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2022년 칸 영화제에 초청되어 해외에서도 호평받았던 영화 ‘헌트’는 독특한 콘셉트를 갖고 있었다. 그 독특한 면은 장안의 화제작 ‘서울의 봄’과도 닿아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인식만이 아니라 대중문화 속 인식을 달리 만들었다.

우선 영화 ‘헌트’는 30년 차 배우인 이정재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하지만, 절친인 정우성과 함께 주연으로 열연했는데 실제 현대사의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정재-정우성이 현대사의 굵직한 실제 사건에 관심이 있었다니 새삼 놀라게 한 점이 있었다. 그 실제 사건은 1983년 10월 9일에 버마(미얀마)의 수도 랑군(양곤)에서 벌어진 북한의 대통령 암살 시도였다.

그런데 이를 다룬 영화 ‘헌트’에서 독특한 콘셉트라고 한 점은 단순히 북한 측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던 이 작전에 한국 안기부 요원의 개입이 있었다는 설정 때문이다. 물론 주요 서사 얼개는 독재 정권의 주축이었던 안기부 해외팀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김정도(정우성)의 대립과 갈등이다. 처음에는 누가 안기부 내의 북한 스파이인가를 색출하는 작업이 중심이지만, 중반 이후 중요한 것은 대통령 암살 계획의 실행이었다.

대통령 암살 계획의 시도는 바로 김정도를 중심으로 이뤄지는데, 이들은 모두 군 장교 출신이었다. 왜 그들은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하는가. 그 장교들은 1980년 5.18 참상의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도와 장교 출신들은 5.18 진압이 군인정신에서 어긋나는 행위이기에 수뇌인 대통령을 처단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 같은 설정은 허구지만, 여기에서 두 가지 새로운 관점이 제기된다. 군사독재 정권에서도 참군인 정신을 지향하는 이들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군부세력이 정치에 강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군인다운 역할을 하는 이들의 존재가 갖는 가치를 부각하고 있다. 아울러 안기부를 바라보는 관점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영달만을 위하는 정치화된 안기부 요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 ‘남산의 부장들(2020)’에서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이 보여준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군인이야말로 순수하게 자신의 소신을 보여주며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조폭이나 형사물과는 차원이 다른 순결미와 장엄함이 느껴진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이태신(정우성) 장군도 마찬가지였다. 12.12 군사 쿠데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역사적 팩트 기반이라는 점에서 영화 ‘헌트’와 비슷하다. 전두광(황정민)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의 쿠데타에 맞서 분연히 일어나 맞대응하는 이태신의 실제 인물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이었다. 물론 그가 광화문 앞까지 무력 출동한 것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이태신을 통해 강조하려고 한 점은 역시 자신의 역할과 소명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군인의 참 면모라고 할 수 있다.

한국 현대사에서 정치군인들 때문에 군인 전체가 가치 평가를 낮게 받는 것은 오히려 더욱 바람직하지 못하며, 정치적인 책략이 된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위기 상황에 이를수록 나라와 국민을 생각하는 참군인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민주화된 사회로 자유와 다양성이 구가 되어도 원칙과 규율에 따라 질서를 유지하고 안보와 국방을 최우선시하는 이들이 든든히 버티고 있어야 한다. 그것을 영화 ‘헌트’와 ‘서울의 봄’에서 정우성의 군인정신은 말해주고 있는 듯싶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대중문화에서 군인의 모습은 그리 멋지게 그려지지 않았다. 시대에 뒤처진 문화 지체의 상징이자 아이콘으로 보였다. 하지만, 정우성이 보여주고 있는 군인의 캐릭터는 이와 달리 참군인의 정신과 철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과 분리해 자신의 역할과 본분에 충실한 모습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군인 개인들의 자세와 태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런 군인들에 대해서 온전히 인정하고 평가해 주는 문화가 필요하다. 군복을 자랑스러워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앞으로 비극적인 현대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이며 그것은 민주주의와 국민의 안위에 밀접하다. 마지막으로 ‘늙은 군인의 노래’ 가사를 한 번 되새겨 본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자식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군인 아들 너로다/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간 꽃다운 이 내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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