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시론] 그 시대가 낳은 문학작품은 그 시대를 보는 ‘가늠자’다
[천지일보 시론] 그 시대가 낳은 문학작품은 그 시대를 보는 ‘가늠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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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 시대가 탄생시킨 문학이 있다. 그 문학은 후대가 그 시대를 들여다보게 하는 창(窓)이 된다. 조선조 광해군 때, 사회제도의 불합리성을 지적한 정치사회소설 ‘홍길동전’이 그 한 예다. 홍길동전은 시대의 풍운아이면서도 이단아였던 허균에 의해 지어진 최초의 국문소설이기도 하다. 먼저 저자 허균의 면모를 살펴보면, 당대 재상 허엽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서자(庶子)라는 신분으로 인해 순탄치만은 않은 인생역정을 살았던 정치인이며, 나아가 당대 최고의 여성운동가이면서 여류 시인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허난설헌의 이복동생이다.

또 그는 당대 최고의 시재로 손꼽히던 ‘이달’의 문하생이었으며, 스승인 이달 역시 서자 출신이라는 신분의 벽으로 인해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한 인물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홍길동이 서자인 것은 스승의 불행을 문학 작품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허균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허균은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으로 불교가 핍박받던 시절, 오히려 불교에 호의적이었으며, 그 관계로 승려와 서자들과 가까이 교류했으며, 황진이와 쌍벽을 이루는 기생 ‘매창’과도 정신적 교감을 가져왔던 인물이다. 이로 보아 허균은 당시 시대가 핍박하고 배척하는 대상들과 오히려 더 가까이 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지금도 강릉시 초당동 솔밭에는 허균의 생가와 함께 그의 아버지 허엽과 누이 허난설헌, 형 허성의 향기가 짙게 묻어나고 있으며, 경포호수 건너편 신사임당이 기거했던 오죽헌의 솔향기와 왕래하고 있다.

허균은 홍길동전을 통해 그 시대가 해결하지 못하는 모순된 정치와 사회구조를 타파하고자 했던 어찌 보면 시대가 낳은 괴물이었고 이단아였다.

소설에서 길동은 온갖 도술과 재능을 갖춘 인물로 묘사되고 있으나, 서자 출신이라는 이유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등 사회적 편견과 제약을 받게 되고, 가족들마저 그의 재능을 시기하고, 나아가 죽이려고까지 하자 도망을 가게 된다. 도망 나온 길동은 탐관오리(貪官汚吏, 재물을 탐하고 행실이 깨끗하지 못한 관리)를 징벌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등 활빈당(活貧黨)의 우두머리 곧 의적(義賊)이 된다. 이러한 지경이 되자 임금은 길동을 수배하나 방법을 찾지 못하고, 결국 회유에 나섰고, 병조판서 자리까지 제수 받으나 왕의 청을 거부하고 조선을 떠나 편견과 모순이 사라진 율도국(栗島國, 허균이 가상으로 설정한 이상 사회) 즉, 이상향(理想鄕)을 건설한다. 이 율도국은 모든 백성이 평화롭게 살 수 있고 건강한 정치가 이뤄지는 유토피아인 것이다.

요즘 이 홍길동전을 연상케 하는 드라마 한 편이 있다. KBS2 월화드라마 ‘동네 변호사 조들호’다. 재벌 회장이 돈의 위력과 권력으로 정치와 사회의 온갖 부정과 병폐를 주도해 가는 가운데, 명예와 권력의 상징인 검사를 총괄하는 검사장과 자신의 모든 부정과 비리를 온몸으로 대변해 줄 최고의 로펌을 양손에 쥐고 법과 질서를 비웃기라도 하듯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가운데, 최고의 영예를 누리던 검사 조들호는 내부의 비리를 알고 동네 변호사가 돼 내부 고발자로 변신해 권력이 된 거대한 세력과 싸우는 드라마다. 이 드라마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주인공 조들호(박신양 분)의 역할은 현실 불가능한 얘기라는 점이다. 그러나 작가는 부패한 세상과 맞서며 돈키호테적 성격을 띤 주인공의 캐릭터를 통해 누군가는 실제 그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대리만족을 노렸을 것이다. 오늘날 부패와 부정이 난무한 이 시대를 풍자한 드라마 조들호와 약 사백년 전 허균에 의해 풍자된 소설 홍길동전은 분명 닮은 꼴이다. 시대적 갭은 있어도 정치와 사회의 모순과 싸워야 하는 사정은 결코 다르지 않았다.

어찌 정치와 사회의 모순뿐이겠는가. 과거 가톨릭의 주교들은 왕족들이었다. 이는 애초부터 종교가 종교의 본질보다 권력의 상징이었음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결국 이로 인해 가톨릭은 돈과 명예와 권력이라는 부패의 길을 걷게 됐으며, 나아가 개혁의 대상이 됐다. 이같이 종교의 본질을 떠난 모순된 가톨릭의 종교현실을 지적하고 거기서 나온 것이 바로 오늘날 개신교다. 그러나 신앙의 본질은 온데간데없고 사람의 욕심을 쫓아 사분오열된 오늘날 개신교는 그들이 지적한 가톨릭의 부패상보다 더 추한 몰골을 보이며 더 큰 개혁의 주된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약 사백년 전 허균은 홍길동을 통해, 오늘날 작가 이향희는 동네 변호사 조들호를 통해, 법과 질서가 바로 서고 모두가 평등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편견과 모순이 사라진 세상, 평화의 세계, 건강한 사회, 종교의 자유가 있고 거짓이 사라지고 진리가 온 세상을 뒤덮는 그러한 세계를 염두에 뒀을 것이다. 그러한 세계가 바로 이 땅에 펼쳐질 진정한 유토피아며 이상의 세계 곧 허균이 꿈꿨던 율도국이 아닐까. 그 시대가 낳은 문학작품은 그 시대를 보는 가늠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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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eejirerr 2016-05-12 12:56:53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 생각했는데 그러고 보니 시대를 반영하는 문학작품이라는 말씀에 공감이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