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도 각지서 이른 아침 몰려와
번호표 받으려 3시간 반씩 대기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설 연휴 첫날인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줄서고 있다. ⓒ천지일보 2024.02.09.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설 연휴 첫날인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줄서고 있다. ⓒ천지일보 2024.02.09.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물가는 비싼데 주머니에 들어오는 돈은 없지. 설을 어떻게 행복하게 잘 지낼 수가 있겠어?”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난 80대 노인은 돌아온 설 명절이 반갑지 않다는 듯 이렇게 되물었다. 그는 “자식들이 조금씩 용돈 줘도 아플 때 병원 가야 해서 쓸 수가 없다”면서 “사람 사는 게 아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물가의 찬 바람이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더욱 거세게 불고 있다. 이날 탑골공원은 설 연휴 첫날에도 끼니를 해결하러 찾아온 노인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원각사 무료 급식소 앞으로 두툼한 패딩 점퍼, 마스크, 모자 등으로 중무장한 노인들이 줄을 길게 늘어섰다. 이른 아침부터 경기 부천, 의정부, 충남 천안 등 각지에서 몰려온 노인들에게 번호표가 보상처럼 쥐어졌다. 번호표는 280번에서 끊겼다.

급식소 안에는 노인 20여명이 독서실처럼 칸막이로 막힌 식탁에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이날 점심 메뉴는 비빔밥. 노인들은 등에 멘 배낭도 풀어놓지 않은 채 말없이 식사했다. 식사를 마친 노인들은 컵라면과 떡국떡, 두유가 담긴 간식 봉지를 받아 들고 급식소를 나섰다. 일부 노인들은 탑골공원 서편 또 다른 무료 급식소에서 주는 도시락을 받으러 헐레벌떡 달려가기도 했다.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설 연휴 첫날인 9일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 급식소에서 노인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2.09.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설 연휴 첫날인 9일 서울 종로구 원각사 무료 급식소에서 노인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4.02.09.

경기 구리시에 사는 서순택(가명, 남)씨는 이날 무료 급식을 먹으러 오전 7시 20분에 전철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서씨는 “오전 8시부터 번호표 탈 때까지 3시간 반은 기다리다가 점심 먹고 간다”며 “다리가 성하고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여기 와서 밥이라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89번째 번호표를 교통카드 목걸이에 꽂아 걸고 있던 함동순(87)씨는 “설 연휴에도 노인들 별거 없다”면서 “그냥 무료 급식소 와서 이렇게 먹고 가는 거지”라고 말했다.

김도형(가명)씨는 “여기(탑골공원)에 오는 사람들은 거의 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라며 “애들이 있다고 해도 설에 왔다가 그냥 가버린다. 옛날하고는 틀리다(다르다)”고 씁쓸해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는 전년보다 46만여명 늘어난 973만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인구의 약 19%를 차지했다. 그러나 고령층 소득 빈곤율은 지난 2020년 기준 40.4%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인 14.2%보다 3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설 연휴 첫날인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줄서고 있다. ⓒ천지일보 2024.02.09.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설 연휴 첫날인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줄서고 있다. ⓒ천지일보 2024.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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