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오스트리아라는 나라 이름은 독일식으로 읽으면 ‘외스터라이히(Österreich)’이다. 이 단어는 고대 독일어로 ‘동쪽 영토(eastern realm)’란 뜻이다. 오스트리아 동쪽은 유럽의 중심이 아닌 변방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현재의 동유럽 국가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노바크 조코비치는 동유럽 세르비아 출신이다. 그동안 그는 동유럽 출신이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았다. 로저 페더러(스위스)나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비슷한 시기에 세계 남자 테니스 ‘빅3’로 경쟁했지만 그가 페더러나 나달과 맞대결할 때면 조코비치를 응원하는 팬들보다 페더러나 나달의 승리를 바라는 쪽이 더 많았다. 이들 세 명을 두고 전문가나 팬들은 ‘누가 더 낫다’는 판단을 하기가 힘들었지만 그는 인기에선 둘보다 늘 뒤졌던 것이다.

하지만 조코비치는 지난 10일 US오픈 테니스 대회 남자단식에서 정상에 오르며 통산 24번째 메이저 단식 타이틀 신기록을 세워 세계 최고임을 확실히 입증해 보였다. 유럽 통신사를 대표하는 프랑스 AFP통신이 기사 제목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는 테니스의 왕(undisputed king of tennis)’을 뽑은 것을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AFP통신이 조코비치에 대해 이같이 부른 것은 ‘빅3’에서 그가 최종 승자가 됐기 때문이다. 조코비치는 메이저 24번째 우승을 달성하며 나달(22회)과 페더러(20회)를 따돌리고 이제 이 논쟁의 정답을 보여줬다.

그는 지금까지 호주오픈 10회, 윔블던 7회, US오픈 4회, 프랑스오픈 3회 우승을 차지했는데, 4대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3회 이상 우승한 선수는 조코비치가 유일하다. 페더러는 프랑스오픈 우승이 한 번뿐이고, 나달은 호주오픈과 윔블던 우승이 2번씩이다.

그는 7살 때 세계 최고의 선수를 꿈꾸며 라켓을 잡았다. 12살 때 전쟁을 피해 세르비아 베오그라드를 떠나 독일 뮌헨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는 등 정신없는 유소년기를 보냈다. 나라가 전쟁 중이던 어린 시절 테니스 코트 대신 물을 뺀 수영장이나 방공호 벽에 대고 스트로크 연습을 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동유럽의 ‘별’이었던 그는 세계 최고에 오르기 위해 ‘울분의 혈기’를 삭혀야 했다. 2020년 US오픈 경기 도중 약간 신경질적으로 쳐낸 공이 선심에 맞아 조코비치가 실격당했는데, 비슷한 행동을 페더러나 나달이 했더라면 실격까지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아 지난해 호주오픈, US오픈에 나가지 못했던 일이나, 올해 프랑스오픈 도중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심장’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TV 중계 카메라에 적은 일 등이 조코비치에 대한 반감을 키우기도 했다.

조코비치는 기념비적인 US오픈 우승 후 ‘24’와 ‘맘바 포레버(Mamba Forever)’가 새겨진 상의를 입었다. ‘맘바’는 2020년 헬기 사고로 숨진 미국프로농구(NBA)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의 애칭이었고, 24는 그의 등번호였다. 조코비치는 “코비와는 가깝게 지내는 사이였다”며 “내가 부상으로 힘들 때 내게 많은 조언을 해줬고, 내가 가장 의지했던 사람 중 한 명”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앞으로 당분간 세계남자테니스는 조코비치 1인 천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동유럽 출신이라는 차별과 냉대를 딛고 세계 최고의 스타로 자리잡은 조코비치의 격정적인 삶은 불안한 미래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세계의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 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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