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칼럼니스트

눈이 내린다. 겨울이 와서 눈이 오고, 눈이 와서 겨울이다. 봄에도 눈이 오고 가을에도 눈이 온다. 겨울에 오는 눈이라야 그 맛이 있다. 세상 모든 것이 다 때가 있고, 앉고 서야 할 자리가 있는 법이다.

한겨울에 도롱뇽이 알을 낳고 개구리가 느닷없이 짝짓기를 한다. 녀석들이 벌써 봄이 온 줄 알고 춘정을 즐기는 것이다. 겨울이 겨울답지 않아 그렇다. 눈이 오고 찬바람이 불어야, 겨울이다.

눈 내리는 겨울이면 자주 회자되는 시가 있다. ‘눈 덮인 들판 걸어갈 때(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시대를 앞서 간 선구자들과 선각자들이 즐겨 암송하고 썼던 유명한 시다. 일생의 등대로 삼기도 했다. 백범 김구 선생이 1949년 손양원에게 친필 휘호로 써 주면서 유명해졌다. 훗날 김대중 전 대통령도 휘호로 남겼다.

이 시가 서산대사가 지은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사실은 조선 후기 문인 임연당(臨淵堂)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의 ‘야설(野雪)’이라는 작품이다. 작자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따라 다니지만, 시가 담고 있는 기백과 정갈하고 청아한 의미가 가슴에 와 닿는다. 누구나 좋아할 만한 멋진 시임에는 틀림없다.

서산대사는 조선시대 승려 휴정(休靜)이다. 서산대사(西山大師)는 백화도인(白華道人), 풍악산인(楓岳山人), 두류산인(頭流山人), 묘향산인(妙香山人), 조계퇴은(曹溪退隱), 병로(病老) 등 휴정의 여러 별칭 중 하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묘향산에 있던 서산대사는 승병을 일으켰다. 제자 사명당 등과 함께 왜군과 맞서 싸웠다. 이후 대사에 대한 여러 일화들이 소개되면서 업적과 인품에 대한 칭송이 이어졌다. 그 중에는 더러 덧붙이고 가공된 것들도 있는데, 대사가 도술을 부렸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도술을 겨뤄 서산대사가 스승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서산대사는 ‘싸가지 없는’ 권세가들을 혼내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명종실록에 따르면, 윤춘년(尹春年)이라는 자도 서산대사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 당시 세도가였던 윤원형에 빌붙어 벼락출세를 하고 기고만장하던 그가 제 자랑을 늘어놓으며 입김을 뿜어내자, 서산대사가 입 냄새가 고약하다며 핀잔을 주었다. 이 일로 둘은 절교했지만, 윤춘년은 두고두고 조롱거리가 됐다.

실록은 윤춘년을 “기억력이 좋고 책도 많이 읽었지만, 학문이 편벽되고 논변은 시끄러웠다. 겉으로는 청렴하고 삼가는 태도로 꾸미지만 속에는 출세할 생각밖에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간신배는 말년에 시골로 쫓겨나 정신이 오락가락 하다 생을 마감했다. 혹여, 이 자와 같이 머리 좋고 배운 것은 많으나, 인성이 엇나간 인간이 있다면, 반면교사로 삼으시길.

서산대사는 1604년 1월 묘향산 원적암에서 설법을 마치고 자신의 영정 뒷면에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라는 시를 적었다. 시를 사명당에게 전하라는 말을 남기고 가부좌 한 채 앉아 입적했다. 나이 85세, 법랍 67세였다.

대사는 이러한 말도 남겼다. ‘생각하고 꾀하던 모든 것들/화롯불에 떨어진 흰 눈 한 송이/진흙으로 만든 황소가 물 위로 가고/대지와 허공이 꺼져버렸네’

화롯불에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한 송이 눈처럼, 우리들 삶도 부질없고 허망하다. 그럴지라도, 그렇기 때문에, 눈처럼 희고 깨끗한 마음으로 곱게 살면 좋지 않을까. 눈길을 걸으며 그런 생각을 해 본다. 함께 가면 길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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