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애도하며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에 모인 교사들의 손에 들린 팻말에는 ‘아동학대처벌법 개정하라’고 쓰여있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아동학대 행위자로 신고된 교사가 8413명이란 통계가, 교사들이 왜 법을 개정하라고 요구하는지 알게 한다.

교사가 수업 중 학생을 지도하는 게, 아동학대 처벌법에 도전하는 용기를 내야만 하는 현실은 교육을 포기하라는 말이다. 학부모가 물증도 없이 심증으로 단순 고발만 해도 교사를 직위 해제할 수 있는 아동학대처벌법은, 교사를 인격 살인 할 수 있도록 학부모에게 권한을 무한대로 준다.

서이초 교사를 조문하며 한 교사는 ‘불과 1년 사이에 주변 동료 교사 3명이 무고하게 아동학대 신고당했습니다. 이번 일은 슬픔도 슬픔이지만 분노와 환멸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라는 쪽지를 남겼다. 부모의 학대로 가정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아동을 보호하고자 만든 ‘아동학대처벌법’이 엉뚱하게 교사가 학생에게 사회의 질서와 규칙도 지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진상 학부모들이 이 법을 교사의 지도에 적용해 교사를 옥죄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자신의 아이만 특별대우를 바라는 이기적인 학부모가 많아 조금만 불만이 있어도 교사의 정상적인 지도를 정서적 학대로 엮어 고소·고발한다. 신고가 되면 교사는 무조건 경찰, 검찰의 조사를 받아야 해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법이 너무 광범위하게 적용되다 보니 교사의 손발을 아예 묶는 수단이 됐다.

서이초에서 벌어진 연필 폭행 사건처럼 학생 간 폭행을 학부모가 교사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교사는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2명의 교사가 극단적 선택한 경기도 한 초등학교에서는 교사가 군대에 입대하자, 학부모가 배상을 요구하는 악성 민원을 군대까지 계속했다니 웬만한 멘탈이 아니면 어떤 교사라도 버틸 재간이 없다. 악성 민원에 의한 타살을 단순 추락사로 처리했다니 관리자의 직무 유기다.

아동학대처벌법 위반에 적용된 사례를 보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교실에서 싸움하는 아이들을 말릴 수 없어 책상을 넘어뜨려 주의를 환기하려 한 지도, 급식을 많이 남긴 아이에게 “많이 먹어야 건강하다”라면서 더 먹도록 강요한 지도, 교실에서 “뛰지 말라”는 경고에도 뛰는 아이의 팔을 거세게 잡아챈 지도, 교실 뒤에 서 있게 하거나 손을 들게 하는 지도 등이 모두 고소 대상이다. 법이 이러니 교사의 지도에 반항해도 교사는 아무런 물리적 제지를 할 수 없다.

우리 사회에 어느 때부터 잘못 확산한 ‘아동 인권’ 인식도 문제다. 아동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만들어 아동에게 훈계하거나 벌을 주는 건 절대로 해서는 안 될 금기가 됐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며 어른들이 엄하게 키우던 시절과 완전히 반대인 훈육이 대세가 되며, 잘못된 행동을 교정받지 못한 어린이들이 성인이 되니 사회마저 엉망이 됐다. 학생이 교사를 무시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시대에 아동만 우대하는 건 해결책이 아니다. 아동이라도 잘못하면 규칙과 법으로 제재하도록 바꿔야 한다.

교사의 지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학부모가 고발하면 무조건 경찰의 조사가 이뤄지고, 검찰로 송치돼 기소된다. 이후 법원에서 벌금형이라도 받게 되면 바로 해임되고 3년간 공직에 취업조차 하지 못한다. 아동학대는 분명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정상적인 교사의 손발을 묶는 과도한 아동학대처벌법은 부작용이 너무 크다. 교사 기피가 심화하면 교사의 질적 하락 및 부족으로 이어지고 미국처럼 고등학교 졸업자가 교사가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교사가 정상적인 수업과 지도를 할 수 있는 선행조건이 아동학대처벌법에서 학교 내 훈육에 예외를 두는 것이다. 아동학대에서 교사 면책을 추진한 선진국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가가 결단을 내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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