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모 권준과 화답한 시 1점․사촌형에게 보낸 인간적인 편지

서울 세운미술관 소장… 이순신 장군 육필로 진본 확인

이충무공 묵적 책에 있는 간찰 (제공: 이재준 고문) ⓒ천지일보 2024.01.12.
이충무공 묵적 책에 있는 간찰 (제공: 이재준 고문) ⓒ천지일보 2024.01.12.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임진전쟁의 민족사적 영웅 이순신 장군의 시고(詩稿) 1점과 가족사를 일려주는 간찰(簡札) 1점이 공개됐다.

서울 세운미술관(관장 정세운)이 최근 언론에 공개한 두 점의 유묵은 이순신 장군이 직접 쓴 육필로 전문가 감정을 거쳐 진본임이 확인돼 공개하기에 이른 것이다.

최근 영화 ‘노량:죽음의 바다’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증폭되는 때에 이 장군의 인간성을 재조명할 수 있는 새로운 사료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한국역사유적연구원 이재준 고문(전 충청북도문화재 위원)이 초서번역의 원로학자인 한국한시협회상임이사 남해 김원동 선생의 도움을 얻어 고증한 두 편의 유묵 중 시고는 50㎝x30㎝, 간찰은 30.6㎝x26㎝ 크기로 한지에 종서로 썼으며, 시고는 하단의 일부 글자가 탈자 결실돼 있다.

이재준 고문은 우선 시고의 경우 한 장에 2수가 기록돼 있으며 임진전쟁 중 한산도 싸움에서 나선 권상사(權上舍)와 화답한 시라고 밝혔다. 번역을 맡은 김원동 이사는 이 장군의 한시 2수는 ‘7언시’로 명작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이 장군에 대한 학계 연구는 거북선, 난중일기, 사료 등에 국한돼 있었으며 ‘충무공전서’에 나오는 한시마저 연구가 빈약한 실정이다.

이번에 찾은 새로운 한시 2수는 장군의 높은 문학실력과 전쟁 중에서도 휘하 장수와 시를 화답하는 문무를 겸전한 장군의 여유 있던 면모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고문은 “시에 등장하는 권상사는 이 장군과 동고동락하면서 한산도에서 왜적 소탕에 큰 공을 세운 권준(權俊, 1547~1611, 선무공신)으로 생각되고 있다”고 전한다.

권준은 임진왜란이 터지기 전부터 순천부사, 경상우수사직을 제수(除授: 임금이 직접 벼슬을 내림)받아 장군과 함께 왜군과 싸웠으며 사적으로도 매우 친밀했던 사이였다. 이 장군은 권준이 연장자로 무과에 먼저 급제했으며 아래 지휘계통에 있어도 형을 대하듯 깍듯이 존경했다.

‘난중일기’에는 권준이 잠깐 한산도를 비우는 시기와 이순신의 파직 이후를 제외하면 이름이 등장하지 않은 날을 찾기 힘들 정도다. 이 고문은 “같이 식사를 하며 여러 일을 논의하는가 하면 술도 자주 마시고 바둑을 두거나 활을 같이 쏘았다” 부언했다.

또한 ‘난중일기’를 보면 항상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을 찾아오지만 가끔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 직접 권준을 초청해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으며, 권준의 생일에는 여러 장수들이 모여 술과 음식을 먹으며 즐겼다는 기록도 있다.

추가로 권숙(權俶), 권위(權偉), 권사(權徙) 등 남동생이 세 명 있는데 이 고문은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어보면 이순신은 권준과 함께 권준의 첫째 남동생인 권숙과도 자주 어울려 노는 모습이 보이며, 어떤 경우에는 둘이서 술 마시고 있는데 동생이 사라져 권준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충무공 이순신 육필 시고. 한지에 먹 글씨. 50cmx30cm (세운미술관 소장) ⓒ천지일보 2024.01.12.
충무공 이순신 육필 시고. 한지에 먹 글씨. 50cmx30cm (세운미술관 소장) ⓒ천지일보 2024.01.12.

◆ 시고

미산 권상사 사백의 행차에 쓰다

태액지(太液池)에는 송이송이 연꽃이 피어 있고/ 교량근처에 사마는 아마도 재주가 뛰어난 듯/ 白門社(서대문) 시회에서는 시를 천수나 쓰고/ 紫閣峰(남산) 그늘 아래에서 몇 번이나 술을 마셨던가/ 별을 짝하여 뗏목에 오르니 옥관(玉館)이 좋을 씨고/ 금대아래 좋은 꽃은 붓을 움직이게 하네/ 단옷날에 섬돌 앞엔 황매철의 장마 멈추고/ 동풍불어 쌍피리소리에 필마로 돌아오네 (아우 순신 쓰다)//

춘잉문 밖에는 상서로운 구름 일어났네/ 사마의 새로 지은 시 재주가 대단하네/ 물 기운은 때때로 양제초(수리쟁이풀)에 가득하고/ 광대한 하늘빛은 노을 띠고 감도네/ 십년간 독서 즐기며 성 남쪽 집에 머무니/ 어느 곳 바닷가 높은 누대에서 시를 읊어 볼까나/ 소나무 아래 주인은 고개 밖(嶺外)의 일 생각나는데/ 짐작컨대 그대는 진실로 후일에야 돌아오겠지요

(원문: 華山小集次東… 米山權上舍詞伯之行// 太液蓮華朶朶開/ 橋頭司馬許高才/ 白門社裏詩千首/ 紫閣峰陰酒幾回/ 伴星楂登玉館好/ 好花筆動O金臺/ 端陽階息黃梅雨/ 雙篴東風匹馬來(弟 舜臣)// 春仍門外瑞雲開/ 司馬新聲七步才/ 水氣種種撗蓫渡/ 天光薄薄帶霞回/ 十年好讀城南舍/ 幾處高唫海上臺/ 松下主人嶺外思/ 倘料客自日還來)

충무공 이순신이 사촌형에게 쓴 편지. 30.6cmx26cm. 한지에 먹 글씨 (세운미술관 소장) ⓒ천지일보 2024.01.12.
충무공 이순신이 사촌형에게 쓴 편지. 30.6cmx26cm. 한지에 먹 글씨 (세운미술관 소장) ⓒ천지일보 2024.01.12.

◆ 간찰

이전에 서로 손잡고 이별할 때 슬픈 마음이 지극했습니다. 생각건대 철따라 기거하시는 형의 체후가 만중하시다니 그리운 마음이 위로됨이 그지없습니다. 용렬한 저는 부모님을 곁에서 모시고 그럭저럭 지내고 있으니 다행스럽습니다. 다만 사월에 있는 종질여를 우연히 만났는데 병을 얻어 이미 육일이 지나도록 차도가 없고 또 그 증세가 일시적인 감기가 아닌듯하여 금명간 비록 집안에는 절박하나 진실로 할 말이 없습니다.

지금 어쩔 수 없이 탄식만 하고 생각건대 피차간 가까운 사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습니다. 향후에 만약 불경스런 일이라도 있다면 다음 달 보름에 혹 성례를 올림이 가능할 는지요? 나머지는 다 펴지 못하고 형께서 살피시기를 엎드려 바랍니다. 삼가 문후 편지를 올립니다. 늦봄 즉일에 순신(舜臣) 재배

(원문: 乃者拚別迨極耿 悵即惟 兄履節宣萬重慰溯不任區區弟 侍傍粗遣私幸但沙月從姪女 邂逅得疾今已六日而無감僉且其情症似 非一時感冒今明雖 家切迫固無可言今臨 時?㤿之歎想無間於彼此也向後若不慶近來月望或可成禮耶 餘不宣伏惟 兄照 謹候上狀 楝風即日 舜臣二拜)

이 장군은 두 형을 두고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밑으로는 아우 우신(禹臣)이 있었으며 큰형 희신에는 네 조카 뇌(雷), 분(芬), 번(蕃) 그리고 완(莞)이 있었다. 작은형 요신에게는 두 조카 봉과 해가 있었으나 두 형이 모두 먼저 사망하였기 때문에 이순신은 이들 여섯 조카를 돌봐야 했다. 그는 조카들에게 친자식과 같이 극진했다.

이 고문은 “이 간찰에는 사촌 조카까지 걱정하는 마음씨가 보인다. 이 간찰은 사촌 형에게 쓴 것”이라고 해석했다. 장군은 종질녀를 보았을 때 병을 얻어 마음이 아팠으며 다음 달에 혼인을 올렸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고 있다.

이순신과 부인 상주방씨(尙州方氏)는 세 형제 회, 열, 면과 한 딸을 두었고 서자(庶子)로는 두 형제 훈(薰)과 신(藎)이 있으며 무과에 올랐다. 부인 방씨(方氏)는 보성군수 진(震)의 딸로 이순신의 전몰 후 정경부인(貞敬夫人)의 품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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