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2022년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3만 2156명)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3만 9453명)이 더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자살 문제가 3년간 전 세계를 휩쓸었던 감염병보다도 심각하다는 걸 보여준다.

자살의 원인을 우울증 등 각종 정신 질환으로만 치부해선 문제의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자살은 한 개인을 삶의 벼랑 끝으로 몰고 간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작용해서 나타난 사회 복합적인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20년 연속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회 각 곳에 곪아있는 문제를 해결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게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한 생명이라도 살리고 자살을 막는 생명 장치를 만드는 일은 꼭 필요하다. 본지는 자살 예방 문제를 살펴보고 생명 존중의 의미를 되살리는 기획 기사를 연재한다.

서울 마포대교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서울 마포대교는 마포구 용강동과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잇는 교량이다. 서울의 20개 넘는 한강 다리 중 자살률 1위라는 어두운 이면을 갖고 있다. (출처: 뉴시스)
서울 마포대교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서울 마포대교는 마포구 용강동과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잇는 교량이다. 서울의 20개 넘는 한강 다리 중 자살률 1위라는 어두운 이면을 갖고 있다. (출처: 뉴시스)

‘자살 명소’ 불명예 안은 마포대교

마포대교, 서울 주요 한강 교량 중 극단 선택 시도 가장 多

논란된 자살 문구 없앤 뒤 난간 높이고 지능형 펜스 설치

수동적 예방법에 불과 자살 막는 근본 대책 필요성 제기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축구장 7개 면적 철제 그물망 설치

투신 시도 후 구조된 시민 “손이 난간 떠나는 순간 후회”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벤치에 두 남성이 한강을 등지고 앉아있다. 한 남성은 무슨 일이 있는지 굳은 얼굴이다. 축 처진 어깨에 목에 맨 넥타이를 반쯤 끌렀다. 옆에 앉은 다른 남성이 그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볼을 꼬집으며 미소를 띤 얼굴로 말한다. ‘이보게 친구야, 한 번만 더 생각해 보게나.’

서울 마포대교 중간 지점 전망대 구간에 설치된 ‘한 번만 더’라는 이름의 동상 모습이다. 서울시가 투신자가 많은 마포대교에 자살 예방을 목적으로 설치했다. 천지일보는 최근 마포대교를 직접 걸어봤다. 다리 밑에는 한강 물이 대낮임에도 검게 출렁였다. 다리 위에 서니 1400여m 교량의 끝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지난 2019년까지 난간에 새겨졌던 자살 예방 문구는 흔적만 남아있었다.

그때 경찰관이 순찰차에서 내려 이름을 물었다. 난간을 유심히 살펴보며 혼자 서성이는 모습을 보고 ‘자살 위험인물’로 오해한 것이다. 경찰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한 뒤 하루에 몇 번이나 마포대교를 순찰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돌아온 답변. “셀 수 없을 정도죠.”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서울 마포대교 중간 지점 전망대 구간에 설치된 ‘한 번만 더’ 동상. 서울시가 투신자가 많은 마포대교에 자살 예방을 목적으로 설치했다. ⓒ천지일보 2023.11.30.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서울 마포대교 중간 지점 전망대 구간에 설치된 ‘한 번만 더’ 동상. 서울시가 투신자가 많은 마포대교에 자살 예방을 목적으로 설치했다. ⓒ천지일보 2023.11.30.

◆마포대교가 ‘자살교’ 된 까닭은

우리나라는 20년째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 주요 한강 교량 중에서도 마포대교는 우리나라 자살 문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마포대교는 마포구 용강동과 영등포구 여의도동을 잇는 교량이다. 1968년 착공 당시만 해도 황무지 같았던 여의도가 ‘서울의 맨해튼’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됐다. 그러나 마포대교는 서울 주요 한강 다리 중 자살률 1위라는 어두운 이면을 갖게 됐다.

김길영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달 10일 소방본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2023년 9월까지 서울 시내 주요 한강 다리 위 자살 시도 건수는 총 2345건에 달했다. 이 중 마포대교가 622건으로 가장 많았고, 한강대교 232건, 양화대교 172건, 한남대교 158건, 동작대교 138건 등이 뒤를 이었다.

20개 넘는 한강 다리 중 마포대교에서 유독 자살이 많은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있다. 그중 하나는 여의도 증권가에서 주식에 실패한 개미 투자자나 투자 상품 판매에 실패해 배상 책임을 지게 된 증권사 직원들이 마포대교로 발길을 향했다는 분석이다. 이후 미디어에 자주 노출되면서 주식과 관계없는 사람들도 몰리게 돼 ‘자살교(橋)’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는 것이다.

◆‘생명의 다리’ 되기 위한 노력

마포대교 위에는 ‘한 번만 더’ 동상 외에도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장치가 설치돼 왔다. 서울시는 지난 2012년 난간에 센서를 설치해 보행자의 움직임에 따라 자살 예방 문구를 노출했다. 문구는 시민 공모를 통해 선정했다. 그러나 일부 문구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수영 잘해요?’라는 문구가 대표적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폭포는? 나이아가라 폭포’ ‘하하하하하하하’ ‘짜장면이 좋아? 아니면 짬뽕이 좋아’ 등 자살 예방과는 관련 없는 문구도 있었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는 지난 2019년 자살 예방 문구를 모두 없앴다. 지난 2021년 난간 펜스를 사람 키보다 높이고 손잡이 부분에 롤러를 설치해 다리 안쪽으로 떨어지게끔 했다. 다리 육상 부분에는 중간의 케이블이 끊어지거나 10㎝ 이상 벌어지면 장력 센서가 작동돼 즉시 119구조대가 출동하는 ‘지능형 철제 펜스’를 설치했다.

4개의 수난구조대에 흩어져 있던 모니터링 체계를 통합해 인공지능(AI) 딥러닝 기반의 시스템도 도입했다. AI가 CCTV 영상을 딥러닝으로 학습해 투신 시도자의 행동 패턴을 찾는 방식이다. 그 결과 자살 시도로 숨진 사람은 지난 2021년 13명에서 올해 2명으로 줄었다.

그러나 자살 시도자에 대한 이러한 관리는 ‘수동적’ 예방법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다. 정작 자살을 예방하는 근본 대책이 부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시가 마포대교 난간에 자살 방지 구조물을 설치할 당시 온라인상에는 칭찬보다 쓴소리가 더 많았다. ‘자살 예방 문구보다 애초에 넘지 못하도록 한 게 잘했다’는 반응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살고 싶은 나라가 아니라 죽지 못하는 사회가 됐다’ ‘자살을 어렵게 만들지 말고 자살 시도를 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줘야 한다’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투신 지연 효과를 만들어 구조대가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을 버는 게 구조물 설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 설치된 투신 방지용 철제 그물망. (출처: 금문교 고속도로교통국 홈페이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에 설치된 투신 방지용 철제 그물망. (출처: 금문교 고속도로교통국 홈페이지)

◆금문교에 설치된 ‘철제 그물망’

화려한 도심 속 교량에서 목숨을 던지는 일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명물 ‘금문교’는 매년 30여명이 다리에서 투신해 ‘자살 명소’라는 오명을 썼다. 금문교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와 마린 카운티를 잇는 2727m 길이 교량이다. 이곳에서 지난 2011년부터 10년간 총 335명이 목숨을 끊었다.

샌프란시스코 정부는 2억 1700만달러(약 2813억원)를 들여 금문교 구간 전체에 투신 방지용 철제 그물망을 설치하고 있다. 지난 2018년 금문교 난간 6m 밑에 스테인리스 철강으로 제작한 그물망을 설치하기 시작해 12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그물망의 총면적은 축구장 7개를 합친 크기다.

그물망의 재질이 스테인리스 철강이라는 점에 대해 샌프란시스코 정부는 “뛰어내린 사람에게 고통스러운 부상을 입혀 다시는 투신하지 않게 하는 한편 투신을 시도하려는 다른 사람에게 경고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강경한’ 방지물은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78년 UC버클리대학의 리처드 세이든 박사 연구에 따르면 금문교에서 투신 시도를 저지당한 515명을 추적한 결과 90% 이상은 수십년 후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다.

과거 금문교에서 투신했다가 구조된 한 시민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손이 난간을 떠나는 순간 바로 후회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나처럼 극단 선택 시도를 해서 살아남은 수천명의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모두 같은 순간에 후회했다”며 “극단적인 생각을 행동에 옮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 전체의 불안 없애야”

마포대교나 금문교 같은 ‘자살 명소’는 나라마다 생겨나는 추세다. 자살을 막는 장치는 꼭 필요하지만 자살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대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 출신인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사회 전체적으로 불안이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교수는 “자해, 타해, 자살, 타살은 같은 기제에서 일어난다고 본다”며 “내 안에 세로토닌(감정 행동, 기분, 수면 등 조절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이 낮아졌을 때 자살도 증가하고 타살도 증가한다”고 말했다.

이어 “자살만 줄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고 자살을 줄이면 타해나 타살이 늘어나게 된다”며 “결국 우리 사회 공격성이나 분노, 우울이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묻지 마 범죄’ 같은 타살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는 “코로나19와 경제 위기 등으로 전 국민이 가지고 있는 기저 불안이 이전 세대보다 높다”며 “일부 사람들이나 정신질환자에만 한정하지 않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생명 존중 운동이라든지 분노를 줄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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