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빈곤층 66만명 달해… 상당수 폐지 수집
하루 평균 12.3㎞, 11시간 노동해 약 1만원 벌어
공공 일자리 늘린다지만 폐지 수집 원천 해결돼야
“노인 일자리 사업 참여 돕거나 보호‧돌봄 지원해야”

고령화 시대를 넘어 ‘초고령화 시대’를 향하고 있다. 전체 인구 중 노인 인구는 18%를 넘어 20%에 달할 전망이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동시에 출산율이 감소하고 있어 노인 인구의 비중은 급격히 커지고 있다. 노인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복지혜택이 지원되고 있지만 여전히 미비한 부분은 존재한다. 고령화 기획을 통해 문제점을 조명해 보고 대책을 제시한다.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김종태(95)씨가 지난 15일 서울 금천구에서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있다. 김씨는 금천시니어클럽에 소속돼 민간형 재활용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다. 김씨가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폐지를 주워 한 달에 버는 돈은 약 50만원. 여기에 시니어클럽에서 주는 보조금 20만원을 추가로 받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1.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김종태(95)씨가 지난 15일 서울 금천구에서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있다. 김씨는 금천시니어클럽에 소속돼 민간형 재활용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다. 김씨가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폐지를 주워 한 달에 버는 돈은 약 50만원. 여기에 시니어클럽에서 주는 보조금 20만원을 추가로 받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1.

[천지일보=김민희, 이한빛 기자] “기초노령연금 25만원씩 받아 부부 합하면 50만원. 여기에 폐짓값으로 한 달에 10만원. 이거 갖고 겨우 먹고 살아.”

지난 15일 서울 금천구의 대로변에서 현혜순(가명, 89)씨가 자신의 몸집만 한 카트에 폐지를 실으며 말했다. 현씨는 보건소에서 준 형광 조끼를 입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폐지를 줍는다. 카트는 현씨의 생계 수단이면서 아픈 다리를 의지하는 보행기 역할도 한다. 현씨는 “다리 아파도 하나라도 주우려고 자박거리고 돌아다닌다”며 “요놈(카트)에다 잡고 의지해서 걷는다”고 말했다.

현씨가 이용하는 고물상의 폐지 가격은 1㎏당 60원. 다른 노인들은 리어카에 폐지를 100㎏씩 실어 나르며 6000원이라도 벌지만, 현씨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하루 3000원이다. 현씨는 “종일 해서 빵 한 개도 못 산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종태(95)씨는 금천구에서 폐지 수집하는 노인 중 가장 고령이다. 김씨는 민간형 노인 일자리 사업단에 참여해 폐지 수집을 하고 있다. 아침 6시부터 저녁 7시까지 폐지 100㎏을 주워 한 달에 50만원을 벌면 사업단에서 약 20만원을 지원해 준다. 김씨는 “이웃 사람들이 폐지 팔아서 쓰라고 갖다준다”며 “여러 곳에서 도와준 덕에 살아간다”고 말했다.

김씨의 형편은 현씨만큼 열악하진 않았지만 90대 노인의 하루 12시간 노동의 대가로 턱없이 적은 금액을 받고 있었다.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김종태(95)씨가 지난 15일 서울 금천구에서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있다. 김씨는 금천시니어클럽에 소속돼 민간형 재활용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다. 김씨가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폐지를 주워 한 달에 버는 돈은 약 50만원. 여기에 시니어클럽에서 주는 보조금 20만원을 추가로 받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1.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김종태(95)씨가 지난 15일 서울 금천구에서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끌고 있다. 김씨는 금천시니어클럽에 소속돼 민간형 재활용사업단에 참여하고 있다. 김씨가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폐지를 주워 한 달에 버는 돈은 약 50만원. 여기에 시니어클럽에서 주는 보조금 20만원을 추가로 받고 있다. ⓒ천지일보 2023.09.21.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거리의 ‘폐지 수집 노인’이다. 폐지 수집 노인은 폐지를 수집해 고물상에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저소득 노인을 말한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이들을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취약 집단’으로 분류했다.

본지가 지난 15일 서울 금천구의 한 고물상에서 만난 폐지 수집 노인 중에는 노후가 보장돼 있으면서 소일거리로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현씨와 같은 저소득층이었다. 거리에 폐지 수집 노인들이 있다는 건 그만큼 사회 안전망이 촘촘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폐지 수집 노인에 대한 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다.

◆‘고강도 저임금’ 노동에 내몰린 노인들

보건복지부가 지난 19일 발표한 ‘제3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2024~2026)’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비수급 빈곤층은 66만명으로 집계됐다. 비수급 빈곤층은 소득 기준으로 따지면 중위소득 40% 이하로 생계급여 또는 의료급여 지급 조건을 충족하지만, 여러 조건으로 인해 실제 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을 말한다. 비수급 빈곤층의 상당수는 돈벌이 수단으로 폐지 수집을 하고 있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폐지 수집 노인의 현황과 실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폐지 수집 노인 수는 1만 5000여명으로 추산됐다. 이들은 하루 평균 11시간 동안 12.3㎞를 이동해 1만 428원을 벌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폐지 수집 노인의 연령 분포에서 75세 미만 ‘초기 노인’의 비중은 감소하고 75세 이상 ‘후기 노인’의 비중은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인구 고령화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폐지 수집 노인 중 독거노인의 비중이 높았고, 일반 노인보다 교육 수준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서울 금천구의 한 고물상 ⓒ천지일보 2023.09.21.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서울 금천구의 한 고물상 ⓒ천지일보 2023.09.21.

◆공익형 일자리 사업 대안될까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4년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복지정책으로 노인 일자리 마련 사업을 시작해 첫해 약 3만 5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이후 해마다 노인 일자리를 늘려 지난해 84만 5000개를 공급했다. 그러나 지난해 노인 인구가 901만 8000명에 달해 노인 일자리 희망자 대비 일자리 개수는 10.3%에 불과한 상황이다.

내년에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1000만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2024년 예산안을 의결한 뒤 내년 노인 일자리를 올해 88만 3000개에서 14만 7000개 늘려 100만개 이상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보건복지부는 내년 정책 수립 시 폐지 수집 노인 전원을 노인 일자리 사업 대상자로 선정할 방침이다. 복지부는 최근 ‘폐지 수집 노인 연계 노인 일자리 운영 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해 이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올 하반기 폐지 수집 노인에 대한 전국 단위 실태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폐지 수집은 노인 일자리 사업 내 환경 재생 분야 공익형 일자리에 포함돼 있다. 폐지 수집 노인은 월 30시간 활동이 인정되면 27만원의 추가 소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업에 대해 알지 못하거나 선정 기준에 해당하지 않는 등의 이유로 폐지 수집 노인의 절반 이상이 소득 보전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태다.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폐지 수집 노인은 8149명으로 전체의 1/3로 추정된다.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의 한 고물상. ⓒ천지일보 2023.09.07.
[천지일보=이한빛 기자]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의 한 고물상. ⓒ천지일보 2023.09.07.

◆“폐지 수집 노인, 돌봄 대상으로 봐야”

문제는 공익형 일자리로 폐지 수집 노인에게 약 30만원을 지원해도 노인 빈곤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진 못한다는 점이다. 폐지 수집 노인의 건강 문제도 뒤따르고 있어 노인의 폐지 수집 활동을 근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허준수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지난 19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폐지 수집 노인을 경제적 독립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케어링(돌봄) 대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폐지 수집을 경제적 독립의 대상으로 보면 거리에 폐지 수집 노인은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허 교수는 “폐지 수집은 국민연금, 노인 빈곤 문제, 노인 저소득 문제, 후기 노인 건강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나타나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문제”라며 “우리나라가 경제 10대국인데 아직도 폐지 수집 노인이 있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해 근절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이에 대한 방안으로 “노인 일자리 (사업)이 가능한 어르신은 폐지 수집을 그만두고 월 30만원 받는 노인 일자리로 가고 못 하는 분은 요양원이나 양로원에서 보호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지자체에서 전국의 폐지 수집 노인을 조사해 노인 일자리로 옮겨주거나 병원 문제, 주택 문제, 수급자 등록 등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폐지 수집 노인을 없애는 쪽으로 방향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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