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한국 수영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오래전 수영 불모지였던 시절이 생각났다.

2000년대 초 ‘마린보이’ 박태환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수영은 척박함 그 자체였다. 국내적으로 수영장 시설은 극히 열악했고,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선수를 배출하지 못했다. 국제 규격을 갖춘 수영장은 태릉 선수촌 등 몇 곳밖에 없었다. 서울대, 연고대 등 서울 주요 대학에 수영장 하나 갖춰지지 않았다.

이런 빈약한 환경 속에서 좋은 선수가 나온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 1970년대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 1980년대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가 아시아 무대에서 반짝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이후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2000년대 초반 박태환이 혜성같이 떠올랐다. 박태환은 사막 같은 박토 속에서 기적같이 꽃을 피운 존재였다. 박태환은 만 18세의 어린 나이에 출전한 2007년 멜버른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한국 수영이 마침내 변방의 설움을 떨칠 수 있게 했다. 서양 선수들은 박태환의 금메달에 믿기지 않는 표정들이었지만 그의 실력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태환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1년 상하이 세계 수영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건재를 과시했다. 특히 박태환은 서양 선수들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남자 자유형 400m에서 서양 선수들을 물리치는 위업을 달성했다.

한국 수영은 박태환이 은퇴한 이후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2019년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선 김서영을 제외한 선수 전원이 결선 진출에 실패해 큰 실망감을 줬다. 박태환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가를 실감했다. 메달권은 생각지도 못하고 준결선에 진출한 선수조차 4명에 불과했을 정도로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하지만 한국 수영은 물밑에서 생존을 위한 거친 몸부림을 하고 있었다. 2021년 도쿄올림픽 경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한국 신기록이 쏟아졌다. 그것도 10대 선수들이 기록의 중심을 이뤘다. 대부분 2년 전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뼈아픈 좌절을 맛본 후 이를 악물고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결과,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던 것이었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남자 자유형 400m와 800m, 계영 800m 금메달을 차지해 3관왕에 오른 김우민(22, 강원도청)과 남자 자유형 200m와 계영 800m에서 금메달로 2관왕이 된 황선우(20, 강원도청) 등도 당시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주목을 받았던 선수였다. 또 남자 자유형 50m 금메달리스트 지우찬(21, 대구시청)과 남자 접영 50m 금메달리스트 백인철(23, 부산 중구청)도 이들과 함께 유망주로 떠올랐다.

한국 수영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금 6개, 은 6개, 동메달 10개를 획득해 금메달 수는 물론이고 전체 메달 수(22개)도 역대 아시안게임 수영 최다 기록을 세웠다. 금메달은 2010년 광저우 대회 때 4개, 전체 메달은 2006년 도하 대회 때 16개(금 3개, 은 2개, 동 11개)가 이전 기록이었다. 한국 수영은 또 아시안게임 참가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5개)보다 금메달을 많이 따는 기록도 남겼다. 금메달 수에선 중국이 28개로 1위, 한국이 2위, 일본이 3위였다.

르네상스를 맞은 한국 수영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수영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 엘리트 선수들을 경쟁을 통해 키웠기 때문이다. 한국 수영은 앞으로 경쟁력을 더 키워나가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국민건강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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