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등弔燈

신현정(1948~2009)

감나무 가장이에 높다랗게 달린 홍시같이

해 뜨는 곳과 해 저무는 곳이 한 꼭지에 모인 빛깔,

방금 문밖에 내걸렸다

 

[시평]

지금은 보기가 힘든 광경이지만, 예전에는 집에 상사(喪事)가 나면, 대문에 조등(弔燈)을 내다 걸어놓았다. 빨간 불빛의 등이었다. 붉고 은은한 불빛이 왠지 침울한 분위를 자아낸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는 상중(喪中)’입니다. 하며 슬픈 눈빛을 보낸다.

이런 조등을 높은 가지 끝에 아슬아슬 매달려 있는 연시(軟柹)에 시인은 비유를 한다. 높은 가지 꼭대기에 간당간당 매달린 까치밥은, 높이 자리하고 있어서 해가 뜨는 곳도, 또 해가 지는 곳도 모두를 바라볼 수가 있다. 그래서 까치밥은 뜨는 햇살, 지는 햇살에 비추어 빨간빛이 더욱 선명해진다. 아, 아 어쩌면 조등은 해가 뜨는 곳, 즉 모든 것이 태어나는 곳과 해가 지는 곳, 즉 모든 것이 죽어서 돌아가는 곳, 이 모두를 끌어안고는, 높은 가지에 간당간당 매어달린 까치밥과 같은 것은 아닌지.

오늘 화자(話者)는 조등을 문밖에 내다 걸었다. 한 생애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하나의 빛으로 집약된, 그런 빛을 은은히 들어내듯, 불빛을 밝히고 있는 조등, 방금 내다 걸어놓고는, 길지만, 결코 길지 않은 한 생애를 살다간 사람을 잠시 생각한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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