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우리 고전에 등장하는 이도령은 단오날 광한루에 나가 절세 미녀 춘향을 만난다. 글방 도령은 단박에 상사병에 걸려 다짜고짜 안부를 넣고는 심야에 월매집을 담 넘어 침입했다. 이도령은 방자를 꾀어 당일 춘향과 백년해로를 약속한다. 미인 앞에서는 공부고 과거고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신관사또 변학도가 봉고파직을 당한 것은 춘향 때문이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고 온갖 감언이설로 꾀다가 안 되니 관장 능욕죄를 뒤집어씌워 투옥시키기까지 한다. 이 사건으로 변학도의 출셋길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남자라면 미인을 보게 되면 마음이 끌리는 것은 인지상정. 콧대 높은 종실 양반 벽계수는 개경 가는 길에 아무리 미인이 앞에 있어도 마음이 동요치 않는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개성기 황진이를 보고는 말에서 일부로 떨어져 절개를 허물고 말았다.

생불 지족선사마저도 절세미인 앞에는 지조를 잃고 황진이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일주일 밥을 먹지 않아도 초롱초롱 학문에 빠진 화담 서경덕은 통하지 않았다. 자신을 여자로 보지 않는 진솔한 학자 서경덕을 존경해 평생 스승으로 삼았다고 한다.

‘영웅은 호색하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훌륭한 제왕이라고 해도 여자에 빠지면 천하를 잃는다는 것이다. 경국지색이라는 말은 나라를 기울게 할 만큼 아름다운 미녀를 지칭한다.

고대 한무제 때 악사 이연년(李延年, ?~BC101)의 시에서 이 용어가 생겼다는 기록이 있다.

‘북쪽에 어여쁜 사람이 있어 세상에서 떨어져 홀로 서있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을 위태롭게 하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구나. 어찌 성이 위태로워지고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모르겠냐만 어여쁜 사람은 다시 얻기 어렵도다(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寧不知傾城與傾國 佳人難再得).’

하나라 걸왕의 애첩 말희, 은나라 마지막 주왕의 애첩 달기는 중국 상고사에 등장하는 경국지색의 미녀들이다. 주나라 유왕의 애첩 포사도 이들과 비슷하다.

천하의 항우는 호색에 빠졌다는 기록은 없지만 유방과의 해하 전쟁에서 패한 후 강을 건너려 했으나 불가능했다. 옆에는 사랑하는 연인 우희와 애마만 남게 된다. 군사들은 모두 도망가고 사랑하는 연인만 항우를 지키고 있었다.

항우는 처연하게 비가를 불렀다. 그것이 유명한 ‘해하가’다. ‘힘은 산을 뽑고 기개는 세상을 덮었다/ 그러나 세상의 운이 불리하여 추(항우의 애마) 또한 나아가지 않는다/ 추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해야 하는가/ 우(희)여 우(희)여 그대를 어찌해야 하는가?.’

불우한 영웅 항우와 연인 우희는 그 자리에서 자결했다. 문학작품은 이들의 최후를 아름답게 표현해 ‘패왕별희’라고 불렀다. 항우는 절망했어도 마지막까지 그를 지켜준 우희가 있어 행복했는지 모른다. 이들의 비극과 순정을 그린 첸카이거의 명화 ‘패왕별희’는 이제 전설적인 영화가 되고 있다. 얼마 전 서울 국립창극단에서도 이를 각색 앙코르 공연, 구름관중을 모았다고 한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불운의 정치인이다. 그가 수행 비서와의 추문만 없었어도 야당 대권후보로 클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그는 공식석상에 나오면 축사를 할 때도 ‘역사의 소명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도정을 활력 있게 추진하면서 인기도 많았다.

최근 안희정 전 지사의 비서가 그의 여성편력을 조명한 저서를 냈다고 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수행해 그는 ‘미투’ 사건이 일어나기 오래전부터 이미 그의 몰락은 예견된 것이었다고 했다. 다만 권력을 쥔 누구라도 ‘제2, 제3의 안희정’이 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