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민주주의는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자유와 평등이란 두 가지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의 자기 지배의 정치적 원리를 말한다.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이 지배자이면서 피지배자라는 점에서 국민주권을 전제하게 된다. 우리나라 최고 규범인 헌법은 제1조에서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규정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가 일인 또는 다수가 통치하는 전제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법질서를 통하여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기 때문에 법치주의와 결합하게 된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법을 통하여 실현되기 때문에 독일 헌법은 민주적 법치국가를 명문화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실체적 정의와 함께 절차적 정의를 보장함으로써 구체화되고 실현된다. 민주주의는 법에 따라 정치적 활동을 보장함으로써 구체화되고 발전한다는 점에서 국가의 정치체제와 정치 질서를 구축한다.

우리나라는 과거 권위적이면서 권력 중심의 정권을 경험하였고 오랜 민주화 운동의 시기를 거쳤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발전한 것은 이를 위한 국민의 열망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하였지만, 상대적으로 공익과 공공선을 우선하는 공화주의는 민주주의만큼 발전하지 못하였다. 공동체의 이익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공화주의가 발전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도 발전하지 못하게 된다.

민주주의에서 절차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합의를 끌어내기 위한 절차가 보장되어야 한다. 민주국가에서 토론문화가 구축되고 발전하는 것도 절차적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토론은 상대방이 있어야 하고, 서로 대등해야 성사될 수 있다. 그런데 토론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고 배려이다. 토론자들이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면 토론 자체가 진행될 수 없다.

민주주의는 공동체 구성원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배려해야 실현된다. 민주주의는 공동체 의사를 결정하기 위하여 다수결 원칙을 채택하여 다수의 결정을 보장하지만, 이를 반대한 소수도 배려하고 보호한다. 그런데 소위 민의의 전당이라 할 수 있는 국회는 중요한 안건에 대하여 여야가 서로의 입장만 내세우고 충돌하면서 상대방과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합의를 위하여 노력하지 않는다.

국회와 같은 모습은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빈번하게 볼 수 있다. 대화와 토론으로 합의를 끌어내려면 상대방과 입장을 조율하고 타협해야 한다. 상대방의 의견을 도외시하면서 자기주장만 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이렇게 자기주장만 옳다고 강변하면서 일방적으로 억지를 부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억지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결국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

최근 의대 증원 문제로 정부와 의사단체가 간에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정부는 의대를 증원하여 의사의 부족으로 대국민 의료서비스가 점점 어려워질 것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의사단체에서는 지금의 의사 수로도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구 대비 의사의 수가 적정한지 또는 부족한지 명확하지 않다. 명확한 근거가 부족하다면 정부와 의사단체는 의대 증원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는 좀 더 정확하고 구체적 통계와 자료를 가지고 의사단체와 대화를 할 필요가 있고, 의사단체는 무조건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현 의료서비스의 문제를 정부와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과학기술과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향후 20년 안에 의사와 변호사 등 전문자격사가 어떤 직종보다 빠르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문제와 함께 여러 문제를 검토하여 의대 증원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의 심각한 또 다른 이슈는 저출산·고령화 문제이다. 출산율은 정부의 예측과 달리 매년 감소하고 있고, 고령화도 예측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정부의 출산 장려 정책은 실효성이 없고, 인구감소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는 저출산의 원인이 단순히 주택가격, 양육비, 교육비 등에 있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21세기 들어오면서 우리 사회는 이미 일인가구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때는 일인가구를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로만 보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하고 자녀를 출산하여 가족을 꾸려야 할 젊은 세대가 이를 포기한 원인을 찾아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실현이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소멸할 위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