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탈북민들을 지켜보던 중 놀란 것이 있다. 소고기를 먹어본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인데, 사실 북한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추석이나 설에는 꼭 동네마다 소 한 마리씩을 잡아 고기를 나눠 먹었다. 물론 양이 적어 그냥 국거리로 쓸 정도이지 오늘 우리 한국에서처럼 구워 먹고 장조림 해 먹고, 말린 육포로 만들어 먹기는 어려웠었다.

흔히 우리는 “음식도 학습한 대로 댕긴다”고 알고 있으며 그래서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말하지만 북한에서 소고기를 많이 먹어보지 못한 주민들이 소고기가 먹고 싶은지조차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최근 북한에서 소고기를 팔았다는 이유로 남녀 9명이 공개 총살당한 것으로 알려지며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경제난이 가중되자 북한 김정은 정권이 ‘공포 정치’로 민심 통제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내주 열리는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논의될 예정인 가운데, 북한의 폭압적 인권 문제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풀이된다.

지난 13일 데일리NK재팬, 미국계 라디오 프리 아시아(RFA) 등은 지난 8월 30일 오후 4시께 북한 양강도 혜산시 비행장 주변 공터에서 잔혹한 공개 처형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북한군의 특별군사재판에 회부된 피고인은 남성 7명과 여성 2명 등 모두 9명이었다. 우리는 북한의 군사재판 하면 6.25 직후의 박헌영 등 남로당 계열 숙청 당시의 군사재판과 꼭 10년 전인 지난 2013년 12월 12일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그룹에 대한 북한의 군사재판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군사재판을 열어 소고기를 먹은 주민들을 총살했다는 보도는 충격을 넘어 전율을 멈출 수 없게 만들고 있지 않는가.

총살된 주민들은 지난 2017년부터 올해 2월까지 병으로 죽은 소 2100마리를 판매한 혐의를 받았다. 이들 중에는 양강도 수의방역소장, 양강도 상업관리소 판매원, 농장 간부, 평양 모 식당 책임자, 군 복무 중 보위부 10호 초소(검문소) 군인으로 근무했던 대학생 등이 포함됐다. 그렇다면 과연 그동안 북한 당국이 이들이 행위를 모르고 눈감았단 말인가. 아닐 것이다. 북한에서 총살형 집행은 사법적 처벌이 아니다. 일종의 사상교양이다. “자, 보라 노동당의 말을 듣지 않으면 저렇게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상교양인 것이다. 단두대가 도처에 설치되어 있던 중세에도 이런 사상교양은 없었을 것 같다.

북한에서는 서민들 식탁에 소고기를 올리는 게 드문 일로 전해진다. 소는 식용이 아니라 농업의 생산 수단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에 북한 당국은 개인이 소를 소유하거나 도축·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위반하면 단순한 경제범이 아니라 정치범 취급을 받는다. 그동안 소 한 마리 때문에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허다하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올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력을 최고 수준으로 이끌었다면서 핵 무력을 법제화한 만큼 누구도 이를 흥정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인민들이 소고기를 먹었다고 쏘아죽이는 나라가 국력신장을 운운하니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6일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의 영도 밑에 주체 조선의 국력과 국위는 최상의 경지에서 떨쳐지고 있다’는 1면 기사에서 “경이적인 성과들은 총비서 동지의 탁월한 영도의 고귀한 결실”이라고 칭송했다. 신문은 지난 9월 핵 무력 정책의 헌법 명시를 거론하면서 “핵 무력 정책이 헌법화됨으로써 당당히 핵보유국으로서의 우리 국가의 지위가 영구화됐으며 미국과 적대 세력들이 더는 우리의 핵을 놓고 흥정할 수 없게 됐다”고 강조했다.

2월 8일 인민군 창건일 75주년 열병식, 7월 27일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일)’ 70주년 열병식, 9월 9일 정권수립 75주년 열병식 등이 “제일 국력을 세계 앞에 똑똑히 보여준 대정치 군사 축전”이었다고 돌아봤다. 가난의 공화국 북한 정권이 1년 중 열병식을 세 번이나 한 일은 전무후무 하다는 점에서 소고기 먹는 인민들을 가만 놔둘 리는 없었을 것이다.

한편 유엔총회 제3위원회는 지난달 15일 북한에 의한 인권침해를 비판하는 유럽연합(EU)의 결의안을 투표 없이 채택했다. 지난 2005년부터 19년 연속 채택된 북한인권결의안은 이달 유엔총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사람을 개처럼 쏴 죽이는 북한 정권은 종말의 언덕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정녕 신이 있다면 저 평양 정권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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