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벤츠는 고급 차량의 대명사다. 그런데 이 고급 승용차를 가장 많이 타는 나라 고위 간부들은 어느 나라일까? 최근 그 답이 나왔다. 다름 아닌 북한 정권의 고위 간부들이다. 북한 언론이 노동당 전원회의장에 등장하는 고급 벤츠를 탄 고위 간부들을 일일이 소개하면서 그 진상이 드러나게 되었다. 최용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은 기사를 대동하고, 또 사실상 북한의 제2인자 조용원 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비서는 직접 벤츠를 운전하고 노동당 본부청사로 등장했다. 왜 그랬을까. 한 마디로 허세가 몸에 밴 이들은 뭐 그렇게 하는 것이 폼잡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제발 사람 좀 웃기지 말았으면 좋겠다. 인민들은 한 줌의 쌀이 없어 헐벗고 굶주리는데 집권세력은 중동의 부호들이나 타는 벤츠를 타고 으스대고 있으니 어찌 세상 사람들이 웃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이어 북한 최고위급 간부들도 남다른 ‘벤츠 사랑’을 보여줬다. 차량 제조사인 독일 메르세데스-벤츠는 대북 수출금지 품목인 벤츠 차량이 어떻게 북한에 유입됐는지 확인에 나섰다.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의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북한 최고위급 간부들은 지난달 27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 플래그십 세단인 벤츠 S클래스를 타고 등장했다. 같은 달 8일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벤츠 S클래스보다 더 고급차량인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차량에서 내리는 장면이 조선중앙TV에 포착되기도 했다. 벤츠 독일 본사 공보실은 이와 관련해 “해당 차량의 제조사인 독일 메르세데스 벤츠가 언론에 공개된 차량에 대해 유입 경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공보실은 “15년 넘게 북한과 거래 관계가 없었으며 미국과 유럽연합(EU)의 금수조치를 엄격히 준수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차량 식별번호를 확인할 수 없어 구체적인 추적은 불가능하다”며 “제삼자의 차량 판매, 특히 중고차 판매는 당사의 통제와 책임 밖에 있다”고 덧붙였다. 모름지기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의 통 큰 심보를 과시하기 위해 중국 등지에서 중고 벤츠를 수입해 고위 간부들에게 선물로 하사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 이런 통치자들 아래 겨우 초근목피로 살아가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은 어떠한가? 영국 BBC방송은 지난달 6일 서울발 기사에서 지난 5월 일가족과 함께 어선을 타고 서해로 탈북한 30대 김모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코로나19 이후 북한의 상황을 조명했다. 북에서 암시장에 물건을 내다 파는 일을 했다는 김씨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국경이 폐쇄되면서 삶이 이전보다 훨씬 더 어려워졌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지난해 4월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던 농부 2명이 아사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에는 이웃 동네의 한 노부부가 굶어 죽었는데 쥐가 시신 일부를 갉아먹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도 밝혔다. BBC는 김씨가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을 별도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세부 사항은 다른 소식통들의 전언과 최근 북한 상황에 대한 국제기구 보고서 등과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고난의 행군 뒤 북한 실상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용어는 빈익빈 부익부이다. 평양의 집권세력은 여전히 호의호식하고 일반 노동자 농민들은 헐벗고 굶주리고 있다. 북한 정권은 아예 문을 걸어 잠그고 백년 천년 이런 나라를 유지하고자 지난 연말에는 영구분단론을 주창했다. 최근 들어 북한은 잇단 도발로 우리나라를 교전국으로 규정하고 핵 선제공격까지 명문화하며 적대하고 있다. 남북교류를 위한 대남기구도 정리 중이다.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제안한 대북지원책 ‘담대한 구상’을 견지하고 있지만, 남북경색이 장기화되는 탓에 남북교류·협력 조직·예산을 대폭 줄이고 개성공단도 지원재단을 해산시키며 폐쇄 수순을 밟고 있다. 북한 정권은 개성공단 일반통로에 지뢰까지 매설하면서 폐쇄와 고립을 자초하고 나섰다. 이런 상황 탓에 통일 여론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분기마다 조사하는 여론조사를 보면 지난해 동안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줄어들어 왔다. 1분기 필요하다는 응답이 73.4%에 달하고 필요 없다는 답은 25.4%에 불과했지만, 4분기에는 필요하다는 답은 64%로 약 10%p나 빠졌고 필요하지 않다는 응답은 35.3%로 약 10%p 늘었다.

통일의 기운은 잦아들고 평양정권은 고립의 길을 치닫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새해가 좀 암담해 보여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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