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 1위
10명 중 4명 중위 소득 50% 이하
종로 탑골공원서 ‘멍’때리는 노인들
“수급비 깎일까 일하고 싶어도 못 해”
쪽방서 노년 보내는 독거노인들

고령화 시대를 넘어 ‘초고령화 시대’를 향하고 있다. 전체 인구 중 노인 인구는 18%를 넘어 20%에 달할 전망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동시에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어 노인 인구의 비중은 급격히 커지고 있다. 노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복지혜택이 지원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비한 부분은 존재한다. 고령화 기획을 통해 문제점을 조명해 보고 대책을 제시한다. 이번 호는 노인 빈곤의 실태를 살펴본다.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의 한 고물상. ⓒ천지일보 2023.09.07.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의 한 고물상. ⓒ천지일보 2023.09.07.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남들은 500만원 갖고 산다는데 우리는 60~70만원 갖고 겨우 사니 생활에 편차가 얼마나 많아. 죽지 못해 사는 거지. 안 그래?”

지난 1일 서울 관악구 대학동의 한 공원에서 80대 오일영(가명)씨가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세워둔 채 숨을 돌리고 있었다. 오씨는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 고물상에 가서 리어카를 빌린 뒤 삼성동, 대학동 시장, 서림동 등 신림 일대를 돈다. 폐지가 있는 곳을 찾아 발길이 닿는 대로 다니다 보면 밤 9시가 넘는다. 오씨는 “이렇게 다녀도 돈은 못 줍는다”며 씁쓸해했다.

오씨가 폐지를 주워서 버는 돈은 한 달에 10~30만원. 여기에 오씨와 부인의 기초노령연금 각 25만원을 더해 약 60~80만원으로 한 달을 살아간다.

오씨는 “옛날에 (폐지가 1㎏당) 130원 할 때는 그래도 한 50만원은 벌었다”며 “지금은 킬로(1㎏)에 60원이라 안 좋다”고 푸념했다.

‘2022년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5년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 고령자인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그에 비해 노인 빈곤에 대한 뚜렷한 대책은 보이질 않는다. 지난 2018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3.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이는 고령층 10명 중 4명은 중위 소득 50% 이하라는 뜻이다.

본지는 노인 빈곤 문제의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30일부터 지난 1일까지 돈의동 쪽방촌부터 시작해 종로 탑골공원, 대학동 고시촌 등을 다니며 노인들을 만나봤다.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뒤편에 노인들이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07.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뒤편에 노인들이 무료 급식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07.

◆독거노인 10명 중 7명 ‘빈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약 40~50명의 노인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공원 벤치 곳곳에는 노인들이 홀로 멍하게 앉아있었다. 최기태(가명)씨도 그중 한 명이었다. 서울 용산구에 사는 최씨는 집 근처 노인복지관에서 점심을 해결한 뒤 여기저기 떠돌다가 오후 3~4시가 되면 집에 들어간다.

최씨는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다. 할 일이 없어 돌아다닌다는 최씨에게 노인 일자리 사업에 관해 이야기하자 “수급자한테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나이 많은 사람 중에 돈이나 재산 좀 있는 사람들은 (일을 하는 게) 보탬이 되지만 수급자들은 돈을 벌면 수급비에서 다 깎여버린다”고 말했다.

그에게 가족에 관해 묻자 “이혼한 지 한 10년 됐다”며 “자꾸 묻지 말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떴다.

독거노인의 빈곤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2022년 빈곤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층 1인 가구의 빈곤율은 72.1%로 나타났다. 독거노인 10명 중 7명 이상이 빈곤 상태에 처해 있다. 50~64세 중년층 38.7%, 35~49세 장년층 19.5%, 19~34세 청년층 20.2% 등과 비교해 고령층의 빈곤율은 매우 높았다.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서울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 ⓒ천지일보 2023.09.07.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서울 관악구 대학동 고시촌 ⓒ천지일보 2023.09.07.

◆열악한 주거지에 사는 노인들

혼자 사는 노인들이 지내는 곳 중 가장 열악한 곳은 쪽방촌, 고시원 등이다.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는 703가구 중 490가구에 노인이 살고 있다. 한 달에 평균 23~26만원을 내면 보증금 없이 이곳에 살 수 있다. 지난달 30일 돈의동 쪽방촌을 찾아 홀로 사는 노인들을 만났다.

87세 김형태(가명)씨는 돈의동 쪽방촌의 터줏대감이다. 20여년 전 좋지 않은 일을 겪은 뒤 가족과 연을 끊고 혼자 쪽방에 들어왔다. 가족들은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한 평 남짓한 좁은 방은 김씨가 앉을 공간만 겨우 남겨둔 채 살림살이로 가득 차 있었다. 방 안에 들어가지 못한 살림살이가 문밖까지 삐져나와 있었다. 입구에는 양파 한 망이 걸려 있고 신발 옆에도 반찬통이 놓여있었다.

김씨는 매달 50만원씩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다. 이 중 절반은 월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 한 달간 생활한다. 하루 한 끼는 쪽방상담소에서 주는 식권으로 해결하고 나머지는 직접 밥을 해서 먹는다.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20년간 산 김형태(가명, 87)씨가 방에 앉아있다. ⓒ천지일보 2023.09.07.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 20년간 산 김형태(가명, 87)씨가 방에 앉아있다. ⓒ천지일보 2023.09.07.

쪽방촌 주민 중 수급비를 받으면 술 사 먹는 데 쓰는 사람도 있지만 김씨는 입에 술을 대지 않는다. 김씨는 청량리에 있는 시간당 4000원짜리 당구장에 가서 당구를 가르쳐 주고 오는 등 취미 생활로 적적함을 달래고 있다.

김씨는 “어렵지만 극복하고 사는 데가 여기(쪽방촌)”라며 “주어진 운명 속에서 요령껏 살면 된다”고 말했다.

바로 옆 건물 쪽방에 사는 80대 안숙자(가명)씨의 사정은 좀 더 나은 편이었다. 안씨가 사는 곳은 월세가 다른 쪽방보다 2배 더 비싼 대신 방안에 화장실, 싱크대가 딸려있었다. 안씨는 기초생활수급비 90만원 중 50만원은 월세로 내고 나머지 40만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안씨는 “월세 24~25만원 주는 집은 화장실도 가스도 없이 혼자 겨우 드러누울 수 있다”며 “다른 집에 비하면 이 집은 대궐”이라고 말했다.

과거에 편물, 떡볶이 장사를 했던 안씨의 방 한편에는 커다란 검은색 봉투가 있었다. 평화시장에서 원가 1만원에 떼온 갖가지 모자가 들어있었다. 안씨가 봉투에서 물건을 꺼내 보여주며 말했다. “뭘 하고 싶어도 못 해. 수급 잘리면 어떻게 할 거야. 혼자 사는데 돈 줄 사람도 없고….”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서울 중구 중림동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줍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07.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서울 중구 중림동에서 한 노인이 폐지를 줍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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