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김누리 기자]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0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주요 금융지주 회장단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 발언하고 있다.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20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주요 금융지주 회장단 간담회’에 참석해 모두 발언하고 있다.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지금 시점에서 은행이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정부에 맞기 전에 내거나, 맞고 내거나.”

얼마 전 만난 금융권 관계자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던진 말이다. 총선을 앞두고 금융권은 정치권의 ‘금융사 때리기’에 연일 시달리고 있다.

물가 상승에 따른 긴축 기조,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수익 성장, 대출금리가 오를수록 커지는 국민들의 이자 부담. 정치권은 금융권이 막대한 이자수익을 거뒀다는 명목으로 횡재세를 내거나, 그에 준하는 상생금융 기금을 낼 것을 강요하고 있다. 교묘한 물타기로 보일 만큼 금융사를 향한 압박 수위가 높아진 것이다.

물론 금융사들이 분기마다 발표하는 수익을 봤을 때 상대적 박탈감과 질시가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국내 4대 금융지주만 해도 올해 16조 5328억원에 달하는 당기순이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 이들 금융지주가 거둘 이자이익도 58조 8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 상태다.

금융사들이 막대한 이자이익에 힘입어 역대 최대 실적을 갱신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국민들이 못마땅한 시선으로 금융권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셈이다.

문제는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 정서를 등에 업고 관치금융을 펼친다는 점이다.

정부만해도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고 있다”며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고 깊은 한숨을 쉬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달 들어선 “우리나라 은행들이 갑질을 많이 한다”며 “그만큼 우리나라 은행의 과점 상태, 일종의 독과점”이라고 재차 날을 세웠다.

대통령의 발언에 힘입어 금융당국과 정치권에서도 “은행이 별다른 혁신 없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누리고 있다”며 상생금융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당국과 정치권이 외치는 상생금융, 횡재세는 과연 합리적인 방향일까. 금융권 관계자들을 비롯해 전문가들마저 “가계부채 급증, 외국인 투자자 이탈 등 부작용이 커질 수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올해 3월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주요 금융회사를 방문하며 얻어 낸 ‘대출금리 인하’의 부작용만 해도 그렇다. 이 원장은 당시 시중은행을 방문해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에 대해 거론했고, 은행권은 이에 맞춰 대출금리를 내렸다.

50년이라는 초장기 주택담보대출도 금융당국의 압박에 시중은행이 내놓은 상생금융 상품이었다.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은 원리금을 50년에 걸쳐 상환할 수 있는 대출 상품이다. 만기가 길어져 대출자가 갚아야 할 전체 원리금은 늘어나지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줄어 전체 대출 한도를 늘릴 수 있다.

정부가 50년 만기 보금자리론과 적격대출을 출시한 이후, 시중은행에서도 우후죽순으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했다.

금리가 내려가고 초장기 만기 대출 상품이 나타나면서 가계대출은 자연스럽게 급증했다. 줄어들 기미를 보였던 가계대출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자 당국은 은행권에 책임을 물었다.

국민들이 금융사에 대해 못마땅한 시선을 보이는 만큼, 당국을 향한 금융사들의 시선 역시 ‘고깝다’ ‘못 미덥다’에 가까워진 상황이다.

부작용을 낳은 정책에 책임을 지지 않는 당국을 국민이 신뢰할 수 있을까. 화이트칼라에 속하는 은행권에 대해 질시를 보낼 수 있어도, 이들 역시 삼성, 현대와 같은 민간사라는 점을 되새기고 볼 수 없는 것일까.

이제부터라도 당국이 표심을 얻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 대신 정말 국민을 위한 정책을 내놓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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