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막강한 사우디아라비아 오일머니가 한판승을 거뒀다. 한국은 대통령과 총리,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위시, 대기업 총수들까지 모두 나가 부산 엑스포 유치에 노력을 기울였지만 역부족이었다.

당초 사우디, 이탈리아가 먼저 나서고 한국이 후발주자로 도전했을 때부터 이 게임은 승산이 없다는 얘기가 있었다. 우리가 우려했던 대로 오일머니의 힘이 많은 나라의 동조를 얻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고 반발하고 있다.

오일머니의 위력은 우리 국민들도 즐겨보는 영국 프로축구 EPL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우디 빈살만 왕세자가 사들인 뉴캐슬은 지난해는 중위권에서 맴돌던 팀이었다. 그러나 빈살만이 사들인 후 유럽 축구 판도를 바꿔 놓았다.

올 챔스 출전기회를 얻은 뉴캐슬은 프랑스 강호 파리생제르맹(PSG) 하고도 1:1로 비기는 위력적인 팀으로 성장하고 있다. 빈살만은 직접 이 경기를 관람하고 한국의 날쌘돌이 이강인을 주목했다는 외신보도가 따른다.

사우디 프로축구는 EPL 득점왕이었던 손흥민 선수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몇 번 스카우트를 제의했으나 손흥민 선수는 의연하게 이를 거절했다. 많은 스타 선수가 사우디로 떠났지만 돈보다 명분을 선택한 것이다.

유럽 프로축구계에서 사우디 오일머니의 독점은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얼마 안 가 축구 종주국에서 황금만능 위주 행태는 철저하게 배격당하는 결과가 올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은 부산 엑스포 유치가 힘겨운 일인 줄 알면서 국민의 열정에 힘입어 총대를 멨다. 사우디로 결정된 직후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했다.

언론에서는 해당 장관인 박진 외교부 장관을 경질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다. 가장 열심히 뛴 장관을 경질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윤 대통령은 코피를 흘릴 정도로 여러 나라를 방문해 정상들을 만나면 부산 엑스포 유치 당위성을 호소했다. 96개국 정상과 150여 차례 만났고, 수십개국 정상들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다.

재계는 엑스포 유치 불발에 아쉬움을 나타내면서도 민관이 협력해 새로운 글로벌 시장을 발굴하는 등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비록 실패했지만 얻은 것도 많은 것으로 분석했다. 대한민국의 산업 전반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알리면서 글로벌 비즈니스 기회를 확대한 계기가 마련됐다는 긍정적인 분석을 내놨다.

대한상공회의소도 논평에서 ‘여러 나라들이 소비재부터 첨단기술, 미래 에너지 솔루션까지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춘 한국과 파트너십을 희망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글로벌 인지도 강화, 코로나 기간 중 못했던 신시장 개척, 공급망 다변화, 새로운 사업 기회 확보 등 부수적인 성과도 얻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야당 일각에서는 유치 실패에 대한 험담을 퍼부었다. ‘상황 예측을 전혀 못 했다면 무능의 극치’라고 했고 한 의원은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고 촌평했다. 야당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뛴 관계자들을 조금이나마 격려했다면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을 게 아닌가.

부산은 다시 일어나야 한다. 이번에 못 했으니 다음에는 기회가 온다. 실패를 서로 헐뜯고 잘못만을 비난해서는 다음 일을 추진하는 데 동력을 잃는다. 대한민국의 저력이면 더 큰 행사도 유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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