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해방기를 보내고 경제개발기에 남과 북, 그리고 중국에서는 거대한 근대화 운동이 시작되었다. 북한에서는 천리마운동이, 중국에서는 대약진운동이, 그리고 한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새마을운동이 발기되었던 바, 결론적으로 오늘에 평가하건대 성공한 것은 새마을운동뿐이다.

오늘 북한의 김정은이 다시 제2의 천리마운동을 호소하고 나섰다. 혹자는 그것이 한국의 새마을운동을 카피하려는 것 같다는 주장을 펴는데 일리 있는 주장이다. 왜냐하면 폭삭 주저앉은 북한의 경제발전 수준에서 제2의 천리마운동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최첨난 AI시대에 북한이 다시 60년 전의 경제발전 방식을 들고나와 세상 사람들을 웃기고 있다.

천리마운동은 1950년대 후반부터 북한에서 일어난 노력 동원 및 사상 개조 운동이다. 천리마란 하루에 1000리(400㎞)를 달릴 수 있을 정도로 좋은 말을 뜻한다. 즉, 천리마를 탄 것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일해 나라 발전에 이바지하자는 뜻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6.25 전쟁이 끝난 다음 해인 1954년부터 1956년까지 북한은 전후 복구 3개년 계획을 시행해 전쟁으로 파괴된 산업 시설을 복구하고 생산을 늘렸다. 이어 1957년부터는 5개년 경제 계획을 시행했다. 그러나 1950년대 후반에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원조가 크게 줄어들면서 경제가 어려워졌다. 이에 북한은 주민을 총동원해 생산을 늘리고 경제 건설을 하려는 목적으로 천리마운동을 발기했다. 천리마운동은 주민들이 서로 경쟁하는 체제로 운영되었다. 맡은 일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작업반이나 개인에게는 ‘천리마작업반’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천리마 영웅의 호칭은 북한 주민들에게는 훈장과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천리마 정신은 북한 사회 전 분야로 확대되었다. 

이 운동은 1956년 12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처음 제기되었다. 1957년부터 전국적으로 전개되어 천리마속도, 천리마직장, 천리마기수, 이중천리마작업반 등의 용어와 훈장 칭호가 등장하게 되었다. 1972년 채택된 사회주의 헌법에서는 “천리마운동은 사회주의 건설의 총노선이다(제13조)”라고 규정하고 있다.

천리마운동은 전후 북한 경제의 조속한 복구로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이바지하고자 계획되었다. 이를 위하여 노동당 간부들이 위에서 인민들에게 지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 직접 방문하여 노동자와 농민을 지도 및 격려하였다. 또한 작업반끼리의 경쟁을 유도하거나 명예적·물적 보상도 함께 제공하였다. 김일성 역시 강선제강소(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 등 여러 현장을 직접 방문하여 그곳의 노동자 및 농민을 지도하였다. 그 과정에서 생산 목표량을 계획보다 높게 설정하고 노동력을 총동원하여 목표 이상의 결과를 얻게 되었다.

이와 같은 천리마운동의 성과는 김일성의 지배 체제를 공고히 하였다고 평가된다. 이 운동의 전개로 제1차 5개년 계획(1957~1961)은 전 부문에 걸쳐 예정보다 1년 이른 1960년 4년 만에 목표를 달성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노동강화운동의 한계성에 따라 천리마운동이 퇴색하는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하자, 1976년부터 ‘3대 혁명 붉은기 쟁취운동’이라는 이름의 김정일식 노력경쟁운동이 대체되었다. 이런 운동과 더불어 ‘80년대 속도’ ‘90년대 속도’ 등의 구호가 내걸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목표로 하는 자립 경제건설은 세계와의 기술적 차이, 외화 부족 등으로 유효한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최근 새롭게 강조되고 있는 ‘새시대 천리마정신’이라는 표현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1월 26일 함경남도 함흥시의 기간산업설비 공장인 룡성기계연합기업소를 현지 지도한 자리에서 기업소가 ‘새시대의 천리마정신’을 창조하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지난해 말 노동당 제9차 전원회의 보고에서 이 기업소가 ‘제2의 천리마정신’을 창조했다고 언급한 뒤 본격적으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서 제2의 천리마운동은 절대로 실현 불가능하다. 우선 경제의 하부구조가 너무 취약하다. 국가 경제는 30%도 작동이 안 되고 지방 경제는 장마당 경제로 표현될 만큼 장마당을 통한 기초생활용품 교환이 전부이다. 대관절 공장 기업소가 돌아가야 천리마운동이든 만리마운동이든 할 것이 아니냐 말이다. 또 북한 경제는 폐쇄와 고립에 얽매어 대외적 개방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50·60년대 천리마운동 당시 북한 경제는 사회주의권과 활발하게 교류한 시장성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북한은 먼저 일방적 동원화의 혁신운동에 골몰하지 말고 경제를 개방하고 개혁해야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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