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칼럼니스트

스포츠는 무기 없는 전쟁이다. 총이나 칼로 상대를 죽이거나 해를 가하지는 않지만, 누군가는 이겨야 하고 누군가는 져야만 하는 비정한 승부의 세계다. 실제로 스포츠 경기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전쟁처럼 여겨지고, 전쟁터처럼 끔찍하고 참혹한 일들이 경기장에서 벌어지기도 한다.

아득한 시절, 1972년에 독일 뮌헨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1936년 우리나라 손기정 선수가 마라톤 금메달을 딴 베를린 올림픽 이후 36년 만에 다시 독일에서 열린 대회였다. 이때 북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라는 국호를 내걸고 올림픽 무대에 처음 등장했다. 남과 북이 으르렁거리며 전쟁 같은 대치 상황을 이어가고 있던 시절이었다.

이 대회는 그러나 평화의 제전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 테러 집단 ‘검은 9월단’이 선수촌을 급습하여 11명의 이스라엘 선수가 사망하고 테러범 5명과 경찰 한 명도 목숨을 잃었다. 모든 상황들이 TV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즐거운 대회’를 모토로 삼았던 스포츠 축제가 피로 물들며 세상 사람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트렸다.

이 대회에서 북한은 금, 은메달 한 개씩, 동메달 3개를 따냈다. 우리나라는 은메달 하나에 그쳤다. 북한은 사격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이호준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런데 이 선수가 인터뷰에서 “적의 가슴을 쏘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다”고 말했다. 올림픽이 정치적인 선전 무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올림픽 정신을 짓밟는 파격 발언이었다.

이호준의 이 발언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싸우던 정치 상황이 스포츠에 그대로 투영된 사건이었다. 남과 북이 축구 경기 등을 할 때면 양쪽 선수들은 죽기 살기로 했다. 작전이고 뭐고 필요 없고, 반드시 이겨야 하고 그래야 애국하는 줄 알았다. 당시만 해도 북한이 우리보다 경제 상황이 나았고 스포츠도 강했다.

요즘에는 우리가 북한보다 모든 면에서 앞서고, 스포츠 무대에서 만나도 예전처럼 그렇게 치열하지 않다. 거의 모든 종목에서 우리가 한 수 위이기 때문에 별로 재미도 없을 뿐 아니라 북한에 이긴다고 난리법석을 피우지도 않는다. 오히려 한일전에 더 관심이 있다. 남북 간의 스포츠 경기는 이제 더 이상 전쟁 같지가 않다.

그런데 전쟁 같은 스포츠가 사라진 대신 온 나라가 전쟁 소리로 시끄럽다. 정치하는 사람은 전쟁 같은 정치하지 말자고 하고, 북한은 연일 미사일을 쏘아대며 전쟁 운운하고 있다. 이러다 진짜 전쟁 나는 것 아니냐, 불안감이 밀려드는 것도 사실이다. 대한민국을 주적이라 규정하고 핵을 동원한 전쟁도 불사하겠다며 난리를 치는 북한을 보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더 한심한 것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 ‘우리 북한’이라 칭하고, 국회에서 ‘정의의 전쟁’ ‘평화 전쟁’ 운운하며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기막힌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위안부 할머니들 앞세워 제 배를 채운 자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지은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억울하다며 눈물을 쏟고, 북한을 대하는 우리 정부 정책이 ‘우리들에게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했다. 만약 전쟁 상황이라면, 이 자들은 아군인가 적군인가.

정치인의 목에 칼이 꽂히고 돌로 머리를 가격당하는, 그야말로 전쟁 같은 정치다. 선거도 전쟁처럼 한다. 이기기만 하면 무슨 수를 써도 상관없다. 영화 ‘친구’에서 준석이 이렇게 말했다. “건달은 쪽 팔리면 안 된다 아이가” 건달에게도 ‘가오’가 있고 자존심이 있고 지켜야 할 선이 있다. 그것들을 무시하면 ‘쪽 팔리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 같은 정치를 하는 자들은 ‘쪽 팔림’을 모른다. 재치나 눈치도 바라지 않는다. 염치조차 없는 자들이다. 제 눈에 들보는 보지도 않고, 봐도 못 본 척하면서, 남의 허물에는 듣기 민망한 저주의 소리를 퍼부어 댄다. 북한이 불화살인가 화살인가 하는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는데, 이 자들 하는 말들도 화살처럼 날카롭고 위험하다.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는다’고 했다. 화살 같은 말들로 서로를 찌르고 피 흘리게 하는 전쟁 같은 정치, 이제 좀 그만하자. 전쟁 같은 사랑만 하기에도 모자라는 게 인생이다. 죽이려 하지 말고, 같이 살 궁리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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