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분단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번영은 세계사에서도 손꼽을 놀라운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 때 그나마 남아있던 자원도 빼앗기고 헐벗었던 과거를 극복하고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거듭난 것은 자랑할 만한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는 머무르지 않고 진행된다는 점에서 그동안 쌓아 올린 것을 더욱 확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아 우리의 삶을 점차 팍팍하게 만든다.

얼마 전 수십 년 전 사라졌던 빈대가 다시 출몰해 확산하고 있다는 소식이 고물가로 어려움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도 있지만, 빈대퇴치 후 넋 놓고 있다가 대한민국은 기습당한 것 같은 상황에 놓였다. 기존의 빈대퇴치제도 통하지 않아서 퇴치제를 만들거나 수입할 때까지 국민은 개개인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언론보도를 보면 스포츠에서 한일전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2015년 이후 많은 스포츠 종목에서 한일전 성적이 급락하고 있는데, 여자농구는 지난 9년간 전패였고, 남자 배구, 핸드볼 등 구기 종목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연령별 대표팀 간 전적에서도 밀리고 있다니 스포츠의 미래가 결코 밝다고 볼 수 없다. 이는 저출생으로 인한 문제도 있지만 국가 스포츠정책이 실패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스포츠의 대중화·생활화로 전 국민이 스포츠에 관심을 갖고 즐기기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운동이 건강에 유익하다는 점에서 생활스포츠가 활성화되고 있다. 2016년 전문체육을 전담하던 대한체육회와 생활체육을 담당하던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하면서,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이 통합됐다. 이렇게 통합된 것은 스포츠의 생활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었지만, 국제경기를 위한 전문체육의 경우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가 됐다.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의 통합에 대한 진지한 검토도 없이 스포츠의 확산을 통해 국민건강을 증진한다는 이름으로 통합을 강행했고, 그 결과는 앞으로도 계속해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전문체육과 생활체육의 통합으로 대한체육회의 조직과 업무는 커졌지만,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국민의 수만 늘어났을 뿐이다. 엘리트체육이라 할 수 있는 전문체육은 생활체육의 저변 확대로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이 미미할 뿐이다.

생활체육을 확대한다고 전 국민이 스포츠인이 될 수는 없다. 이런 문제를 정치적으로 판단해 결정하게 된다면, 기대를 벗어난 결과가 국민에게 돌아올 뿐이다. 여기서 결과가 좋으면 이를 추진했던 정치권이 전면에 나서겠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전문 분야의 문제는 전문가들이 풀어야 하지만, 정치권이 개입하게 되면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정치적 성격으로 인해 근대 독일은 법치를 내세운 국가원리를 만들었다. 법치는 선동적이고 불확실한 정치를 안정성을 추구하는 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통제하고자 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과거 무원칙과 무계획적인 재정운영을 차단하기 위해 국가재정법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도 없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의 도구로 오·남용될 수도 있다.

예산심의에 한참이어야 하는 국회는 여야 간에 정쟁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다. 입으로는 민생을 외치면서 오로지 정당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을 보면 정당제 민주주의의 위기를 실감하게 된다. 이제는 그들은 헌법이 규정한 제도들을 오·남용하면서 헌법 질서를 어지럽히기도 한다. 헌법이 규정한 국회의원의 특권 취지를 무색하게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법치의 진정한 의미도 무시한다.

경제위기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는 가운데, 고물가에 고통받고 있는 국민의 삶을 보듬어야 할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내년 선거만 의식하면서 여야 간에 정쟁만 벌이고 있으니 입법부의 위상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이다. 주택문제를 대출로 풀거나 규제하는 방법만으로 해결하려는 누구나 아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정부나 전가의 보도처럼 무차별적 탄핵소추를 발의하고 다수로 법안을 밀어붙이는 야당이나, 당내 주도권 쟁취에 몰두하고 있는 여당이나, 그리고 뜻대로 안 된다고 신당 창당을 띄우고 있는 일부 정치세력이 우리나라 정치의 민낯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권이 국민의 삶을 조여드는 다양한 민생문제에 진지한 모습으로 임하지 못한다면, 역사 앞에서 그 법적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