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관악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천지일보DB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관악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천지일보DB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최근 윤석열 정부의 금융정책 실패론이 재차 불거지고 있다. 지난해 청년층 내 집 마련을 이유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설계했던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급증의 주요 원인으로 ‘은행권 50년 만기 주담대’를 지목하면서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은 지난 17일 17개 은행의 은행장들을 소집하고 영업현장에서 DSR(주담대 총부채원리금 상환비율) 등 현행 대출 규제가 적용됐는지 확인할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향후 금리상승 기대 약화, 자산가격 상승 기대감 등이 확산될 경우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더욱 빨라질 수 있다”며 “일선 영업현장에서 현행 대출 규제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거나 우회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히 점검·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부원장은 “대출 취급 시 차주 소득심사, 담보가치 평가 등 필요한 여신심사절차가 관련 내규에 따라 적정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전체 가계대출 및 특정 차주군에 대한 대출 증가 규모·속도가 여신정책, 리스크관리 정책, 자본관리 계획 등에 부합하는 범위 이내에서 유지되도록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가계부채 급증의 원인으로 은행권 50년 만기 주담대를 지목한 셈이다.

이에 은행권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은행권의 50년 초장기 주담대 취급은 정부 당국의 기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금융위원회는 가계대출 정상화 방안 안에 50년 초장기 정책모기지를 도입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금리 상승기 취약차주 부실 가능성에 대비해 상환 부담을 낮추고 청년층의 ‘내 집 마련’ 자금 마련을 돕겠다는 취지에서였다.

이에 따라 지난해 8월 한국주택금융공사(HF)는 50년 만기의 보금자리론과 적격대출을 출시했고, 올해 1월 특례보금자리론을 출시했다. 이후 한화생명, Sh수협은행, DGB대구은행, 하나은행, NH농협은행, 신한은행, KB국민은행, 우리은행 등 금융권도 50년 만기 주담대를 출시했다.

문제는 50년 만기 주담대 등장 이후 가계대출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의 2023년 7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68조 1천억원으로 한 달 전보다 6조원 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증가 폭만 따졌을 때 2021년 9월(6조 4천억원) 이후 22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가계대출 잔액이 크게 늘어난 것은 주담대의 영향이 컸다. 아파트 거래 증가에 주택 구입 자금 수요가 늘어 대출이 증가한 것이다.

7월 주담대는 전월보다 6조원 늘어난 820조 8천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1년 7월(6조원) 이후 가장 큰 증가 폭을 기록한 것이다.

가계대출이 급증하자 금융당국은 기조를 바꿔 은행권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는 “나이 제한 등 은행권 내 50년 만기 주담대와 관련된 가이드라인이 없다”며 “DSR 우회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연령, 소득 제한 등 기준 마련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지적 이후 NH농협은행과 BNK경남은행은 50년 만기 주담대 판매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타 은행도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맞춰 상품 기준을 수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50년 만기 주담대 판매에 제동을 걸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과 혼란도 이어지고 있다. 대출 한도는 물론 실행 여부 자체를 알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이 시의성에 맞게 변동될 수 있다. 다만 후폭풍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 ‘설익은 정책’을 내놓은 이후 이에 대한 책임을 은행권에만 묻는다면 금융권과 소비자가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무조건 ‘은행의 잘못’이라고 책임을 떠넘기기보다 금융시장 내 시스템을 안정시킬 방법과 소비자의 불안을 잠재울 ‘완성도 있는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누리 경제부 기자. 
김누리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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