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영화제 예산 대폭 삭감
영화관 수익, 코로나19 이전
회복하려면 아직 한참 멀어
영화제 시상식서 영화가 아닌
드라마가 주연 대접 받기도
죽지 않았다는 선언, 오히려
극장 위기 반추로 보이기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시민들이 ‘THEATER IS NOT DEAD(극장은 죽지 않았다)’라고 쓰여 있는 포토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공식영상)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시민들이 ‘THEATER IS NOT DEAD(극장은 죽지 않았다)’라고 쓰여 있는 포토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공식영상)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THEATER IS NOT DEAD(극장은 죽지 않았다).’ 

지난 13일 폐막한 부산국제영화제(BIFF) 굿즈(상품)를 판매하는 ‘p!tt’의 슬로건(표어)이다. 해당 슬로건은 굿즈뿐 아니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두레라움 광장에도 대문짝만하게 놓여 있었다. 이는 영화제의 근간이 극장에 있다는 점을 방증해준다. 하지만 이 문구엔 ‘아직은’이라는 문장이 빠진 듯한 느낌이 강하다. 시시각각 극장·영화관, 그리고 영화제의 위기는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저 문구가 위기를 반추하는 표현일 수도 있다.

◆내년 영화제 지원액 올해 절반 

일반적으로 영화제는 특정 지역에서 특정 기간 특정 영화관들에서 영화를 집중 상영하는 행사를 의미한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등은 ‘웨이브’ 등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를 통해 영화를 단기간 상영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영화제는 극장에 모여 새로운 영화를 보는 행위다. 그런데 이 영화제가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정부는 2024년도 영화 관련 예산을 큰 폭으로 삭감했다. 일단 영화제에 집중해보면, 올해 예산 56억원에서 무려 절반가량인 28억원을 줄였다. 56억원 중 BIFF가 받은 금액은 12억 8000만원이다. 아무리 BIFF가 우리나라 영화제 중 제일 규모가 크고 중요하다지만 28억원 중 절반에 육박하는 12억원을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니, BIFF의 내년 자원은 크게 줄 수밖에 없다. 

특히 내년부터는 국내와 국제 영화제를 구분 짓지 않고 하나로 묶는다. 2023년도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사업설명자료를 보면 국내영화제와 국제 영화제 지원을 구분해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내년엔 그렇지 않다. 그렇게 ‘국내 및 국제 영화제 지원’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퉁 친 예산이 25억 2000만원이다. 올해 52억 5000만원에 절반도 안 된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시민들이 ‘THEATER IS NOT DEAD(극장은 죽지 않았다)’라고 쓰여 있는 포토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공식영상)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시민들이 ‘THEATER IS NOT DEAD(극장은 죽지 않았다)’라고 쓰여 있는 포토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공식영상)

‘독립영화제 개최지원’ 예산은 3억 7000만원에서 2억 9600만원이 된다. 애초 예산이 워낙 적어 삭감 금액 자체는 크지 않지만, 비율만 따지면 3분의 1가량이 사라진다.

게다가 국내·국제영화제를 통합해 기존 40개 지원에서 20여개로 축소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국내·국제를 뭉뚱그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8억원이 편성된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 관련 사업’, 4억원이 편성된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사업’은 내년엔 한푼도 배정되지 않았다. 지역 영화 시장이 고사할 상황에 부닥친 셈이다. 

현재 지역의 영화 소외 문제는 삭감된 예산과 관련되는 제작이나 교육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단 극장의 수가 적어 영화 관람 자체도 쉽지 않다. 특히 지역에선 아트하우스(예술 또는 독립) 영화를 상영하는 곳을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그래도 서울엔 멀티플렉스에서도 곳곳에 아트하우스관을 운영하는 데다가, 아트하우스 모모, 씨네큐브 등 전문 영화관도 있다. 한국영상자료원도 존재한다. 그러나 지역은 그러지 못해 영화 커뮤니티엔 ‘000 영화 왜 여기선 상영 안 하냐’ ‘왜 지방에선 000 안 걸어주냐’ 등 하소연이 꾸준히 올라온다.

빈 극장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빈 극장 이미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극장 괴롭힌 코로나·가격인상·OTT

저런 불만은 지역 극장 수가 늘어야 해결되는데, 그러긴 쉽지 않다. 영화관을 향한 발길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제의 위기보다 더 오래됐다.

영화제 지원 위기는 영화관에 사람이 찾지 않는 데부터 시작했다는 점에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관 입장권 수익의 3%는 영화발전기금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모은다. 이 기금은 영화 사업 지원에 쓰이는데, 코로나19를 거치며 기금 수익이 대폭 감소했다. 

코로나19가 연말에 시작된 2019년 540억원이었던 영발기금 수입은 2020년 110억원, 2021년 140억원, 2022년 179억원으로 팬데믹 동안 그 전의 절반도 벌지 못했다.

올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 단적인 예로 추석 대목의 극장가 상황을 볼 수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9월 전체 매출액은 653억원으로 2017~2019년 9월 전체 매출액 평균(1233억원)의 52.9% 수준을 기록한 데 그쳤으며, 전년 동월 대비로는 35.9%(366억원) 감소했다”고 밝혔다.

이어 “추석 연휴 사흘간의 전체 매출액은 160억원으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이던 2020년과 2021년을 제외하면 2008년 이후의 추석 연휴 사흘 기준 역대 최저 매출액 기록”이라고 전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부가 대형마트, 백화점, 영화관, 독서실 등 시설에 대한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를 해제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7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QR코드 및 안심콜 체크인을 하고 있다. 방역패스가 해제되는 시설은 ▲독서실·스터디카페 ▲도서관 ▲박물관·미술관·과학관 ▲백화점·대형마트 등 대규모점포 ▲학원 ▲영화관·공연장 등 6종 시설이다. ⓒ천지일보 2022.1.17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부가 대형마트, 백화점, 영화관, 독서실 등 시설에 대한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를 해제하기로 결정한 가운데 17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QR코드 및 안심콜 체크인을 하고 있다. 방역패스가 해제되는 시설은 ▲독서실·스터디카페 ▲도서관 ▲박물관·미술관·과학관 ▲백화점·대형마트 등 대규모점포 ▲학원 ▲영화관·공연장 등 6종 시설이다. ⓒ천지일보 2022.1.17

영화관들, 특히 대형 멀티플렉스들은 입장권 가격을 올리는 쪽으로 위기를 타개하려 했지만, 대중들은 오히려 극장 나들이를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이 됐다. 영화를 사랑하는 ‘시네필(Cinephile, 영화광)’들 조차 영화 커뮤니티에서 불만을 쏟아냈다. 

영진위에 따르면 팬데믹을 거치며 영화관들이 1000원씩 3차례에 걸쳐 가격을 인상한 끝에 국내 영화관의 평균 관람 요금은 지난해 처음으로 1만원을 넘었다. 

영발기금 대상이 아닌 OTT로 영화를 보는 추세가 는 것도 영발기금 수익 저하를 가속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관객들은 재밌어 보이는 영화가 나와도 극장을 찾는 대신 한 두달 기다리는 쪽을 택한다. 그러면 대부분 영화를 OTT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이런 단면이 엿보였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미개봉 한국영화를 소개하는 ‘한국영화의 오늘:스페셜 프리미어’에서 3편을 공개했는데, 이중 ‘화란’을 제외하면 ‘발레리나’ ‘독전2’가 모두 OTT 작품이었다. OTT가 대세인 추세를 반영하듯 극장 개봉영화보다 OTT 개봉영화가 더 많았던 것이다.

그래도 이 세 작품은 영화였지만, 영화제에서 영화가 주인공이 아닌 순간도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OTT 작품에 대해 시상하는 글로벌OTT어워즈를 처음 열었다. 여기서 최다 수상의 영예를 안은 작품은 영화가 아닌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인 ‘무빙’이었다.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진행되고 있다.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이 진행되고 있다.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그럼에도 지원은 계속돼야 한다”

영화계가 우울한 상황에 빠지는 가운데 웅크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란 조언이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영화제는 더욱 많아져야 하고 예산도 늘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본지와의 통화에서 김 평론가는 “현재 극장가는 두가지 점에서 위기다. 하나는 상영관, 특히 멀티플렉스 방식이 한계에 이른 점, 둘째는 제작되는 영화들이 관객들이 원하지 않는 작품들이라는 점”이라며 영화제가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김 평론가는 “멀티플렉스가 한때는 어디서나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역할도 했다”면서도 “스크린 독과점에 따라 획일적인 영화들만 상영이 됐고, 천만 관객 돌파를 위한 영화만 상영하다 보니까 천편일률적인 영화들이 많이 나왔다”고 꼬집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코로나19를 거치면서 비대면 어떤 경험보다는 대면 경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관객이나 젊은 세대들도 느끼게 됐다”며 “영화제에서 상호작용이 있는 영화와의 만남, 영화인들과의 어떤 조우가 더 대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영화 ‘달짝지근해: 7510’의 이한 감독(왼쪽부터)과 유해진 김희선 한선화 등 배우들이 부산국제영화제 야외무대인사에 나서고 있다.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달짝지근해: 7510’의 이한 감독(왼쪽부터)과 유해진 김희선 한선화 등 배우들이 부산국제영화제 야외무대인사에 나서고 있다.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BIFAN 등이 포함된 국내개최영화제연대도 공동성명에서 “2023년 한국영화산업 결산보고서에 따르면 한국독립영화 개봉 편수는 131편인 반면, 제작 편수는 1574편에 이른다”며 “산업이 미처 포괄하지 않는 영화는 어디에서 관객을 만나고 격려받아야 하나. 영화제 지원 축소는 단기적으로 영화문화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영화 산업에도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 자명하다”고 꼬집었다.

국내개최영화제연대는 “강제규, 봉준호, 류승완, 김한민, 연상호, 이병헌 감독 등 천만 관객 신화의 주인공부터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한국영화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는 엄태화(콘크리트 유토피아), 유재선(잠), 민용근(소울메이트), 정주리(다음 소희), 한준희(넷플릭스 ‘D.P.’) 감독에 이르기까지 영화제는 수많은 창작자의 산실이 돼 왔다”고 강조했다.

강원 광주 대구·경북 대전 부산 인천 전북 제주 등 독립영화협회가 뭉친 ‘지역영화 네트워크’도 입장문을 내고 “(지역 영화문화 지원사업은) 소외된 지역에서 시민과 영화인이 함께 성장하고, 지역 영화 문화 생태계를 선순환의 구조로 뿌리내릴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으로 기능해왔다”고 주장했다.

2013년 제정된 문화기본법 5조에는 국가는 지방자치단체의 문화 관련 계획, 시책과 자원을 존중하고, 지역 간 문화 격차의 해소를 통해 균형 잡힌 문화 발전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올해 개봉한 ‘오펜하이머’를 비롯해 ‘인터스텔라’ ‘인셉션’ ‘다크나이트’ 등으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극장 근본주의자’로 유명하다. 영화는 극장에서 우선으로 관람해야 한다는 지론이다. 그러나 ‘영화=극장’이라는 공식이 점점 허물어지는 현재에서 극장이 지위를 유지하려면, 영화제가 명맥을 이어가려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영화제 지원예산 삭감 철회를 촉구하는 국내개최영화제연대의 공동성명서. (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SNS)
영화제 지원예산 삭감 철회를 촉구하는 국내개최영화제연대의 공동성명서. (출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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