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채식 인구 200만, 바야흐로 ‘비건(vegan)’ 열풍이다. 건강이나 다이어트 때문이든, 윤리적 이유나 환경보호 때문이든 베지테리언의 증가는 기후위기 시대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다. 과도한 육류 소비와 이를 위한 대규모 목축 때문에 발생하는 생태계 파괴는 산업화로 인한 온실가스 만큼이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데이터에 의하면 지구상의 모든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는 것 보다 전 인류가 식생활을 육식에서 채식으로 바꾸는 것이 온실가스 감축에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그만큼 채식이 지구 생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2019년 8월 IPCC 보고서에 따르면 모든 인류가 동물성 식품을 순식물성 상태로 바꾸면 2050년까지 매년 약 80억톤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이는 2018년 전 세계가 배출한 온실가스 459억톤의 17.4%에 해당하는 양이다. 또한 도로·비행 등 운송 수단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16.2%보다 훨씬 많은 양이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채식은 확실히 개인의 건강은 물론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지구살리기에 큰 효과가 있는 식생활이다. 비건식이 육식이나 잡식에 비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다는 사실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전 세계 모든 인구가 비건식을 한다고 가정할 때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이 지금의 70% 수준으로 떨어진다는 보고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채식이나 비건 식단이 무조건 육식보다 훨씬 더 탈탄소적이며 친환경적인가는 별개의 문제다. 바로 탄소발자국 때문이다. 채소지만 식탁에 오르기까지 탄소발자국이 큰 것들도 있으며, 고기지만 기후에 아주 큰 위협이 되지 않는 것들도 있기 때문이다.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 비행기나 배에 실려오는 과일이나 채소 이런 것들은 오히려 국내에서 생산되는 고기보다 탄소배출량이 더 많다. 또한 과일이나 채소를 어떻게 재배하느냐도 중요하다.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식으로 재배하는 채소의 대량생산 시스템이 환경에 미치는 파괴력은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은 채 채식 인구만 계속 늘어난다면, 먹을 채소와 과일이 넘쳐날 뿐 온실가스 감축이나 기후위기를 늦추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채식을 하더라도 대안을 ‘로컬푸드(Local Food)’에서 찾아야 한다.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공장식 시스템으로 재배되는 야채나 과일이 아닌 제철에 생산되는 그 지역의 ‘로컬푸드’를 사먹는 것만이 ‘비건’을 실천하는 진짜 이유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의 유행을 선도한다는 미국 ‘뉴요커’들은 일찌감치 로컬에 주목했다. 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organic) 농산물을 넘어 얼마나 가까이에서 직접 기른 과일과 채소, 쇠고기, 돼지고기인지를 따진다는 것이다. 까다로운 뉴요커들은 신선한 식품 재료를 원하고, 이를 반영해 반경 200마일 이내의 농장과 바다, 농부와 어부만이 참여할 수 있는 ‘그린마켓’이 인기라고 한다.

로컬푸드의 핵심은 푸드마일 즉 이동거리에 있다. 푸드마일이 낮은 식품은 생산지와 소비자까지의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는 탄소 배출을 적게 할 뿐 아니라, 더 안전한 먹거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푸드마일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그 식품의 안전성은 떨어지고 탄소 배출량도 많아진다. 그래서 이 이동거리가 지구를 살리는 히든카드인 셈이다.

이제 우리도 ‘사고는 글로벌하게 하되, 행동은 로컬하게’ 하자. 사정이 허락하면 주말농장이나 집 베란다 같은 곳에 조그마한 텃밭이라도 하나 가꾸며 찬거리 채소 정도는 직접 재배해 먹는 것도 좋겠다. 그럴 여건이 아니면 인근의 농산물 직거래, 농민 장터, 로컬 푸드마켓이나 생협 같은 단체와 연결해 먹거리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지난 20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시중에 판매 중인 콜롬비아산 아보카도에서 기준치의 200배가 넘는 잔류농약이 검출돼 판매를 중단하고 회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는 내 몸도 살리고, 지구도 살리는, 뿐만 아니라 지역경제도 살리고, 우리 농촌도 살리는 상생 협력의 로컬 푸드 식생활로 한 번에 두 마리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다 잡는 슬기로운 사람이 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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