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화재·조유나 사건 등 경제 문제로 일가족 사망 잇따라
IMF 등 금융위기때 자살률 상승한 뒤 높은 수준 유지 경향
경제 어려울수록 사기 범죄 극성… 경제적 손실 우려 커져

지난 1일 울산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이 숨진채 발견됐다. 경찰은 가장 A씨가 경제적 문제를 겪어오다 가족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은 일가족이 사망한 집의 현관 모습(왼쪽). 조유나양과 부모가 탑승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승용차량이 한달여만에 바다에서 발견돼 인양된 가운데 경찰이 지난해 6월 29일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항으로 옮겨진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출처: MBC 보도화면 캡처, 뉴시스) ⓒ천지일보 2023.12.13.
지난 1일 울산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이 숨진채 발견됐다. 경찰은 가장 A씨가 경제적 문제를 겪어오다 가족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은 일가족이 사망한 집의 현관 모습(왼쪽). 조유나양과 부모가 탑승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승용차량이 한달여만에 바다에서 발견돼 인양된 가운데 경찰이 지난해 6월 29일 전남 완도군 신지면 송곡항으로 옮겨진 차량을 살펴보고 있다. (출처: MBC 보도화면 캡처, 뉴시스) ⓒ천지일보 2023.12.13.

[천지일보=홍보영 기자] #1. 이달 초 울산의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일가족 4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관문에는 테이프로 ‘마지막 경고’라는 문구가 적혔는데 대기업 직원이자 가장인 40대 A씨가 경제적 문제를 겪어오다 가족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A씨는 2013년 집을 담보로 1억 4300만원을 빌렸으나 이 돈을 갚지 못해 지난 해 집이 경매에 붙여졌고, 올해 9월 새 주인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집이 팔린 후에도 A씨가 나가길 거부하자 새 주인이 퇴거를 요청하며 이 같은 경고문을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2. 지난해 6월 ‘제주도 한 달 살기 체험’을 하러 전남 완도군으로 떠났다가 실종된 조유나양 일가족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조양 가족이 탄 아우디 차량은 완도 신지면 송곡항 주변 앞바다 수심 10m에서 인양됐다. 경찰은 포털사이트 활동 이력을 분석한 결과 조양 부모가 ‘루나 코인’을 샀다가 손실을 본 정황을 확인했다. 아울러 ‘방파제 추락 충격’ ‘완도 물 때’ ‘수면제와 극단적 선택 방법’ 등을 검색한 이력도 확보했다. 조양 일가족이 실종되던 무렵은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가 폭락했던 시기와 맞물렸다. 당시 루나 폭락 사태로 피해를 본 투자자는 약 20만명으로 추산됐다. 특히 이 중 10여만명에 달하는 투자자는 ‘빚투(빚을 내서 투자함)’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피해는 더욱 심각했다. 조양의 지인들은 조양 가족도 루나 코인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안타까운 이 두 사례의 공통점은 한 개인의 극단적 선택을 넘어 일가족 모두 사망에 이르게 됐다는 점이다.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경찰 조사 과정에서 나타난 흔적들은 그간 가장의 책임감에 대한 압박감이 크게 작용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가장으로서 경제적 어려움이 해결되지 않자, 자신뿐 아니라 딸린 식구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가족 살해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극단 선택 배경된 경제적 요인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배경에는 경제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 특히 사기를 당한다든지 투자에 실패해 한꺼번에 많은 재산을 소진하면 그만큼 정신적 타격을 크게 입게 된다. 이에 경제·정신적 피해 예방에 나아가 자살 예방을 위해서도 금융범죄를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일명 돌려막기인 ‘폰지사기’는 출금이 막히기 전까지는 실제 고수익을 맛보기에 재투자하는 경우가 많아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정부의 대책이 시급하다.

실업률·상대적빈곤율 변동률과 자살률 변동률. (제공: 보건복지부) ⓒ천지일보 2023.12.13.
실업률·상대적빈곤율 변동률과 자살률 변동률. (제공: 보건복지부) ⓒ천지일보 2023.12.13.

경제적인 문제는 극단적 선택을 넘어 일가족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심각한 사회 문제를 초래한다. 자살률은 실업률, 상대적 빈곤율과 높은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실제 과거 사례를 보면 1997년 외환위기, 2002년 카드대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등 사건을 계기로 자살률은 상승한 뒤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경향을 띤 것으로 나타났다. 실업률·부채율 등 경제적 지표의 변화는 자살 위험 요인으로도 쓰인다.

2021년 경찰청 변사자료 자살통계에 따르면 극단적 선택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주된 원인으로는 정신적 문제와 경제생활 문제가 꼽힌다. 경제생활 문제는 전체 사망자 중 24.2%로 정신적 문제(39.8%)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자살의 원인으로 여성은 전 연령대에서 정신적 문제가 1위였지만, 남성은 정신적 문제(남 32.1%)와 경제생활 문제(30.2%)와의 차이는 0.1%에 불과해 별 차이가 없었다. 특히 31~60세 남성은 경제적 비중이 가장 컸다. 직업별 자살 사망자 수도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학생·가사·무직이 60.0%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자살생각은 무직·학생·주부가 2.4%로 가장 높았고, 그다음으로 비정규직 1.4%, 정규직 0.7% 순이었다.

이처럼 경제적 문제는 극단적 선택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정부는 경제생활 문제가 자살, 가정 해체, 만성적 빈곤 등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복지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긴급복지생계지원금은 최장 6개월간 4인 가구 기준 153만 6천원에 상당하는 금액이 지원된다. 다만 위기 사유로 주소득자가 사망, 가출, 해방 불명, 구금 시설에 수용이 되는 상황, 실직·휴업·폐업 등으로 소득을 상실했거나, 중한 질병 혹은 다쳤거나 화재·자연재해 등으로 인한 생활이 어려운 경우로 한정된다.

주요 자살동기별 비율. (제공: 보건복지부) ⓒ천지일보 2023.12.13.
주요 자살동기별 비율. (제공: 보건복지부) ⓒ천지일보 2023.12.13.

◆금융범죄, 사실상 구제방안 전무

이처럼 갑작스러운 사고·재해 등을 당하면 복지혜택이 돌아가지만, 사기 등 금융범죄의 피해를 당하게 되면 지원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기 쉽다. 배상명령 제도로 배상을 받을 수 있지만 이 또한 받기 쉽지 않다. 배상명령 제도란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선고하면 피해자의 신청이 있을 경우 가해자에게 범행으로 인해 발생한 직접적인 물적 피해, 치료비, 위자료의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현실상 위자료를 받기는 쉽지 않다. 예자선 변호사(법무법인 광야)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실상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의 피해구제가 안 되고 있다. 형사재판에서 유무죄를 따지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데다 금액을 계산하기까지 과정도 쉽지 않기 때문”이라며 “나아가 형사 피해자들이 변호사를 전부 선임하지 않을뿐더러 일부 변호사를 선임하더라도 배상명령 제도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재판이 대법원까지 진행되면 판결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적어도 몇 년씩이나 걸려 배상받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친다.

범죄유형 가운데 사기 범죄가 증가 추세인 것도 경제적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최근 공식 범죄통계(법무연수원, 범죄백서 2022)에 따르면 강력·흉악범죄로 분류되는 살인, 강도, 방화범죄 등은 최근 10여년 사이에 상당한 감소 추세를 보이지만 절도·사기 범죄는 점점 늘고 있다.

카드사용, 모바일 기기(앱), 인터넷 이용 등 대금결제 수단의 변화로 현금을 큰 액수로 소지할 가능성이 현저하게 줄어든 탓에 폭행 협박을 수단으로 재물을 강취하는 사례가 줄고 타인을 기망해 재산상의 이익을 취하는 사기범죄가 점점 늘어나는 것이다.

실제로 형법범죄 중 절도범죄(17%)와 사기범죄(33%)가 50%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기범죄가 절도범죄 발생 건수를 훨씬 웃돌고 있다는 점도 두드러진다. 특히 60세 이상 노인층의 불법 사금융 피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불법 사금융 피해자 중 60세 이상이 36.5%를 차지하는 등 금융사기 취약계층인 노년층의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폰지사기 등 불법 업체들은 노인층의 은퇴 후의 삶에 관심이 높은 점을 이용해 은퇴 박람회 등으로 접근하거나 조합 사업을 가장해 ‘평생 연금’처럼 배당금을 지급한다며 현혹하고 있다.

사기범죄는 코로나19 팬데믹에 이어 불황이 계속돼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로 인한 비대면 활동의 증가와 일상생활의 사이버화로 사이버범죄 발생건수는 전년 대비 5.8% 증가했다. 이 가운데 사이버사기는 타 범죄유형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지난해 전체 사이버범죄 23만 355건 중 사이버사기는 15만 5715건으로 67.6%에 달한다. 이는 2021년(14만 1154건) 대비 10.3% 증가한 수치다.

이해국 가톨릭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는 “국가 경제가 어려울수록 사기범죄 건수는 많아진다”며 “코로나 이후에 경제적으로 좋아질 거라고 기대했는데 경제적 불황이 닥쳐오니 그 틈을 타서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한 사기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고령층의 경우 사기를 당하면 젊은 층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젊은 층이야 경제적 손실을 입더라도 앞으로 벌면 된다지만 고령층은 한 번 무너지면 자살로 연결되는 위험성이 젊은 층보다 더 높다”고 설명했다.

(캡처: 네이버 카페) ⓒ천지일보 2023.12.13.
(캡처: 네이버 카페) ⓒ천지일보 2023.12.13.

◆전 재산 날릴 고위험 폰지사기

“제가 가입자는 아닌데 엄마가 전 재산을 투자하고 대출까지 받았는데 도저히 이게 사기라는 걸 믿지 않아서 정보 좀 얻고 싶습니다.”

최근 고령층 대상으로 폰지사기가 극성인 가운데 네이버 카페 ‘시더스 휴스템코리아 사기 피해자들의 모임’에 올라온 글이다. 휴스템코리아 투자자의 자녀가 폰지사기임을 확신해 모친에게 투자 철회를 설득했지만 실패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고민 글을 올린 것이다.

사기 중에도 특히 폰지사기는 위험하다. 폰지사기 특성상 신규 투자자들을 이른 시일 내 끌어 모으기 위해 높은 배당금을 지급하는데, 신규로 유입되는 투자금이 줄어들면 구조가 무너져 막차를 탄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된다. 돌려막기로 ‘폭탄 돌리기’를 하는 셈인데 터지기 전 ‘원금 보장’ 약속과 고수익을 꼬박꼬박 챙겨주며 신뢰를 쌓아 온 덕에 투자자들은 전 재산을 몽땅 투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본지 취재 결과 폰지사기 의혹을 받는 와콘이나 휴스템코리아 투자자의 경우 전 재산을 몽땅 집어넣거나 나아가 대출까지 받아 투자한 사례도 여럿 있었다. 한 사례를 보면 휴스템코리아의 경우 본지가 서울 서초구청에서 법원으로 해산명령을 청구했다는 보도 당시 한 투자자는 자기 전셋집의 전세금을 빼서 투자하고 월세방으로 이사를 했고 거기다 자녀들 명의로 대출까지 받아 투자한 상태였다. 이 투자자는 해당 기사를 접하고 회사가 해체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극단적 선택까지 마음먹었다.

홍진표 삼성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피해자의 대처 방법으로 “폰지사기나 피싱을 당할 경우 보통 피해자들이 수치심이 들어 자책을 많이 하게 된다. 이 때문에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혼자서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능하면 빠른 시기에 가족들에게 이런 사기를 당했다는 것들을 알려주고 특히 노인들은 문제 해결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여러 사람과 같이 상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주변 사람들한테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에서 수치스러워하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공공기관에 지원받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해국 가톨릭대학교 정신의학과 교수는 “자살 충동이 커지는 경제적 손실을 대비해 정부가 강력하게 시그널(신호)을 줘야 되지 않겠냐”며 “(범죄 조직에게) 처벌도 강화하고 경제적인 사회복지적인 지원도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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