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모’ 노무현 당선에 큰역할
부정적 특징 드러나는 팬덤들
같은 성향 동조하며 세력 과시
당 내부 반대세력에 격렬 반응
정치양극화 심화에도 영향끼쳐
“정치인부터 대화로 풀어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강성 지지자들로 구성된 더불어수박깨기운동본부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 반란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들을 겨냥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이 수박은 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란 뜻이다. (출처: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강성 지지자들로 구성된 더불어수박깨기운동본부 회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에 반란표를 던진 민주당 의원들을 겨냥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이 수박은 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란 뜻이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원민음 기자] ‘팬덤(fandom)’이란 영어로 ‘광신자’라는 의미다. 특정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묶어 부르는 개념인데 보통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팬 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다만 정치권에서의 팬덤은 그 의미가 달라졌다. 그냥 좋아만 하는 게 아니라 선거나 정책 결정에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이 됐다. 최근엔 이를 넘어 말 그대로 ‘광(狂)’적인 행태로 일반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는 일들 또한 서슴지 않고 행해 사회적 문제로도 종종 거론되곤 한다.

◆인터넷망의 보급과 팬덤정치의 시작

우리나라에서 팬덤정치의 시작은 2000년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열풍이라고 알려져 있다. 당시 20대 대학생들이 초고속인터넷망의 보급과 함께 본격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집단을 이뤄 활동했으며,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전의 한국 정치사에서는 보기 힘든 현상이었다. 물론 그 전에 지역주의 정치로 대표되는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시절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에게 열광했던 분위기가 지금의 팬덤정치까지 발전했다고도 볼 수도 있다. 노사모 이후 그 영향을 받아 그 후 ▲이명박 전 대통령 팬덤 ‘명박사랑’ ▲박근혜 전 대통령 팬덤 ‘박사모’ ▲문재인 전 대통령 팬덤 ‘문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팬덤 ‘개딸’ 등이 생겨났다.

◆정치적 팬덤의 특징 ‘집단혐오’

팬덤은 사실 특정한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감정적 유대에 기반하는 성향을 띈다. 물론 그 자체로는 나쁠 것이 없으나 요즘엔 부정적인 측면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나 이념, 정책을 특정 정치인을 통해 실현하려 하기보다는 지지하는 정치인의 모든 행위를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과 반대 입장인 정치인과 정치세력을 배척하고 이들에게 실력행사를 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

이에 더불어 자신들이 혐오하는 정치인이나 정치집단을 다른 사람들도 혐오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또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반대정당을 향한 공격도 그렇지만 당 내부의 반대파에게 더 격렬하게 반응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스마트폰과 SNS의 대중화로 이러한 팬덤정치가 훨씬 더 용이해진 측면이 있다. 활동공간이 오프라인에서 익명 활동이 가능한 온라인으로 넘어가면서 점점 더 노골적이고 거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팬덤은 국민의힘보다 같은 당의 ‘수박(비이재명계나 친문 의원에 대한 혐오 표현)’을 더 싫어한다. 지난달 24일에는 비명계로 분류되는 이원욱 의원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 ‘민주당 내의 검찰독재 윤석열의 토착왜구 당도5 잔당들’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렸다.

또 ‘나에게 한발의 총알이 있다면 왜놈보다 나라와 민주주의를 배신한 매국노를 백번 천번 먼저 처단할 것이다’, ‘본인의 사익과 안위를 위한 민주당 밀정들을 비판한다’라는 문구도 담겼다.

5.18 폄훼 망언으로 물의를 빚은 자유한국당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의원을 징계하는 여부를 논의하는 당 윤리위원회가 모처에서 비공개로 열린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으로 김진태 의원을 비호하는 '태극기 부대' 회원들이 진입, 불법 집회를 하며 성조기 등을 들고 김 의원 등에 대한 윤리위 제소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5.18 폄훼 망언으로 물의를 빚은 자유한국당 김진태, 김순례, 이종명 의원을 징계하는 여부를 논의하는 당 윤리위원회가 모처에서 비공개로 열린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으로 김진태 의원을 비호하는 '태극기 부대' 회원들이 진입, 불법 집회를 하며 성조기 등을 들고 김 의원 등에 대한 윤리위 제소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직·간접적 영향 끼치는 팬덤

초대형 정치 이슈에는 관련 현장에 수천여명이 몰리기도 한다. 정치 현실을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이 충돌하는 현장이지만, 실상은 같은 성향끼리 동조하며 세를 과시하는 모습들이 대부분이었다.

비록 주장하는 의견을 나타낸다지만 그 실체는 혐오 가득한 언어폭력이다. 시위장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람들은 거칠고 앙칼진 목소리를 쏟아내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보는 대다수 시민들은 큰 소음과 정제되지 않은 단어들에 눈살을 찌푸리며 자리를 피하곤 한다. 이런 행태는 결국 많은 사람에게 정치혐오를 키우는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또 다른 문제점으로 팬덤들 즉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인들의 모습에 정치의 실질적인 역할이 점점 실종된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강성 지지층이 좋아하는 언행이 거대양당에게 지속된다면 상대 당과의 협치가 될 리 만무하다.

최근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안건을 단독 처리해 본회의에 직회부하고 대통령이 이에 대해 국회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여야가 협상을 못하고 아예 양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 국민의 갈등을 해소하고 미래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국민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한국은 스페인 브라질 멕시코와 함께 정치 양극화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나라로 꼽히기도 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팬덤이 가져오는 효과 중 긍정적인 것은 거의 없다”며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저지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정당 간 타협의 여지를 좁히고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내년 총선 기점으로 바꿔야”

현재로선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가 팬덤정치를 바꿀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선거는 중도층과 부동층을 누가 더 많이 가져오느냐로 보통 승패가 갈리는 데 내년 총선도 이와 다르지 않을 전망이다. 중도층은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워 어느 한쪽을 무조건 지지하기보다 정책으로 지지 후보를 선택하는 경향이 크다. 결국 특정 지역이나 특정 팬덤만 바라보는 정당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고정 팬덤층만으로는 지지율 과반을 넘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는 많은 것을 바꿀 수 있다. 여야가 중도층을 얻기 위해 협치와 함께 정책과 비전을 다양하게 제시하게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며 “일반 유권자들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정치 경쟁을 비판하고 정책이나 비전을 따져보고 판단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정치인들도 더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팬덤 문화를 바꿔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팬덤의 대상이 되는 정치인들이 이 팬덤을 활용하려고 하면 안된다”며 “정치인들이 정치의 본질인 대화와 타협을 우선하고 국민과 사회를 위해 조정과 설득의 작업을 계속한다면 팬덤 문화도 바뀔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팬덤 자체가 아니라 팬덤 문화가 문제이다. 민생이 어렵고 사회적 문제들이 더 많아지고 있는 지금, 팬덤이 국가와 사회에 ‘약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는 결국 팬덤 구성원들과 정치인들의 의식 변화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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