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시 쓰는 의사’로 유명
신경림 시인 추천으로 등단
1985년 ‘금주선언’ 등 포함
지금까지 4권의 시집 출간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홍관 국립암센터원장이 지난 2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6.2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홍관 국립암센터원장이 지난 2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6.2

[천지일보=임혜지 기자] ”처음 의학 공부를 할 때 내 성향과 잘 안 맞는다고 느꼈어요. 나는 문학이 좋은 사람인데, 의학 공부는 뭐랄까 인간 냄새가 없는 거예요. 하지만 의사가 되고 진료를 시작하면서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의학뿐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됐죠.”

19년간 암을 연구해 온 베테랑 의사이자 금연 운동가, 총 네 권의 시집을 발행한 시인. 지금은 국가 암 정책 기관인 국립암센터의 총책임자를 맡고 있는 서홍관 원장의 이력은 특별하다.

‘시 쓰는 의사’로도 유명한 그에게 ‘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눈을 빛내며 열정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특히 의사가 아닌 사람으로서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다는 서 원장은 ‘인문학’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다.

최근 경기도 고양시에서 천지일보와 만난 서 원장은 “암도 물론이지만, 여전히 저의 가장 큰 탐구 대상은 인간”이라며 “언제 한번 국민이 애송(愛誦)할 수 있는 시를 하나 쓰는 게 꿈”이라며 웃었다.

전북 완주 출신의 서 원장은 1958년생으로 서울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13년간 인제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2003년부터 국립암센터 설립 초기부터 구성원으로 참여했다. 이후 초대 국가암관리 사업본부장, 금연지원센터장 등의 보직을 거쳐 지난 2021년 12월 31일에는 국립암센터 8대 원장으로 선임됐다.

의사인 그는 왜 시인의 길을 걷게 됐을까. 서 원장은 사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전국 독서대회에서 지역 대표로 뽑힐 정도로 독서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어렸을 때 제 특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책 읽기를 되게 좋아하는 어린이였던 것 같아요. 학창 시절 책 읽기가 너무 재밌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고전 독서 읽기 대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전라북도 대표가 됐어요. 상금으로 받은 돈으로 일기장을 사서 매일 일기도 쓰고 독후감도 적고 그때부터 문학에 관한 관심·열정이 시작된 것 같아요.”

그가 처음 시에 매력을 느낀 것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다. 의과대학 입시를 준비하면서 성적 스트레스 등 내적 갈등과 혼란으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시가 위로로 다가왔다고 했다.

“유치환 시인의 ‘석굴암대불’이라는 시를 제일 좋아했어요. 시를 보면 화자는 석굴암 부처가 세상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마음속에서 끓는 격정이 있고 통곡이 있으리라 생각 한 거예요. 당시 주변에서는 제가 공부도 잘하고 말썽도 안 부리니까 모범생이라고 바라봤는데, 사실 심적으로는 학업에 지쳐 몹시 힘든 상태였어요. 이런 제 상황을 시로 깨닫게 됐던 것이죠.”

서울대 의대 진학 후 서 원장은 문예부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시를 쓰게 됐다. 대학 생활을 하며 쓴 시만 27편이다. 그러다 우연히 문학의 밤 행사에서 신경림 시인의 눈에 띄어 1985년 창작과비평사(창비)의 ‘16인 신작시집’ ‘금주 선언’으로 파격 등단하게 됐다. 그는 처음에는 의사의 길과 시인의 길은 너무나도 상반됐기에 당혹스러웠다고 회상했다.

“다양한 지식을 요구하는 의사의 공부에는 인간의 감정과 내면을 다루는 시는 등장하지 않잖아요. 그 때문에 의사가 되는 것과 시를 쓰는 것은 상반된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진료를 해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대화를 해야 하고 결국 이 사람을 이해하지 않으면 진료가 안 되는 거죠. 좋은 의사가 되는 것도, 시를 쓰는 것도 사랑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깨달으니, 나중에는 의사와 시인의 경계선이 희미해지더군요.”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홍관 국립암센터원장이 지난2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6.2.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홍관 국립암센터원장이 지난2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6.2.

서 원장은 등단 이후 ‘어여쁜 꽃씨 하나’ ‘지금은 깊은 밤인가’ ‘어머니 알통’ 산문집 ‘이 세상에 의사로 태어나’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 등 총 4권의 시집을 펴냈다. 시에는 그가 의사로서 의료 현장에서 다양한 환자들의 삶과 죽음을 접했던 이야기들도 담겼다. 

특히 세 번째 시집 ‘어머니 알통’은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시가 여러 편 담겼다. 신경림 시인은 그의 네번째 시집 ‘우산이 없어도 좋았다’에 대해 “아무리 거북하고 힘든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시라도 아름답고 따뜻한 정서를 바탕에 깔고 있다”고 평했다.

최근 교보문고 일산점에서는 ‘시 쓰는 의사-국립암센터 서홍관 원장의 시와 책’이라는 주제로 그의 시집과 추천 도서 등을 소개하는 특별 기획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다.

서 원장은 시와 동시에 철학과 인문학에 관심이 크다. 그가 추천하는 도서 역시 ‘칼 세이건. 코스모스’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빌 브라이슨.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논어’ ‘솔제니친. 암 병동’ ‘김상욱. 울림과 떨림’ 등 모두 저명한 인문학 서적이다 .

그가 문학을 탐구하는 이유는 ‘도대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깨달음을 얻기 위함에서다. 예컨대 역사를 공부한다면 역사 속 수많은 인물이 무얼 꿈꾸며 원했고, 좌절했는지 등에 대해 스스로 끝없이 질문을 던지며 생각한다고 그는 말했다.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를 묻자, 잠시 고민하던 그는 동양의 철학가 공자를 꼽았다. 공자에게서 세상에 대한 믿음과 정의를 지향하는 공통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논어에서 공자는 스스로 ‘생이지지(生而知之, 배우지 않아도 암)’ 곧 성인이 아니며 자신도 배워서 여기까지 왔다고 말하고 있어요. 본인을 끊임없이 단련시켜 올라온 경지라는 거죠. 공자는 자신이 아는 것을 통해 어떻게 하면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 엄청난 고민과 노력을 합니다. 바로 이런 부분 때문에 공자를 닮고 싶고, 좋아하는 것이죠.”

자신을 공자의 열렬한 팬이라고 소개한 그는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면 ‘화합하되 같아져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나와 주변 사람들 생각이 같을 수는 없으나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모두와 불화한다면 고통이 크겠죠. 그래서 우리는 화합(타협)하면서 살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아무리 세상과 타협한다 해도 나를 잃어버려선 안 되고, 나만의 가치관을 간직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인간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싶다”는 서 원장은 앞으로도 계속 인간을 탐구하면서, 끝까지 시를 써 나가겠다고 전했다.

“시인으로서 목표가 있다면 국민들이 애송할 수 있는 시를 한 편이라도 좀 썼으면 좋겠어요. 지금 아무도 안 읽고 있거든요(웃음). 언젠가 될 거란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써 나겠습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홍관 국립암센터원장이 지난2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6.2.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홍관 국립암센터원장이 지난2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3.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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