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피린

김명기(1969~  )

대청봉 찬 서리 품 안에 보듬고
아스피린 한 알로 잠재우시는 어머니

설악의 나무들이 우우우 동해로 몰려와
겨울옷을 벗고
첨벙첨벙 물놀이 하는 날이면
동해 길은 온통 안개 꽃밭입니다.
이때쯤이면
당신의 관절에 일던 바람도 덜커덩 문턱을 넘어, 우르르 동해로 달려가
저마다 수평선이 되었다가 배경이 되었다가 슬며시 안개 꽃밭 일구며, 어머니

당신의 잠 속에
아스피린 알알이 안개꽃 되어 흰 눈처럼 쌓입니다.

 

[시평]

옛 어른들은 관절이 아파도, 또 머리가 아파도, 어디가 쑤셔도 다만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 아스피린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셨다. 그래서 아스피린이 만병통치약인 양 이야기되던 시절이 없지 않아 있었다.

대청봉 찬 서리 품에 보듬고, 다만 아스피린 하나로 온몸 삭신 아픔을 다스리며 잠을 청하시는 어머니, 이런 시리고 고된 삶이 어머니의 삶이었다. 온몸을 뒤흔들던 설악의 추위를 넘어온 바람은, 다시 동해로 몰려가, 아스라이 멀리 위태, 위태 걸려 있는 수평선이 되었다가, 아득한 안개의 꽃밭이 되는, 아 아 어머니, 그 아픔을 다스리던 아스피린들. 

오늘도 어머니 당신의 잠 속에 안개꽃이 되어 흰 눈처럼, 아스피린 알알이 그렇게 쌓이고 있습니까. 어머니 아픔과 슬픔의 그 알약. 어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슬픔의 알약, 아스피린, 오늘도 우리들 가슴에 아프게 쌓이고 있습니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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