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몇 년 전 미국의 모 대학 교수는 강의 시간에 유학을 온 20개국 학생들에게 자신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을 했다. 여기서 19개국의 학생들은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가족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한국에서 온 학생만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돈이라고 했다. 물론 이 학생은 돈이 있어야 가족을 돌볼 수 있다고 해명했다. 그래서 이 한국 학생은 교수의 질문을 잘못 이해한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미국 교수가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 한국 학생의 답변을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돈은 인간이 경제생활을 하면서 삶을 영위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다. 그렇지만 돈은 수단일 뿐 가치는 아니다. 가족은 삶의 가치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우리는 무엇이 중요한 가치를 갖는지 미래세대에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 그저 경쟁에서 이기고 부를 축적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쟁취할 것만 가르친 결과, 돈이 가치가 된 것이다.

돈이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면서 우리도 모르게 한국 사회는 천민자본주의로 물들었다. 투자라는 용어보다는 투기라는 용어가 범람하면서, 우리 사회는 부동산투기, 주식투기, 코인투기 등 투기에 몰두하면서 서서히 본질이 무엇이고 가치가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또한 잃어버렸다. 본질과 가치를 잃어버리면 인간성도 점차 퇴색하게 되고 물질만능주의에 빠지면서 본능과 감정에 충실하게 돼 이성을 상실하게 된다.

코로나가 종식되면서 세계가 유동성을 줄이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고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정책이 성공하려면 세계 경제 상황이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점차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여전히 부동산에 몰두하면서 개인부채가 국가총생산(GDP)을 넘어서는 어려운 상황에 이르고 있다.

지금은 경제가 문제이지만 미래는 경제만이 문제가 아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24년에는 초등학교 입학생 수가 처음으로 40만명 밑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국가 통계를 보면 2022년 신생아 수는 24만명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2030년에는 초등학교 1학년 수가 24만명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2023년 출생률은 0.7이 안 될 수도 있다고 하고, 2024년에는 0.6 이하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초저출산율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대책은 미흡하기 그지없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했지만,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진지하게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국제사회에서 인구소멸로 국가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경고하고 있지만, 국민과 국가권력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저출산 대책이라는 것도 거의 임시방편적으로 근본적인 원인을 해소할 수 없는 것들뿐이다.

우리나라가 저출산 또는 저출생 국가가 된 것은 경제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런 현상 속에서 부동산투기로 주택가격이 터무니없이 올라가면서 신혼부부의 주택 구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부가 자녀를 출산해도 유치원 의대준비반까지 만드는 해괴한 국가, 공교육제도가 구비돼 있음에도 사교육비가 생활비를 능가하는 상황에서 자녀의 출산은 부부의 정상적인 삶을 옥죄는 것이 될 뿐이다.

이렇게 결혼해 살기 팍팍한 상황에서 누가 결혼하고 자녀를 출산해 기를 것인지 그 답은 명확하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여성의 사회진출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활발해지면서, 자녀출산으로 인한 여성경력의 단절이란 이상한 현상까지 판치고 있다면 더이상 정상적인 출생률을 기대하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이다. 이에 더해 사회 일각에서는 남녀 간의 갈등을 조장하기까지 하니 젊은 세대에게 결혼은 인생의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미래세대가 줄어들면 그만큼 국가의 미래도 불투명해진다고 볼 수 있다. 사회구조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역삼각형인데, 이는 60세 이상의 고령층이 2030세대보다 많아지는 경우이다. 이런 구조가 되면 기반이 약화돼 무너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가 그런 구조로 가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신없는 사람들은 주택가격에만 몰두하고 있고, 정부는 집값의 연착륙이란 허울 좋은 정책만 내세우면서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 오로지 총선에만 몰두하고 있는 정치권은 유권자에 대한 선심 정책만 나열하고 있고, 국가의 미래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국가의 미래는 결국 국민이 책임을 져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국가의 미래 아니 우리 자손의 미래를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