국 대통령인 빌 클린턴이 참석해 주목을 끌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말하기를 “알리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고 인생에서 다양한 선택을 했다. 그것이 오늘 우리들을 이곳에 모이도록 했다”고 했다. 맞다. 알리가 만약 권투만의 세계에 갇혀 다양한 삶과 활동을 펼쳐 보이지 않았다면 그렇게 기록적으로 많은 인파를 그의 죽음에 끌어 모으지는 못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까지도 딸의 학교 행사 때문에 직접 참석은 못하는 대신 백악관 선임고문인 발레리 재릿을 통해 “알리 덕분에 나도 언젠가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용기를 갖게 됐었다”는 애도사를 대독하게 했다. 미국의 유명 코미디언 빌리 크리스털은 “알리는 미국의 어두운 밤에 주변의 모든 것들을 볼 수 있게 한 엄청난 번개였다”며 오바마의 애도사 의미와 일맥상통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한편 무슬림 의식으로 치러진 그의 장례식에는 ‘무슬림은 미국 입국을 금지 시키겠다’는 막말로 설화(舌禍)를 일으켰었던 공화당 대통령 후보 확정자 도널드 트럼프는 참석하지 않았다. 미국 역시 많은 인파가 운집하는 유명인의 장례식에 정치인이 참석하는 ‘문상정치(問喪政治)’가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우리나 또는 다른 어느 나라와도 하등 다를 것이 없다. 그런 점에서 힐러리는 자신의 대통령 만들기에 발 벗고 나선 남편을 대신 장례식에 보내 추도사를 하게 함으로써 흑인과 소수인종 유권자 및 알리를 사랑하는 수많은 팬들과 ‘공감’을 나누고 그들의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봐진다. 이에 비해 백인 블루 컬러(blue color)가 주 지지층인 트럼프는 애초부터 흑인과 히스패닉(hispanic) 등 소수인종 유권자들의 지지가 취약했었음에도 왜인지 이런 기회를 포착해 활용하지 않았다. 그것이 의도적이든 실수이든 트럼프는 뒤늦게 그 점을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알리의 장례식 때 보여준 정치인들의 동선(動線)이 흑인과 소수인종 유권자들의 표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와 있는 실정이어서 더욱 그럴 수 있다.

생전에 세상을 뒤흔들고 살던 알리는 단 한 번의 예외를 빼고는 결코 어떤 사람이나 무엇에 대해 힘들다는 말을 한 일이 없다. 단 한 번의 예외는 첫 번째 부인과의 부부싸움에 관한 것이었다.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싸움은 첫 번째 마누라와의 싸움이었다(My toughest fight was with my first wife).” 그는 결혼을 4번 했다. 그로부터 7남 2녀를 얻어 남겨두고 세상을 떴다. 하필 첫 번째 부인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데는 필시 곡절이 없을 수 없겠지만 전설의 챔피언이니 영웅이니 하는 평판과 달리 알리 역시 집에서는 그저 평범한 남편이요 아버지였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집을 나서면 자신은 말할 것 없고 자신의 주변을 둘러싸고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과 불평등에도 굴(屈)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움직이고 말하는 최고의 자유인이었으며 자기의 멋과 기세대로 산 당대 최고의 기고만장한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마음속 깊이 뿌리 내린 숙명적으로 가해지는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저항심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역설이라 할 수는 없다. 알리의 마음속에는 저항심이 용암처럼 펄펄 끓고 있었을 것 같다. 

그가 자주 허세에 가까운 기고만장함을 드러내곤 했던 것도 그런 배경과 인과관계가 닿아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그가 했던 이런 말이 그러하다. 링 위의 도전자들을 향해서다. “나를 이길 것이라고 꿈이라도 꾼다면 그 꿈에서 깨어나 나에게 사과하는 게 좋을 것이다(If you even dream of beating me, you better wake up and apologize)”라고 했다. 이보다 한 술 더 뜨는 말도 남겼다. “나는 단순히 세계 최고가 아니다. 난 그 두 배 이상이다. 나는 상대를 KO로 때려눕힐 뿐만 아니라 눕히고 싶은 라운드를 내가 선택하기 때문이다(I’m not mere the greatest, I’m double the greatest. Not only do I knock’em out, I pick the round).” 이런 말들은 진정한 자신감과 당당함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영락없는 허풍이요 허장성세다. 만약 이것이 허풍이요 허장성세였다면 그 속에 인기를 위한 ‘셀프 마케팅(self marketing)’ 내지 ‘셀프 프로모션(self promotion)’의 속셈이 다분히 작용돼 담겨 있지 않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알리가 단순히 허장성세하는 기고만장함을 못 뛰어넘었을 인물이라고는 결코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역시 한 때 핵주먹으로 명성을 떨쳤던 마이크 타이슨은 “신이 챔피언을 맞이하러 오셨다. 알리는 오랫동안 위대한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했다. 삶과 죽음은 이승에 육신이 존재하느냐 비존재하느냐의 물리적인 차이로서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불멸(不滅)의 죽음이라는 것도 있다. 타이슨의 말과 같이 알리가 이승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더라도 이승에 남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는 한은 알리는 이승을 흔적도 없이 떠난 것이 아니다. 이런 죽음이 말하자면 불명의 죽음이거나 이승을 떠났으되 여전히 이승에서 오랫동안 남은 사람들과 여전히 함께 사는 죽음이다. 이런 죽음은 쉽게 잊히는 보통의 죽음과 분명히 다른 죽음이다.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죽은 뒤의 무덤의 크고 작고가 아니라 생전에 어떻게 살았느냐, 즉 죽은 뒤에 남은 사람들이 고인의 죽음을 애통해하고 안타까워하게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리의 죽음은 가르쳐준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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