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전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경기에서 한국이 전·후반전과 연장전을 1-1로 마친 후 승부차기에서 4-2로 힘겹게 이겨 8강 진출을 이룩하자 국내 스포츠팬 사이에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It’s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역사적인 스포츠 어록이 다시 등장했다.

이 말은 미국 프로야구 뉴욕 양키스의 명포수 출신 요기 베라(1925~2015)가 했다. 1973년 양키스 감독을 맡은 그는 시즌 중반 자신의 팀이 꼴찌로 처지며 취재진으로부터 “이번 시즌은 끝난 게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이 말을 한 그는 최종 두 팀이 겨루는 월드시리즈까지 양키스를 끌고 갔다.

이 말은 구글 검색어에서 동영상과 문자 포함해 3천 8백만회 이상 조회수를 기록한다. 그만큼 세계인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어록임을 알 수 있다. 이 말의 진짜 의미는 사람들에게 아직 판단을 내리지 말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상황이 ​​뒤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말을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야구에서 9회말 2사후 지고 있는 팀이 이기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고 극적인 결승타나 홈런 등으로 지는 경기를 이기는 경기로 만들 때 이 말이 잘 어울린다.

축구에서도 경기 종료직전까지 패색이 짙다가 극적인 동점골이나 역전골을 터뜨릴 때도 이 말을 자주 쓴다. 비록 야구에서 시작한 말이지만 워낙 역사적인 어록이라 극적인 승부가 이뤄진 스포츠 경기에서 자주 사용하는 것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축구 대표팀은 이번 사우디와의 16강전에서 후반 종료 직전까지만 해도 패색이 짙었다. 후반 1분 압둘라 라디프에게 실점한 한국은 후반 추가 시간이 시작됐는데도 만회 골을 넣지 못해 탈락 위기에 몰렸다.

10분이 주어진 추가 시간 중 8분이 넘게 흐른 시점에서 조규성의 결정적인 헤딩 슛이 아무도 없는 골문으로 떨어졌다. 절체절명의 순간 한국 축구를 구해낸 ‘한방’이었다.

조규성은 조별리그 3경기 모두 선발 공격수로 출격했으나 저조한 경기력 탓에 팬들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3경기 모두 주도권을 쥐고 공세를 펴는 양상이 이어졌지만, 조규성이 번번이 쉬운 득점 기회를 놓치면서 클린스만호는 한 수 아래로 본 팀들을 상대로 예상치 못한 고전을 겪었다.

조규성은 이번 대회 네 번째 경기에서 ‘실력’으로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전매특허인 타점 높은 헤딩으로 기어코 골망을 흔들며 뚝심 있게 자신을 기용한 클린스만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한국은 결국 승부차기에서 골키퍼 조현우가 사우디의 3번째 키커 사미 알나즈이, 4번째 키커 압두르라흐만 가리브의 슈팅을 잇달아 막아내 8강행 티켓을 안겼다.

새벽 경기를 연장전까지 지켜본 우리 축구팬들은 요기 베라의 말을 끝까지 믿으며 한국 선수들이 결코 경기를 포기하지 말고 승리를 해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했을 법하다. 아시아 축구에서 아직까지는 한국의 실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한국 선수들은 이런 애틋한 국민의 바램을 결코 저버리지 않았던 것이다.

언어학적으로 이 말은 ‘over’를 두 번씩이나 쓰는 등 동어 구문을 반복한 데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말은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분명 상기시켜 준다. 잘 풀리지 않더라도 결코 실망하지 말고 기회를 엿보다 보면 승리의 순간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16강전에서 강팀 사우디를 모처럼 극적인 승부를 펼쳐보여 분위기를 반전시킨 축구대표팀이 2일 호주와의 8강전에서도 요기 베라의 유명한 말을 다시 행동으로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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