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휘 정치학박사/ 한국문화안보연구원 부원장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카는 역사를 살펴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어떻게 길을 잘못 들었는지를 찾아보고, 왜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하는 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과거를 통해 미래에 대한 건전하고 균형 잡힌 전망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과거는 살펴볼 수 있는 것이고, 현재와 과거가 대화하면서 다가오는 새로운 미래를 건전하게 열어가자는 관점에서 과거 43년 전 ‘5.18 민주화운동’을 누구든지 언제고 다시 볼 수 있어야 국가가 정상적이라고 평가되는 것이다.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문화하고 있으나 과연 요즘의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맞는가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주권재민(主權在民)과 법치주의의 원칙에 근거한다. 그러나 ‘한국, 한국인’의 저자 마이클 브린 전 주한외신기자클럽 회장은 “한국인은 민심(民心)을 따르는 것을 민주주의라고 믿지만 공화국은 제도에 의한 통치를 뜻한다”라고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일상적 통념에 일침을 남겼다. 이 의미는 광장에 모여서 집단적 주장을 민심으로 왜곡하는 떼쓰기(demonstration)가 국가공권력 조차 하순위로 취급한다면 민심에 좌우되는 무정부(anarchy)로 전락될 수도 있다는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방식의 모순을 정확하게 경고한 것이다.

지난 3월 12일 국민의힘 최고위원 김재원 의원이 5.18 정신의 헌법 전문수록에 관한 질문답변에서 개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가 당징계위로 회부되고, 국민의힘 최고위원 태영호 의원이 4.3사건과 관련해 “김일성 지시로 일어났다고 북한에 배웠다”는 개인의견의 지식적 학습인지사실을 말했으나 외부적 여론의 반발이 거세자 진위 여부를 떠나서 역시 당징계위로 회부돼 절차를 밟고 있다. 정치인의 소신에 의한 정치적 발언으로 징치(懲治)되는 것이 과연 21세기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가능하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누리는 자들은 징치대상에서도 제외되는 게 맞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관해 진실이니 거짓이니로 시작해서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했니 안했니 그리고 유공자가 가짜니 진짜니 뿐만 아니라 숫자가 늘었니 줄었니 등 의혹이 재기돼 보수와 진보로 갈려있고, 여야가 싸우고, 지역끼리 다투고, 그야말로 이전투구(泥田鬪狗)로 나라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5.18 민주화운동을 상대로 이런 진실공방이 아직도 안 끝났기 때문에 개연성을 언급할 수 있는 것이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도대체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시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위원회는 직권조사 사항으로 ‘5.18 당시 최초발포와 집단발포 책임자 및 경위’ ‘당시 계엄군에 의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 ‘당시 행방불명자의 규모 및 소재’ 등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상하반기로 ‘조사활동보고서’를 세금으로 책자를 냈지만 과연 무엇을 어떻게 조사해서 밝혔다는 것인지 기가 막힐 일이 아닌가.

역사적 사건이라는 것이 단순히 사건 한두 개나 한두 사람 말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고, 전후좌우의 복잡한 요인과 변수에 의한 결과적 사실(facts)이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한정한다는 것은 불확실하고 불가능한 역사의 영역이기 때문에 언행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맞다. 이러한 역사적 관점에서 1979년 10.26 시해사건이라는 초유의 권력반란으로 국가존망의 위기를 맞았을 때 정치권은 사분오열 집권을 위한 정쟁에 몰두했고, 1980년 봄 전국적인 데모사태가 신군부의 정치개입을 반대하면서 무정부상태라고 할 정도로 사회적 혼란이 장기간 지속됐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가 ‘국가보위’라는 명분을 걸고 비상계엄령 전국 확대로 민주헌정질서를 중지시켰던 것도 사실이다. 3김에 대한 정치탄압이 결과적으로 광주민심과 충돌했고, 대규모 반신군부시위가 연일 계속됐다. 당시 광주의 시위규모가 경찰력으로 치안질서를 회복하기에는 불가할 정도로 확산됐던 상황에서 첫 유혈사태가 5월 19일 나주금성파출소 습격사건에서 2명이 사망하는 불상사로 발생했다. 광주는 외부접근이 봉쇄된 가운데 무장투쟁화됐고, 신군부가 5월 27일 전격적인 무력진압으로 수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현대사의 비극으로 남겨졌다는 것은 단선의 사실이다.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렸던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에서 ‘제기된 의혹들’이 명쾌한 진실로 규명되지 않고 사법적 심판으로 진실을 강변하는 것이 과연 진상규명이라면 실망이다. 제기된 의혹들 가운데는 아직도 미궁에 빠져있는 광주시민군을 지휘한 자의 신분, 기아자동차 공장에 있었던 장갑차 4대와 군용차 382대를 탈취한 자들의 신분, 광주교도소로 5월 21일 12시와 19시 20분, 22일 00시 40분과 9시 그리고 22일 10시 20분과 19시에 걸쳐 총 6회를 무장공격했던 자들, 시위대에 최초 발포명령을 내렸던 책임자, 헬기기총사격을 명령한 자, 5.18유공자 명단공개와 정확한 공적 여부 등을 총망라해 끝까지 확인해야 국민과 시대가 잠잠해질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헌정사에 ‘5.18광주정신’으로 계승돼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기여하고 있음도 사실이고, 그 일에 헌신한 희생자와 유공자를 정확히 알려야 하고, 알고자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나라사랑의 마음일 것이다. 과거 이종명 국회의원의 정치적 발언을 제명으로, 지만원씨의 주장을 구속으로, 태영호 의원의 발언을 징계로 징치(懲治)하는 것은 ‘자유민주공화국이 맞는가’를 성찰해봐야 한다. 정치인들의 정치적 발언에 재갈을 물리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든지 국가에 세금을 내면서 살기 때문에 정치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치적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정치인의 정치적 행위를 징치하는 것은 반민주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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