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 ‘모방 자살’ 사례 빈번

장국영·최진실 죽음 후 자살↑

“자살률 증가 경향 반복돼 와”

연예인 기획사 모니터링 중요

이선균, 국민적 신뢰도 높아

‘모방자살 계층’ 폭넓을 수도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통계청)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통계청)

[천지일보=유영선 기자] 배우 이선균씨가 지난달 27일 안타까운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다.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과 인기 드라마 ‘나의 아저씨’ 출연 등으로 명성을 얻은 그가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난 것은 충격이었다. 유명 연예인의 사망 소식에 ‘베르테르 효과’를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특히 이씨는 젠틀한 이미지와 더불어 활발한 작품 활동으로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만큼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자살률 1위라는 ‘자살공화국’ 오명을 쓴 우리 사회에서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이 또 다른 극단적 선택을 낳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최진실 사망 후 전년比 자살 790명↑

베르테르 효과란 유명인의 또는 존경하거나 선망하던 인물의 자살 소식을 접한 이후 그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똑같이 목숨을 끊는 것을 시도하는 사회 현상을 일컫는다. 모방 자살 효과(Copycat suicide effect)라고도 한다. 1774년 발표된 독일의 문호 볼프강 폰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한 심리학 용어다. 소설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연인 로테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자 그녀와의 추석이 담긴 청색 코트와 노란 쪼기를 입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 소설이 출판된 이후 다수의 독자들이 베르테르처럼 노란 조끼를 입고 권총으로 자살하는 이들이 즐비했다.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이 실제 모방 자살로 이어진 사례는 빈번했다.

2003년 홍콩 배우 장국영의 자살로 하루에 홍콩 남녀 6명의 팬이 그와 같은 방법으로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어 큰 파장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도 배우 이은주씨가 숨진 2005년 2월 22일 전후로 하루 평균 자살자가 0.84명에서 2.13명으로 2.5배가 늘었다는 통계가 있다. 이씨의 자살 이후 당시 20대의 자살자 숫자(15.5% → 30.6%)와 의사(목을 매 죽음) 비율(53.3% → 79.6%)도 급증했다.

2008년에는 배우 안재환에 이어 배우 최진실도 스스로 목숨을 끊어 큰 충격을 안겼다. ‘베르테르 효과’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던 해이기도 했다. 안씨가 2008년 9월 차량에서 연탄가스 질식사로 숨진 뒤 부산과 울산, 강원도 등지에서도 유사한 방법으로 자살을 택한 사건이 총 4차례 연이어 발생했다. 안씨의 사망소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차량이나 숙박업소에서 연탄을 피워놓고 일산화탄소에 질식돼 사망했다.

2008년 10월 당대 최고 스타였던 최진실씨가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자 전국적으로 슬픔과 큰 충격에 휩싸였다. 최씨가 자살한 후 2달 동안 국내 자살자는 2406명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1616명)보다 790명 증가했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자살 공화국’의 오명을 얻은 것은 이런 베르테르 효과가 적잖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故 최진실
故 최진실

◆“주변의 각별한 관심·신경 필요”

홍진표 서울삼성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베르테르 효과와 관련해 “실제로 유명인이 자살하게 되면 그를 좋아했거나 그 사람과 동질감을 느꼈다던가 그 연예인과 비슷하게 우울 증상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 행동을 따라서 하고 싶은 충동 같은 게 생긴다”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실제 과거에도 유명 연예인들이 자살하고 나면 자살률이 소폭 증가하는 경향을 반복적으로 보여왔다”며 “이선균씨 사건도 자살 위험성이 있는 분들한테는 충격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주위에서 좀 더 각별한 신경을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상빈 광주광역시 동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도 “‘유명인도 자살하는데 내가 살아야 할 필요가 있나’라는 심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 센터장은 “선망하는 유명인이 극단 선택을 하면 ‘저렇게 잘나간 사람도 죽는데 내가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져 든다”며 “특히 청소년 같은 경우 유명인을 우상처럼 보고 살았기 때문에 삶에 대한 회의감에 빠져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강조했다.

구성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 역시 “연예인들은 공인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갖는 영향력이 굉장히 크다. 케이팝이나 케이컬처 등 국내외적으로 사람들의 어떤 정서에 큰 영향을 주는 상황에서 유명 연예인이 자살하면 베르테르 효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구 교수는 이선균씨의 경우 다채로운 연기 스펙트럼으로 주목받은 배우인 만큼 베르테르 효과가 특정 세대에 한정되지 않고 더 넓게 확산할 우려가 있다고 예상했다. 그는 “과거에는 설리나 구아라 등과 같은 젊은 20대 여성들이 자살하면 또래 여성들이 따라 자살한다든가 최진실 때도 그랬다. 특이한 게 이선균이란 배우는 어떤 특정 세대에만 한정해서 영향력을 끼쳤다기보다 연기 스펙트럼이 넓다”고 설명했다.

구 교수는 “이선균씨가 중년에만 영향을 준 게 아니고 영화 ‘기생충’을 통해 글로벌 영향력도 ‘나의 아저씨’ 같은 드라마를 통해 젊은 층이나 어려운 사람들도 포용하는 캐릭터로 나왔고 국민적인 신뢰가 굉장히 높은 배우였다”면서 “관심을 갖고 호감을 표하는 연령 계층이 굉장히 다양했고 그렇기 때문에 베르테르 효과가 특정 세대나 집단에 한정되는 게 아니고 더 넓게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지낸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선균씨 사망의 충격이 ‘베르테르 효과’를 불러오지 않도록 학계와 언론 모두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2008년 10월 최진실씨가 사망한 다음주에 우울증을 앓던 환자가 똑같은 방식으로 목숨을 끊는 일을 직접 체험한 바 있다.

故 이선균의 발인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출처: 뉴시스)
故 이선균의 발인이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출처: 뉴시스)

◆“자살 예방교육·캠페인 참여 독려”

전문가들은 베르테르 효과를 예방하기 위해선 주위의 관심이 필요하고 자살 예방교육이나 캠페인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평소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주변인들이 함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돋아주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자살 예방교육이라든지 캠페인 같은 걸 통해 결코 혼자가 아니다. 사회에 자신을 아끼는 많은 사람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살 고민하던 사람들이 격려를 받고 힘을 얻어서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며 “주위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를 다지는 스스로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구성우 교수는 베르테르 효과를 없애려면 근본 원인이 되는 연예인의 극단 선택을 막는 게 우선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연예 기획사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구 교수는 “기획사에 소속된 연예인들이 심리적으로 문제는 없는지 이런 것들을 좀 더 철저하게 모니터링을 해서 자살을 방지할 수 있도록 가장 중요한 책임을 지는 게 소속사”라며 “그만큼 영향이 크니까 그런 걸 방지할 책임이나 의무도 일단 소속사가 중요하게 지는 게 맞다. 말하자면 중대재해처벌법 같이 산업재해가 일어나면 원청의 책임자가 처벌을 받게 되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설명했다.

구 교수는 “극단 선택의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자살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고 그것이 얼마나 문제가 될 수 있으며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한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기는 것인지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줄 수 있는 캠페인이나 프로그램 교육 같은 게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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