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13 총선’은 한국 정치사의 이정표가 됐으며, 한국 정치의 지형을 바꿨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많은 전문가와 전문기관 그리고 언론이 앞다퉈 내놓는 분석이 이를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또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도 그러하다. 실제 총선 결과에 대해 국민 10명 중 7명이 ‘만족하다’고 했으며, 심지어 보수층 절반 이상이 ‘만족하다’고 한국일보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한 유권자 인식조사에서 답했다. 우선은 16년 만에 찾아온 ‘여소야대’의 정치구도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며, 이러한 정치구도를 만들어낸 유권자 분포와 유권자 의식이 그 어느 때보다 확연한 차이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몇 가지를 살펴보면 유권자 수가 전체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는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발생적 현상이면서, 결국 정치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는 60세 이상의 고령자의 증가로 나타나게 됐다. 이 같은 현상은 정치를 바라보는 국민의 눈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것이며, 나아가 굴곡진 정치역경과 함께해 오면서 많은 경험을 토대로 정치를 바라보는 정치의식이 그만큼 높아지고 변화돼 간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지표가 돼 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중 가장 괄목할만한 특징은 병폐이면서도 전통과 문화로 고착화돼 내려오던 지역주의에 의한 지역구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는 점이다. 이는 지역과 패권이 아니라 누구든 지역주민 내지 국민의 눈에 들고 진실과 실력과 능력과 헌신의 자세를 가졌느냐가 관건이 되는 정치의식의 향상에서 온 결과로 봐야 한다. 야권의 분열은 부정적 측면도 있겠으나 정치구도의 긍정적 변화를 예고하는 분수령이 됐다는 분석도 이러한 맥락에서라 하겠다. 즉, 고질병과 같았던 호남과 광주라는 야권의 아성(牙聲)도 깨질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됐으며, 여권의 마지노선과 같았던 대구와 부산지역도 야권 후보의 진실과 진정성에 지역 유권자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야 말았다는 위대한 정치의식을 엿볼 수 있는 선거였다.

다시 말해 여권과 야권의 아성에서 승리한 후보자들은 후보자 개인의 승리로 끝내기는 분명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다. 지역주의에 갇혀 있던 가면을 벗어 버리고 후보 개인의 역량과 됨됨이라는 인물을 보고, 나아가 지역과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유권자의 향상된 정치 수준이 승리한 것이다. 특히 북한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탈북자 망명 이슈 등 북풍에도 요동치 않는 국민 의식이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지역은 야권 진입을 허용하지 않던 철옹성(鐵甕城)과 같은 절대적 보루(堡壘)였으나, 더민주의 김부겸 후보의 끈질긴 도전이 준 감동적 승리를 포함한 야권 1명과 비박 2명 등에게 안방을 내줌으로써 지역정치의 제방 뚝은 허물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 정권의 정치적 고향이면서 보수의 심장과 같은 대구의 패배가 갖는 의미가 남다른 것은 대구의 패배가 곧 새누리당의 4.13 총선패배의 원인이자 상징이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선거 결과는 지역주의와 함께 좌우 대립구도를 타파하며, 이념과 노선의 와해를 가져오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대신 경제정책의 대결과 안보 정책의 강온 나아가 소위 중도를 앞세운 국민의당의 출현과 같이 합리적 중도화 추세로 정치지형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됨으로써, 보다 선진화된 정치대결 구도로 이어질 전망도 해 봄직하다.

중요한 것은 4.13 총선결과가 낳은 3당 체제가 인위적이라 할 수도 있겠으나 시대와 국민의 여망이 담긴 자연발생적 정치 재편이라는 점을 겸허한 자세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선거의 결과가 만들어낸 구도 속에서 국민이 어떠한 정치를 요구하는지를 숙고하며 국민의 정치, 국민에 의한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해 나갈 수 있을지는 숙제로 남겨졌다. 이젠 정치뿐만이 아니다. 정치 사회 종교 등 모든 분야에서도 편협된 생각과 의식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보다 변화되고 발전된 선진문화국민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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