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스포츠에서 ‘황제’라는 말은 세계에서 최강자에게 붙이는 칭호다. 황제라는 말은 단순히 성적으로만 주어지지 않는다. 화려한 경력은 물론, 경기를 이끄는 카리스마와 함께 따뜻한 인간성까지도 황제가 갖춰야 할 덕목이다.

‘축구 황제’ 펠레,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 ‘자동차 경주 황제’ 미하엘 슈마허 등에게 황제라는 칭호가 붙는 이유이다. 이들은 기량과 함께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자신의 종목에서 최고 자리를 차지했다.

스포츠 황제들은 끊임없이 소환된다. 지난해 은퇴한 로저 페더러의 삶과 인성철학이 재조명돼 관심을 끈다. 20년 넘게 뉴욕타임스 테니스 특파원으로 페더러의 거의 모든 경기를 직관하고, 20회 이상 독점 인터뷰를 진행한 크리스토퍼 클레리가 펴낸 ‘원제 The Master, 번역본 로저 페더러’라는 신간에서다.

페더러는 남자 테니스 사상 최초로 그랜드 슬램 20회라는 쾌거를 이룩했다. 4대 메이저 대회의 개별 경기에서는 369승을 기록했고, 총 310주, 그중 연속 237주 동안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했다. 남자 테니스 투어에서는 103회나 우승했다. 프로 통산 전적은 1526전 1251승 275패에 이른다. 페더러가 현역으로 뛰던 시절, 라파엘 나달(스페인),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가 호적수로 함께 경쟁을 했다. 이들 2명은 그랜드 슬램 성적으로는 결코 페더러에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페더러를 테니스에서 ‘황제’라고 칭하게 된 것은 결코 성적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이들 호적수와는 차별화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책은 35년이라는 페더러의 길고 화려한 선수 생활 중 주목해야 할 순간들과 장소, 사람을 다룬다. 페더러는 테니스에서 ‘불세출의 선수’로 불린다. 격렬한 운동 종목인 테니스 경기에서 땀 흘리는 일조차 드물다. 구사하는 기술도 간결하다.

저자는 이것은 그의 끈기 덕분이라고 말한다. 페더러는 오래전부터 계획을 짜 훈련이나 투어 일정에 임한다고 한다. 저자와의 대화에서 “보통 1년 반 후를 먼저 생각한다. 9개월 뒤 일은 하루 단위로, 구체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페더러는 자신을 “테니스 선수로 흥미진진한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이라 가리키며 “못했으면 고치려고 노력하면 된다”고 말한다.

특히 페더러가 빛을 발했던 것은 인성이었다. 저자는 대부분의 정상급 선수들과는 다른 페더러의 습관으로 ‘상대방의 안부를 먼저 묻고, 형식적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다. 따뜻한 인간성을 갖고 주위 사람들을 상대했다는 것이다. 저자에게도 가족 여행 이야기나 인터뷰 장소에 대한 감상 등을 먼저 물었다고 한다. 페더러는 “주목받는 일을 감당할 순 있지만 사람들을 직접 만나 교감하는 일이 더 즐겁다”고 했다.

모든 위대한 선수들이 대부분 그렇듯, 남과 같이 해서는 결코 그 자리에 오를 수 없다. 타고난 체격과 재능만으로는 안 된다. 인간적인 품성에서 다른 뭔가를 보여야 역사에 길이 남을 선수가 될 수 있다. 페더러는 이번 평전을 통해 ‘사회적 지능’으로서의 인성이 남달랐음을 보여줬다.

지난해 9월 24일, 페더러는 영국에서 열린 레이버컵 복식경기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완벽한 여정이었다”는 말을 남긴 이 경기는 약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테니스 팬들 사이에서 회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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