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대한이 아직 일주일이나 남았는데 제주에는 벌써 매화꽃이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한 사찰에서 석조에 분홍 매화꽃 비가 분분히 내린 것을 보면 성급하지만 겨울도 다 지나갔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매화는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라고 일컬어진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는 세 벗이라고 하여 시인묵객들이 앞을 다투어 노래하고 화폭에 담았다. 세한삼우를 완상하는 것은 조선 선비들의 정서이자 풍류였다.

매화는 이름도 여럿이다. 눈 속에 피면 설중매(雪中梅), 달 밝은 밤에는 월매(月梅). 비 오는 날이면 우중매(雨中梅)가 된다. 지역에 따라 이름을 붙이기도 하는데 화엄사에 일찍 피는 매화를 화엄매, 통도사 홍매가 유명하다.

조선시대 시인들은 앞을 다투어 매화시를 쓰고 화가들은 매화도를 그렸다. 지난달 일본에서 회류해온 조선청화백자 세한 아회도를 고증하면서 다시 옛 선비들의 유아한 풍류를 되새기기도 했다.

매화는 절개를 상징하여 ‘매(梅)’자를 아호로 쓴 선비들이 많다. 사육신의 한 분으로 끝내 절개를 지킨 성삼문의 아호는 매죽헌(梅竹軒). 세조를 제거하고 전왕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시도가 발각되자 성삼문은 세조 앞에 끌려간 문초를 받았다.

“너는 나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는가? 녹을 먹고도 배반을 하였으므로 명분은 상왕을 복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스스로 정권을 차지하려는 것이 아닌가?”

“상왕이 계신데 나으리가 어찌 나를 신하라고 하십니까? 또 나으리의 녹을 먹지 아니하였으니, 만약 나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내 가산을 몰수하여 헤아려 보시오” -남효온 <육신전> 중에서

충신은 세조로부터 받은 녹봉을 하나 먹지 않고 집안 곡간에 쌓아놓았던 것이다. 아, 의로운 매죽헌은 저잣거리에서 육신을 찢기는 거열형을 당하면서도 충신의 기개를 잃지 않았다.

‘매화는 추운 겨울에도 평생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花一生寒不賣香)’는 말이 있다.

조선 중엽 부안기 매창은 한번 스쳐간 연인을 잊지 못하여 평생을 눈물로 보냈다. 그가 사랑한 문사는 허균과 친구였던 유희경. 매창은 그에게 마음을 주고는 평생 사랑했다. 주위의 온갖 유혹을 뿌리치고 절조를 지킨 매향은 아호대로 지조를 지켰다.

여인들에게만큼은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짓궂은 허균이 부안까지 내려가 매창을 밤새 수창하며 유혹하려 했어도 그녀의 마음을 꺾지 못했다. 매창이 세상을 떠나자 허균은 이런 매창의 절의를 애도하는 글을 지었다.

그녀가 지은 ‘규원(閨怨)’이라는 시는 연인을 그리는 마음이 뼛속까지 사무쳤음을 알 수 있다.

‘혹독한 이별이 한스러워 사립문 닫고서(離恨悄悄掩中門, 이한초초엄중문)/ 비단 소매엔 임의 향기 없고 눈물 얼룩뿐이로다(羅袖無香滴淚痕, 나수무향적누흔)/ 혼자 있는 깊은 방엔 다른 사람 아무도 없고(獨處深閨人寂寂, 독처심규인적적)/ 마당 가득 내리는 보슬비는 황혼조차 가리운다(一庭微雨鎖黃昏, 일정미우쇄황혼).’

어디 이 절구뿐이랴. 매창의 주옥같은 시는 한두 편이 아니다. ‘봄바람에 밤새도록 비가 오더니/ 버들과 매화가 다투어 피네/ 이 좋은 날 차마 못할 짓은/ 술잔을 앞에 두고 임과 이별하는 일이라네’

매화 같은 절의는 지금도 세상을 살아가는 덕목이기도 하다. 배금과 권력에 기생하여 자신을 버리고 살아가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찬 겨울 피어나는 동매에서 교훈을 얻는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