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으로 통제 불능으로 막 나가는 학생, 진상 학부모의 갑질 등 다양한 사례가 공유되며 공분을 사고 있다.

막 나가는 학생의 발단은 2012년 제정된 학생인권조례고, 학부모 갑질의 발단은 2014년 제정된 아동학대 방지법이다.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도록 제정·공포해 시행하는 조례다. 각 시도 교육청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차별받지 않을 권리, 표현의 자유, 교육복지에 관한 권리, 양심과 종교의 자유 등 학생의 의무는 없고 권리만 들어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기 전까지는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의 경우 교실 뒤편이나 교실 밖으로 내쫓을 수 있어 교사의 수업권이 어느 정도 보장됐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자 정당했던 교사의 지도가 112 신고 대상이 됐다. 경찰차가 학교로 진입하고, 교사들이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받는 일도 이때부터다. 그 이후 학교가 교사, 학부모, 학생의 전쟁터가 돼 격랑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걸 필자도 퇴직 전 교육 현장에서 분명히 느꼈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육 현장을 왜곡하고 교사의 수업권, 생활지도권을 무력화 시켰다. 교사의 손발을 꽁꽁 묶어 학교를 무법천지로 만들었다. 학생이 학교에서 흡연해도 제지조차 못 한다. 화장실 변기가 막히지 않도록 재떨이를 비치하는 게 학교의 대응이다. 수업 시간에 잠을 자도,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며 낄낄거려도, 교단 위에 올라와 누워 있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칭찬하면 다른 애들 박탈감 생긴다고 항의하고, 발표 시키면 수치심을 느낀다고 항의한다. 잘못된 행동을 야단치면 정서적 학대라고 신고한다. 다 조례 탓이다.

미국 뉴욕시의 학생권리장전에는 ‘학생·부모·교직원 간 상호 존중 정신 고양, 교내 다른 모든 이들의 존엄과 평등권 존중, 예의 바른 태도로 급우와 교사 대하기’ 등 학생의 의무가 명시돼 있다. 우리도 교사의 인권을 존중하는 내용이 학생인권조례에 포함됐다면 이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다. 의무는 빼고 인권만 강조해 섣부르게 제정한 학생인권조례를 만든 자들이 지금 사태의 원흉이다.

전국적으로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교사가 매년 20여명 가까이 되지만 학교관리자, 교육 당국의 합작으로 사건이 조용히 묻혔다. 경기도 초등학교에서는 학부모 갑질로 교사 2명이 연달아 사망하기도 했다. 서이초 교사는 강남 한복판, 그것도 자신의 교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지금까지 조용하던 정부가 비로소 교권 회복에 발 벗고 나선다니 서이초 교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아 다행이다.

주말마다 전국에서 올라온 교사들이 광화문에 집결해 울분을 토하고 있다. 교사들이 주장하는 교권의 회복은 교사의 권위가 아닌 교사의 인권을 의미한다. 학부모나 학생이 막 대해도 되는 감정노동자가 아닌 교사란 직업으로서만 존중받고 싶다는 의미다. 교권과 학생의 인권은 모순되거나 대립하는 게 아니다. 교사의 권위를 살리는 건 선량한 학생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교사들은 교권을 보호하는 대안을 전혀 마련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여 만든 조례의 개정을 요구한다.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는 학생인권조례가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체벌이 있던 과거로 돌아가서도 안 된다. 의무는 없고, 권리만 있는 조례의 부작용이 심각하니 수정해야 한다는 요구다.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할 때 나의 인권도 보장받는다는 걸 알 수 있게 의무와 책임도 조례에 명시해야 한다. 더는 목숨을 버리는 교사가 생기지 않도록 교권 보호에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학교가 난장판이 되는 걸 이대로 방치하면 대한민국의 미래까지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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