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극복할 문제 아니라 느껴
자살유가족, 낙인 경험 많아
얘기 쉽지 않지만 극복 위해
자조모임서 아픔 공유 필요

자살예방교육 강사로 활동 중인 심소영씨 (제공: 본인) ⓒ천지일보 2024.01.04.
자살예방교육 강사로 활동 중인 심소영씨 (본인 제공) ⓒ천지일보 2024.01.04.

[천지일보=김민희 기자]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힘들었겠다’, ‘고생 많았겠다’고 말할 거예요. 그런데 ‘아버지가 자살로 돌아가셨다’고 말한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자살로 가족을 떠나보낸 유가족은 ‘자살 생존자’로 불린다.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낸 경험으로 얻게 된 심리적 외상을 견디며 생존한다는 뜻이 담겼다.

자살 생존자인 유가족들은 또 다른 자살로 이어질 위험이 일반인보다 20배가량 높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연구팀이 지난 2008~2017년 국내 모든 자살 사망자와 유가족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자살유가족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586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기간 일반 인구 자살률인 인구 10만명당 26명보다 22.5배가량 높은 수치였다.

자살예방교육 강사로 활동하는 심소영씨는 최근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살유가족은 가족이 자살로 죽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말하더라도 비난받는 경우가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유가족이) 자살에 대해 제대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주변에서는 적절한 위로와 공감을 해줄 수 있는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씨는 자살 고위험군에 속하는 자살유가족에 대해 “애도를 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일상을 회복하고 다시 잘 살아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심씨는 13년 전 아버지를 자살로 떠나보냈다. 사회복지사였던 심씨는 그 이후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게 됐다. 지난 2018년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서 생명지킴이 강사 양성 교육을 받은 뒤 자살예방교육을 하고 있다. 2500여명의 자살 생존자들이 가입한 인터넷 카페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미고사)’의 운영진으로 자조모임도 운영하고 있다.

심씨는 자살유가족을 향해 “기나긴 애도의 길을 함께 걸어 나가자”고 말했다.

다음은 심씨와의 일문일답이다.

― 아버지가 돌아가신 아픔을 어떻게 극복했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 기도하면 좋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1년을 기도했는데도 너무 힘들고 아팠다. 혼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자살유가족 자조모임을 찾게 됐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지낼까 궁금했다. 기독교 단체에서 하는 자조모임,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자조모임, 미고사 자조모임, 생명의전화 자조모임을 나갔다. 처음 모임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듣는 게 고통스러웠다. 내 아픔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2년 정도 되니까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고통스럽지 않게 됐다.

― 주변 사람 대신 모임을 선택했던 이유는.

아버지의 자살은 너무나 당황스럽고 충격적이었다. ‘왜 미리 알지 못했을까’ 하는 죄책감으로 굉장히 괴로웠다. 그렇지만 가족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말을 못 했다. 얘기를 꺼내면 슬픔이 감당이 안 돼서 힘들어질 거로 생각했다. 어머니와 동생도 아버지처럼 자살하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2년 정도 지나자, 아버지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오면서 (가족들과) 감정을 공유하게 됐다. 비로소 서로 애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보통 가족관계가 좋으면 이렇게 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서로 원망하게 될 수도 있다. 원망할 대상이 없으면 자기 자신을 원망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자살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유가족에게 카페나 자조모임의 의미는.

자살유가족은 이야기를 충분히 하면서 애도를 잘해야 한다. 그러나 유가족 대부분은 가족이 자살로 죽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말해도 비난받는 경우가 많다. 장례식에서도 사람들의 눈총 때문에 사인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다.

다른 운영진 한 명과 자살유가족의 낙인에 관한 경험을 연구하려고 유가족 10명 정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유가족의 얘기를 들어보니 처음에는 (가족의 자살을) 숨기다가 위로받고 싶어서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다. 지인이 반응을 잘해주면 좋겠지만 대부분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모른다. 배워본 적이 없어서다. 그러다 보니 침묵하거나 ‘그만 생각해라. 갈 사람은 가고 살 사람은 살아야지’라고 말한다. 나름대로 생각해서 한 말이지만 유가족은 상처받는다.

이렇게 혼자 말하지 못하고 말하더라도 상처받은 경험을 하게 되면 우울해진다. 우울감이 심해지면 자살 생각도 높아진다. 그래서 자조모임에 나오거나 인터넷 카페에 글이라도 올려서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게 도움 된다. 자조모임은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안전한 장소다. 아무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고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당연히 알아듣는다. (유가족끼리) 동질감을 느끼고 유대감을 형성한다. 이런 모임들이 필요하다.

― 자조모임은 어떻게 진행되나.

우선 자조모임 수칙을 읽는다. ‘누구나 공평하게 말할 권리가 있다’, ‘내 아픔이 상대방의 아픔보다 크지 않다’, ‘각자의 고유한 아픔이 있음을 이해하고 존중해달라’, ‘술이나 약물을 반입하지 않는다’는 등의 내용이다. 이야기하기 어려운 분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내한다. 그런데 (모임에 나와서) 말을 안 하고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처음에는 말을 안 하겠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이야기한다.

수칙을 읽은 뒤 각자 자기소개를 한다. 모임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가족을) 어떻게 잃게 됐는지 말한다. 그날 주제가 있으면 (주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같이 저녁 식사도 한다.

― 모임을 하는 동안 힘들어하는 사람은 없나.

이야기를 하면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 아프다. 상처가 건드려지니 아프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얘기하면서 위로받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간다.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나만 아픈 게 아니라 함께 아픈 거구나’, ‘아픔을 얘기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서 차츰차츰 본인의 이야기를 하게 된다.

애도의 과정은 짧지 않다. 저도 아버지를 잃은 지 13년 됐지만 애도가 다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아버지가 그리워 문득문득 울기도 한다. (애도는) 이런 걸 길게 하는 작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너무 힘든 과정이다. 자조모임에 나와서 함께 나누는 게 중요하다.

― 유가족에게 어떻게 위로해 주는 게 좋은가.

‘네 잘못이 아니다’, ‘많이 힘들었겠다’, ‘언제든지 얘기하고 싶으면 해도 괜찮다’, ‘기억해도 괜찮고 말해도 괜찮다’ 이런 말을 해준다면 참 좋을 것 같다. 누구나 힘들 때가 있지만 상담가를 찾아가기는 쉽지 않다. 옆에서 따뜻한 위로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자살은 사회 문제인데 개인의 문제, 가족의 문제로 떠넘기는 일이 너무 많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많은 사람을 만났다.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지만, 상처 주는 사람도 많이 만났다. 아버지 사건을 겪은 지 얼마 안 됐을 때 (내게 안 좋게) 대우하는 사람을 보며 ‘당신도 똑같이 당해보면 그 마음 알 거야’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상처를 딛고 나와 많은 유가족을 만나고 자살예방교육을 하게 됐다. 교육 중에 내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를 듣고서 나와 내 가족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당당하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공감해 주고 격려해 준다. (유가족은)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다.

― 유가족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유가족 중에는 아직도 혼자 숨어서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애도의 과정은 길다. 애도를 함께할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으니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밖으로 나오면 좋겠다. 자조모임에도 나와서 함께 애도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얘기함 사이트 (자살유가족 지원)

https://www.kfsp.or.kr/trt#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다음 카페 (자살 사별자를 위한 온라인 공간)

https://cafe.daum.net/suicidesurvivor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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