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새해를 ‘청룡’의 해라고 한다. 청룡은 우리 민속에서 동쪽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백호(白虎) ·주작(朱雀) ·현무(玄武)와 더불어 사방을 지키는 사신(四神)의 하나다. 고구려 강서대묘 벽화에 그려진 청룡도는 매우 역동적이다.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한 오늘날에도 좋은 땅을 논할 때는 ‘좌청룡 우백호’를 찾는 이들이 많다.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미신이 아니고 과학이라고 주장한다.

옛사람들은 바다에 수신인 용왕이 산다고 생각했다. 신라인들은 동해 울산 앞바다에 표류한 처용 일행을 용왕의 아들이라고 기록했다.

파도에 밀려 해변에 나타난 데다 곱슬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처용 일행을 이렇게 생각한 것이다. 왕은 처용을 서라벌로 데리고 와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얻어주기까지 했다.

서라벌 달 밝은 밤늦게까지 놀고 돌아온 처용은 외간 남자인 역신(疫神)과 바람을 피우는 아내를 발견하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처용은 다시 밖으로 나가 덩실덩실 춤을 춘다.

아량에 감동한 역신은 처용 얼굴 그림만 보아도 찾아오지 않겠다고 사죄하며 떠났다. 처용의 얼굴은 벽사의 화상으로 천 수백년을 내려왔다.

신라왕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 중복에 망해사를 지어 용왕을 제사 지냈다. 바다를 지나는 배들의 안전 항해를 기원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용왕이 화가 나면 바다에 폭풍을 일으켜 배를 침몰시킨다고 생각했다. 삼면이 바다인 한반도 해안에서는 배의 안전한 항해가 한결같은 소망이었다. 동해 낙산사에 돌로 해수관음상을 크게 조성해 놓은 것도 이런 기원에서다.

효녀 심청은 부친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서해바다의 제물이 된다. 중국 남경을 오가며 장사하는 선원들에게 공양미 삼백석에 팔린 것이다. 심청이 빠진 인당수의 위치에 대해선 여러 설이 있지만 심학규의 고향이 황해도 해주이며 남경장사 선원들이 오고가는 바다라면 인천 백령도 장산곶이 가장 유력하지 않나 싶다.

이곳은 고려시대 개성에서 남경으로 무역하는 배들이 지나는 곳으로 간혹 태풍이 불면 많은 배들이 침몰한 곳이다. 용왕은 마음이 너그러워 효녀 심청을 환생시켜 바다 위로 보내고 육지 왕의 배필로 삼게 했다.

청룡은 푸른색을 띠고 있으며 남자를 상징한다고 한다. ‘창룡(蒼龍)’이라고도 하며 동쪽에서 힘차게 솟아오르는 기상을 과거 급제에 비유하기도 했다.

지난 2022년 완당 김정희 선생의 수적을 연구하면서 민간 소장의 ‘창해등룡(蒼海登龍)’이라는 현판을 고증한 적이 있다. 창해는 동해를 지칭하는데 이는 동방의 청년, 즉 조선의 젊은이들을 뜻한다.

완당은 청년들이 학문을 부단히 연구하여 동방의 용으로 힘차게 솟아오르라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그러나 완당 자신도 세도정치의 폐해를 응징하다 9년간을 적소에서 보냈다.

‘국태민안’은 새해를 맞이하는 모든 국민들의 소망으로 집약된다. 국제적으로는 아직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고 가자지구의 전쟁도 종식되지 않았다. 1군 건설업체들의 부도설과 더불어 경제는 매우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올해는 총선이 있는 해이며 여야의 대립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벌써 양당 간에는 험담전쟁이 시작됐다. 소모적인 특검대립에다 비난 성명전이 가일층 심화되고 있다.

올바른 선량을 뽑는 국민 축제가 되어야 할 총선이 이전투구의 정치 현장으로 치닫고 있다. 창해를 빛낼 인재들을 선발해야 하는 당위성을 잊고 있다. 2024 새해는 진정 국민들의 염원에 부응하는 정치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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