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 ‘물가안정체계’ 가동
양·질 낮춘 ‘꼼수 인상’ 대응
논란 1년여 만에 실태조사
대응 늦었다는 지적도 나와

[천지일보=황해연 기자] 고객이 한 대형마트에서 상품을 고르고 있다. ⓒ천지일보DB
[천지일보=황해연 기자] 고객이 한 대형마트에서 상품을 고르고 있다. ⓒ천지일보DB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올해 물가 상승률이 당초 예상보다 더디게 둔화되는 가운데, 정부가 본격적인 물가 잡기에 나섰다. 정부는 각 부처 차관을 물가 책임관으로 하는 특별물가안정체계를 가동한 데 이어 기업들의 편법 인상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채소류·과일 등 일부 먹거리 품목의 물가가 하락하거나 상승 폭이 둔화하는 등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정부가 너무 늦게 대응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꼼수 인상 문제가 이미 예전부터 대두된 만큼 적시 대응을 하지 못해 소비자 보호가 미흡했다는 주장이다.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1월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3.8% 상승했다.

올해 물가 상승률은 1월 5.2%에서 2월 4.8%, 3월 4.2%, 4월 3.7%, 5월 3.3%, 6월 2.7%, 7월 2.3% 등으로 축소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8월 3.4%로 상승 폭을 키운 후 9월(3.7%), 10월까지 석 달 연속 3%대를 기록했다.

최근 3개월 들어 물가 상승률이 커지면서 정부가 그간 공언해 온 ‘10월 물가 안정론’이 빗나가게 됐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7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브리핑, 10월 비상경제장관회의 등 공식 석상에서 10월부터 물가 상승률이 완화될 것이라는 ‘10월 안정론’을 거듭 피력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올해 남은 2개월간 물가 둔화세는 예상보다 더딜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우리나라의 올해 물가 상승률을 3.6%로 0.2%p 상향 조정했다. 이는 정부(3.3%)와 한국은행(3.5%)보다 높은 수준이다.

IMF는 내년 물가가 2.4%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물가안정 목표치인 2%에 도달하는 것은 내년 말에서야 가능하고, 고금리 기조를 상당 기간 더 유지해야 할 것으로 전망했다.

부정적인 전망이 이어지면서 정부는 ‘물가 잡기’ 총력전에 나서는 분위기다.

정부는 지난 9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물가관계차관회의를 소집하고 각 부처 차관을 물가 책임관으로 하는 특별물가안정체계를 가동했다. 이는 기재부를 중심으로 교육부, 행정안전부 등 10개 부처가 참여하는 일종의 물가 현장 대응 컨트롤타워다.

각 부처 차관은 농·축·수산물 생산·유통 현장, 의류·신발 업계 등 현장을 직접 뛰며 물가에 부담을 주는 요인들을 발굴하고 공조가 필요한 사안은 회의 안건으로 논의하고 있다.

지난 17일 2차 회의에서는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양 또는 질을 떨어트리는 ‘슈링크플레이션(shrinkflation)’ ‘스킴플레이션(skimpflation)’ 등 꼼수 인상이 안건으로 상정됐다.

실례로 동원F&B는 원가 상승에 대응해 조미김 상품인 ‘양반김’ 2종과 ‘동원참치 라이트스탠다드’ 중량을 줄였고 BBQ는 올리브유 가격이 오르면서 100% 올리브유에서 해바라기유 50%를 섞은 블렌딩 오일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칠성음료도 델몬트 오렌지·포도 주스 용량은 그대로 두고 과즙 함량을 100%에서 80%로 줄였다. 서민들의 체감물가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가격 상승에 반발이 클 것을 우려해 기업들이 꼼수 인상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김병환 기재부 1차관은 2차 물가관계차관회의에서 “이러한 행위는 정직한 판매행위가 아니며 소비자 신뢰를 저해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중요한 문제로 엄중히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추 장관도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해 “정직한 판매 행위가 아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부는 슈링크플레이션 등 꼼수 인상에 대응해 이달 말까지 한국소비자원을 중심으로 주요 생필품 가격 실태조사를 추진하고 소비자 알권리 제고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의 전방위 대응으로 배추·상추 등 일부 채소류 물가가 하락하는 등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최근 물가 상승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 사과 등 일부 과일은 할인 지원에 힘입어 가격 상승 폭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태조사 등 꼼수 인상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한발 늦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슈링크플레이션은 업계의 오래된 꼼수이자 관행으로 글로벌 고물가 현상이 뚜렷했던 지난해 이미 해외에서도 논란이 되면서 주목받았다. 이에 따라 해외 다수 국가는 슈링크플레이션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조사에 더 무거운 소비자 정보 제공 의무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대책을 구체화하고 있다.

프랑스는 제품 용량을 변경할 때 소비자에게 고지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안을 추진 중이고 독일 정부도 관련 입법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국내에서도 가격은 그대로 두면서 초코바·요구르트·과자 등의 용량을 줄이는 사례가 속출해 논란이 됐지만 정부 차원의 뚜렷한 대응은 없었다. 대응이 한발 늦었던 만큼 외국에 비해 대책 마련도 진도가 더딘 상황이다.

지적이 이어지면서 정부는 생필품 실태조사를 진행해 슈링크플레이션 등 꼼수 인상에 대해 대응할 구체적인 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속도를 낼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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