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양반

유안진(1941~  )

평생 출퇴근하며 살아도

집사람이라고 불러주었는데

나는 왜 그리 모질게 호칭했던가
바깥채도 바깥방도 없는 집에서
안방 같이 비비대고 살면서도
바깥양반!
기어코 이 세상바깥으로 내몰고 말았나

가슴 머리 눈 코 입 귀 모두가
더욱 그의 점령지인데
집사람도 혼자 바깥에서 밥 사 먹고 살며
때 없이 눈물제문(祭文) 숨겨 쓰다 지운다.

[시평]

‘바깥양반, 집사람’, 이 호칭들 모두는 부부가 서로를 부르는 소리이다. 남편은 밖에서 일을 하니 ‘바깥양반’, 부인은 안에서 집안일을 하니 ‘집사람’. 그러나 아무리 하루 종일 밖에서 일을 한다고 해도, 남편을 그저 ‘바깥양반’이라고 부르는 것이 왠지 이상하다. 마치 밖에나 있는 사람, 그러므로 늘 밖으로만 떠도는 사람. 아니, 아니 나와는 어쩐지 서로 어울리지 못하고 밖에서 겉도는 사람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제 정말 밖으로, 그 밖에서도 더 멀리, 멀리, 그 남편 떠나고 나니, 언제고 바깥양반이라고만 불렀던 자신이 후회가 되기도 한다. 안방에서 함께 몸 비비대고 살면서도, ‘바깥양반!’ 이렇게 부르기만 하던 그 사람.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사람, 아니 기어코 이 세상 바깥으로 내몰고 만 듯한, 그래서 스스로의 자책의 마음이 드는 그 사람. 그 사람, 아무 뜻 없이 그저 ‘바깥양반’이라고만 불렀던 그 사실이 오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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