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지난달 30일 노동당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북한은 대남공작 기관들의 구조조정을 발표했었다. 그 전권을 최선희 외무상에게 안겨주면서 이선권 통일전선부장은 직책조차 거론하지 않았다. 대남공작의 원조 김영철 통일전선부 고문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었다. 대한민국이란 호칭으로 한국을 대하면서 이제 대남정책을 외교정책의 일환으로 외무성이 맡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지금 그 결과물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어 북한의 새로운 대남관과 분단관리를 실감할 수 있게 되었다.

몇 가지 실례를 들어 살펴보자. 북한의 대남 국영 라디오 ‘평양방송’은 12일 오후부터 수신이 되지 않고 있다. 전파 발사를 멈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평양방송의 홈페이지인 ‘민족대단결’ 접속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평양방송은 북한이 1960년대부터 남한 주민을 겨냥한 선전 선동 방송을 해 온 곳으로, 과거 자정에 김일성·김정일 찬양가를 내보낸 뒤 난수(亂數)를 읽어 남파간첩들에게 지령을 내린 것으로 잘 알려진 매체다. 북한은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잠시 중단했다가 지난 2016년 재개했다.

북한이 통일전술 차원에서 유지해 온 각종 남북 교류협력 기구와 단체도 정리된다. 조선중앙통신은 13일 “김정은 동지께서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제시하신 대남정책 전환 방침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대적 부문 일군(간부)들의 궐기 모임이 12일에 진행됐다”고 했다. 궐기모임에서는 “북남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위한 연대기구로 내왔던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민족화해협의회,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등 우리 관련 단체들을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고 했다.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는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 설립된 통일운동 단체로, 남측위·해외위원회도 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도 1990년 남·북·해외에 통일운동 단체로 만들어졌다. 1998년 설립된 민족화해협의회는 노동당 외곽단체로 같은 시기 만들어진 남측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의 카운터파트다.

단군민족통일협의회는 1997년 발족해 민족 정통성과 통일을 다뤄왔다. 통신은 대적 부문 간부들이 “김정은 동지의 대적 투쟁 방침을 철저히 관철해 괴뢰역적 패당의 무모한 반공화국 대결 책동을 단호히 짓뭉개버릴 드높은 열의와 철석의 의지”를 분출했다고 했다.

김정은은 지난해 말 노동당 제8기 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적대적인 교전국”이라고 못 박고 대남 기구 정리를 지시했다. 이후 대외 관계를 관할하는 최선희 외무상 주도로 대남 부문 기구 정리가 시작됐다. 대남 기구 정리 실무를 최선희가 주도하는 점으로 미뤄 대남 공작·대화를 관할해 온 노동당 통일전선부가 외무성으로 편입될 것으로 보인다.

닷컴 도메인을 쓰는 우리민족끼리·통일의메아리·류경·조선의오늘·려명 등 북한의 대남 선전용 웹사이트들도 지난 11일부터 접속 불가 상태이다. 대남 기구 정리와 맞물려 이들 대남 사이트도 개편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대남 기구들은 가장 헛돈을 많이 쓰는 조직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김정일이 1980년 제6차 당 대회 이후 대남공작기구들을 손봤지만 별로 효용이 없었다. 대남공작 기관들은 마치 남쪽에 무슨 큰 조직이 있고 자신들이 남조선혁명을 유도하는 양 허풍을 떨어왔지만 그것은 모두 당 자금을 타내 생존하기 위한 기만술에 다름 아니었다.

특히 평양방송 등 대남선전매체들의 경우 더욱 심했다. 대관절 요즘 대한민국에서 누가 평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몇몇 좌파 종북세력이 청취자군일텐데 평양의 대남일군들은 마치 자신들의 노력으로 뭔가 이뤄질 것처럼 큰소리치며 통치자들을 기만해 왔다.

북한의 대남 기구 조정은 근본 원인이 경제적 빈곤에 따른 것이며 더 나아가 김정은 체제가 이제 당분간 분단을 유지하면서 힘을 키운 다음 핵무기로 한번 붙어보자는 ‘야심 찬 계획’의 산물이다. 그러나 평양 정권에 유리한 환경이 올 리는 만무하다. 3대 세습에 이어 4대 세습까지 꿈꾸는 그들에게 다가올 것은 기회가 아니라 파멸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김정은 체제여 제발 정신 좀 차리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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