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집무실 창을 열고 주일 삼종기도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출처: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집무실 창을 열고 주일 삼종기도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출처:연합뉴스)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동성 커플을 인정하지 않던 교황청이 앞으로는 동성 커플에게도 사제가 축복을 내릴 수 있도록 교리를 개정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네티즌 사이에서는 놀랍다는 반응과 문제가 있다는 반응으로 엇갈리고 있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국내 기독교계에 영향을 줄지 관심이 주목된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18일(현지시간) ‘간청하는 믿음’ 제목의 교리 선언문에서 동성 커플이 원한다면 가톨릭 사제가 이들에 대해 축복을 집전해도 된다고 밝혔다. 신앙교리성은 “(동성) 축복이 모든 규정에 어긋난 상황을 승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느님이 모든 이를 환영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선언문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공식 승인을 받았다.

교황청은 동성 커플의 축복은 교회의 정규 의식이나 미사 중에 집전될 수 없고, 혼인성사와는 다르다는 단서를 달았으나, 그동안 가톨릭교회가 동성 커플에 대해 교리적으로 금지해왔던 만큼 기존 전통을 뒤집는 결정이라는 점에서 가톨릭계가 술렁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교리 선언이 가톨릭의 혼란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올리히 레너 미국 노트르담대 신학과 교수는 “일부 주교는 명백히 금지된 일을 하기 위한 구실로 그것을 사용할 것”이라며 “이는 분열로의 초대장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이번 결정이 동성애자 등 성 소수자와 관련해 가톨릭교회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이런 변화의 조짐은 교황의 발언에서부터 조금씩 나타났다. 교황은 지난달 24일 동성애를 범죄로 다루는 법이 부당하다며 교회가 이런 법을 없애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신은 모든 자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며 “동성애는 형사적 죄가 아니라 종교적 죄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교황은 2000년 가까이 여성에게 투표권을 허락하지 않았던 가톨릭 전통을 깨고 올 초 수녀(여성)에게도 세계주교대의원회(시노드)의 투표권을 주는 등 조직에 성별의 경계를 허물며 가톨릭의 변화를 꾀하고자 했다.

고루하고 보수적 색깔 일색이던 국내에서도 적지만 일부 기독 교단들이 성별의 경계를 허물어 여성 목사를 세우거나, 금기와 편견을 깨자며 성소수자 환대 목회를 펼치는 등 현저한 변화가 일고 있다.

문제는 이런 입장이 자칫 성서에 기록된 역사·교훈과 배치될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기독교 경서인 성경은 구약과 신약 전반에 걸쳐 동성애를 ‘죄’로 명시하고 금하고 있다. 구약성경인 레위기 18장 22절과 20장 13절에 따르면 ‘남색(동성애)’과의 동침을 가증한 일이라고 언급하면서 가증한 일을 행할 경우 반드시 죽음이 뒤따른다고 경고하고 있으며, 로마서 1장 27절에서는 ‘남자들도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해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고 쓰여 있다. 고린도전서 6장 9~10절은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신앙인이라면 성서에 기록된 말씀은 ‘신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컨대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최우선 순위를 ‘성경 말씀’에 둔다. 신앙인으로서는 이에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신념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이 우리 사회 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다.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보수 개신교가 교회 밖에서 목소리를 높여 사회적 이미지가 추락한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 개신교는 현재 성 소수자 문제를 두고 ‘원칙’과 ‘포용’이라는 두가지 입장에서 딜레마에 빠진 모양새다. 복음 전파를 위한 사회적인 이미지를 고려했을 때 교회가 성 소수자를 받아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성경이 말하는 법과 원칙 또한 외면해선 안 된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고자 하는 차별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기록돼 있다. 동성애자를 죄인으로 정죄하고 그들을 향해 손가락질 하기보다 그들에게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옳은 길로 인도 할 수 있는 게 신의 뜻을 실천하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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