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한 카페에서 ‘한국교회 이단정죄기준,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신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토론회가 열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교단마다 이단 규정 제각각… 교파주의 폐해 커
30년 ‘이단 정죄’해온 예장통합, 사면기구 설치

종교법학회 “이단정죄 기준 이대로 좋은가”
장로교 이단 규정 158건, 다른 교파는 많아야 10건

9개 교단이 모두 ‘이단 규정’한 곳은 겨우 1곳
교단 “이단성 있다” vs 범교단 “이단으로 보기 어려워”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 1. 2009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백석 총회는 큰믿음교회 변승우 목사에 대해 이단으로 규정했다. 변 목사가 백석 교단의 교리와 상충해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해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한 것. 그러나 2010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변 목사에 대해 “범 교단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단으로 보기 어렵다”고 이단을 해제했다.

# 2. 2009년 예장 합신과 예장 통합은 크리스천투데이 설립자 장재형 목사에 대해 이단요소가 있다며 교류 금지를 선언하는 등 이단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2010년 10월 한기총은 전혀 이단성이 없다고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교회들이 한기총에 의해 줄줄이 이단 해제가 됐다. 이후에도 한기총은 ‘류광수 다락방’과 ‘평강제일교회 박윤식’ 등을 인정했다. 똑같은 하나님과 성경을 믿는 한국교회에서 교단은 이단으로 규정하고, 교단연합기구에서는 이단을 해제하는 해프닝이 계속돼온 것이다. 그런가 하면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했다가 해제하기도 했다.

이렇듯 한국개신교가 이단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최근 기존 흐름과는 다른 움직임이 읽히고 있다. 개신교 내 이단 규정으로 인한 폐단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찾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

◆이단 정죄해놓고 이제 와서야 특별사면

지난해 한국교회 장로교 양대 산맥 중 하나인 예장 통합 총회는 이단으로 규정됐던 교회에 대해 특별사면을 검토하는 기구를 설치하고 나섰다. 100회기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예장통합이 이단대책위원회를 통해 이단 규정을 해온 지 30여년 만이다. 억울하게 이단으로 규정됐거나 회개하는 이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라는 취지다.

그러나 통합 교단 내부에서는 이를 곱지 않게 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이단으로 규정했다가 해지를 하게 되면 결국 통합 이대위의 이단 규정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또 이단 규정을 했던 이대위 위원 목회자들에게는 오판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에 내부 목회자들은 딜레마에 빠진 것. 이 같은 상황에서 신학자들이 모호한 이단 기준과 판단에 대한 현실을 꼬집고 나섰다.

개신교 내부에서는 섣부른 이단 정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 의식이 일고 있다. 16일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한 카페에서 ‘한국교회 이단정죄기준,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신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교회 내 이단 정죄에 대한 현실을 교회사적으로 진단해보고 문제점을 공감하자는 차원이었다.

토론에는 현재 서울장신대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치고 있는 겸임교수 강희창 박사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에서 류광수 다락방에 대한 이단 해제 심문에 참여했던 종교법학회장 유장춘(새소망교회) 박사, 백석교단(현 예장대신)에서 활동하고 있는 숭실대 교회법학 전공 김정우 박사가 패널로 나섰다. 개신교 매체 법과교회 황규학 박사가 좌장을 맡았다.
 

▲ 각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곳. (출처: 2014년 평신도이단대책협의회 ‘주요 교단 이단대책위원회 연구보고 총회 결의 목록’) ⓒ천지일보(뉴스천지)

◆“이단 규정” vs “우리 교단은 아냐”

신학자들은 한국교회에서 유독 ‘이단’에 대한 규정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우 박사가 제시한 2014년 10월 평신도이단대책협의회의 ‘주요 교단 이단대책위원회 연구보고 총회 결의 목록’ 발표 자료에 따르면 장로교의 이단 규정 숫자는 타교단에 비해 월등히 많다. 예장 통합 45건, 예장 합동 32건, 예장 고신 37건, 기장 4건, 예장 합신 34건, 예장 대신 3건, 예장 백석 1건, 예장 고려개혁 1건 등 총 158건을 기록했다. 감리교가 1건, 성결교 20건(기성 19건, 예성 1건), 기침이 2건인 것에 비해 격차가 월등하다. 연합단체인 한기총이 이단으로 규정한 건은 총 6건이다. 일테면 한 교단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교회나 목회자가 다른 교단에서는 전혀 이단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각 교단수별 이단 규정 숫자를 보면 더 명백해진다.

특정 교회나 목회자에 대해 1개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사례는 35개였다. 그러나 2개 교단이 동시에 이단으로 지목한 사례를 18곳으로 대폭 줄었다. 이는 교단 수가 늘어남에 따라 점점 더 감소하다가 9개 교단이 동시에 이단이라고 지목한 곳은 1곳밖에 되지 않았다.

이렇듯 교단에 따라 다른 기준으로 이단을 규정함에도 교계에서 한 번 ‘이단’으로 낙인이 찍히면 한국교회는 물론 사회 전체에 불순한 집단으로 여겨지는 사례가 허다하다. 이에 개별교회들은 ‘이단’ 낙인이 찍히지 않기 위해 이대위를 보유한 큰 교단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한국교회에서 유독 심한 ‘이단’ 논란

그렇다면 이렇게 막강한 파괴력을 자랑하는 이단 규정은 어떤 기준으로 이뤄질까. 사실 세계교회에서는 이단 규정이라는 단어조차 논의에서 사라진지 오래라는 설명이다.

강희창 박사는 WCC에서의 이단 기준에 대해 “이단을 정죄한다고 하기보다 전통에 대한 동질감 같은 것을 의식하고 있다”며 특별한 이단 규정이 없다고 말했다. 김정우 박사는 “20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이 시작되며 인권이 신장되고 관용의 분위기 때문에 이단 논의가 현격하게 줄었다”며 “미국 장로교인 PCUSA에도 이단에 대한 규정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나마 이단이라고 규정할 기준이 있다는 한국 장로교 교단에서는 지침이나 기준보다 교단의 정치적인 분위기가 더 우선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유장춘 박사는 “(교단 내 정치적인 흐름을 모르고) 교단의 이단 해제 지침에 맞춰 (다락방 류광수 목사에 대해) 이단으로 보기 어렵다는 소견을 냈는데, 현실은 달랐다. 정직 1년을 당했다”고 토로했다. 유 박사는 한기총에서 다락방 류광수 목사에 대해 청문을 진행한 후 류 목사의 연이은 사과발언을 듣고 “이단으로 보기 어렵다”고 제출해 정직을 당하는 등 교단에서 징계를 받았다.
 

▲ 16일 서울 서초구 서초대로 한 카페에서 ‘한국교회 이단정죄기준,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신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토론회가 열렸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교단 입장 아닌 성경해석이 기준 돼야”

이날 신학자들은 이단을 규정하는 이대위의 소위 ‘감별사’ 목회자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강 박사는 이단으로 정죄했다가 그 판단을 번복한 경우에 대해 “정죄한 쪽이 무책임했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박사는 제임스 스펜서의 저서 ‘헤레시 헌터스(이단 사냥꾼)’을 언급하며 “비판하는 사람들은 성숙한 분별력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단지 편협한 신학의 잣대만으로 무차별한 돌을 던지는 것은 이단 사냥꾼”이라고 꼬집었다.

이단 전문가로 불리는 목회자들의 전문성에 대한 질문에는 패널들이 말을 아꼈다. 다만 강 박사는 “성경을 가감하면 이단이 된다고 하는데 가감하지 않고도 다른 구절을 들이대면 다른 내용이 될 수 있다”며 “성경해석이 판단의 중심이 돼야 하는데 교단적 입장과 성경구절을 연결해서 판단의 기준으로 삼았다. 더 깊이와 넓이를 더한 판단이 중심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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