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1945년생 베켄바워, 1969년생 홍명보, 그리고 1996년생 김민재. 모두 이탈리아어로 ‘자유인’을 뜻하는 ‘리베로’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들 세 명은 수비수와 미드필더, 공격수 역할을 가리지 않는 ‘리베로’로 세계 축구계에 이름을 날렸거나 날리고 있는 선수들이다.

지난 8일 79세로 세상을 떠난 베켄바워는 중앙 수비수로 혁명적인 패러다임 변화를 처음으로 주도했던 세계적인 축구 스타였다. 그는 1972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에서 서독 대표팀 최종수비수인 스위퍼로 있으면서 후방에서 공을 걷어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직접 공을 몰고 나가 정확한 패스로 공격 활로를 열었다. 우아하고 경쾌한 움직임으로 수비수도 공격수에 못지않게 탁월한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렸다.

그가 세계 축구사에서 ‘원조 리베로’로 불리는 이유이다. 60대 이상의 축구팬들은 1974년 서독 월드컵 결승에서 그가 서독 대표팀 주장으로 당시 ‘축구 천재’로 불리던 요한 크루이프(1947~2016)를 앞세운 ‘토털 사커’ 네덜란드를 2-1로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리던 모습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1965년 처음 서독 국가대표로 발탁된 그는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을 시작으로 여러 월드컵 대회에서 전차군단 서독 대표팀을 이끌며 ‘카이저(황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라운드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행동을 보여 이런 닉네임을 얻게 된 것이다.

대표팀으로 활약하는 동안 서독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준우승, 1970년 멕시코 월드컵 4강, 1974년 서독 월드컵 우승 등의 화려한 성적을 올렸다. 독일 최고의 명문팀 바이에른 뮌헨 소속으로 분데스리가 우승 5회, 유럽피언컵 우승 3회을 이끌었으며, 펠레와 함께 뛴 뉴욕 코스모스에서도 북미 사커리그 우승 3회를 차지했다.

베켄바워는 선수 뿐 아니라 감독으로 모두 월드컵을 제패한 역대 세 명 중 하나이다. 서독 대표팀 감독을 맡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결승에서 아르헨티나에 1-0으로 승리, 우승을 안았다. 지난 5일 별세한 마리오 자갈루(브라질), 디디에 데샹(56) 현 프랑스 대표팀 감독과 함께 영광의 기록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영원한 리베로’로 불리는 홍명보는 베켄바워보다 한 세대 뒤의 선수였다. 홍명보는 고려대 3학년 때까지 원래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남대식 고려대 전 감독의 권유로 스위퍼로 전환한 것이 국가대표 발탁으로 이어졌으며, 결과적으로 그의 닉네임을 갖게됐다.

홍명보가 진가를 보여준 것은 1994년 미국 월드컵이었다.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1골 1도움으로 득점에 모두 관여했고, 최종전인 독일전에서 0-3으로 뒤진 후반전 상황에서 통렬한 중거리슛으로 황선홍과 함께 연달아 득점을 올리며 2-3까지 치고 나갔다.

사상 처음으로 한국의 월드컵 4강 신화를 창조했던 2002 한·일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 때 최종 키커로 나서 숨막히던 승부차기를 마무리하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하는 모습은 당시 최고의 장면으로 남았다. 홍명보는 선수 은퇴 후 국가대표팀 감독과 울산 현대 감독을 잇달아 맡아 지도자로서 남다른 면모를 보였다. 베켄바워 처럼 명선수에 이어 명감독 코스를 이어 나간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핵심인 ‘괴물 수비수’ 김민재는 베켄바워 소속팀이던 바이에른 뮌헨 입단 당시 베켄바워와 브라질 출신 수비수 루시우를 자신에게 영감을 준 선수로 꼽았다.

당시 김민재는 “베켄바워는 내가 존경해 온 인물이다. 닮고 싶은 레전드이다”고 했다. 김민재가 베켄바워와 같은 세계적인 대스타가 되기 위해선 앞으로 긴 여정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