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지리산이 또다시 개발이냐 보존이냐의 중대 갈림길에 놓이게 됐다. 틈만 나면 다시 꿈틀대는 케이블카사업 때문이다.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좀비처럼 끊임없이 되살아나 한반도의 자연환경과 생태계를 위협하는 이 케이블카 개발사업을 정말 어찌해야 할까.

이번에는 산청군이다. 지리산 천왕봉이 가장 넓게 위치한 산청군은 지난 4월 24일 천왕봉에 오르는 대표적인 등반 코스인 중산리에서 장터목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이른바 ‘지리산 케이블카 TF팀’을 출범시키며 케이블카 추진을 또다시 공식화했다. 그동안 잠잠하던 지리산 개발 망령이 부활, 민족정기의 발원지이자 민족의 영산인 거룩한 지리산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것이다.

산청군은 이미 2007년에 한 번, 이후 2012년에 한 번 사업을 신청했으나 환경부로부터 모두 불허된 바가 있다. 경제성, 공익성, 환경성 모든 면에서 불가하다는 정부의 입장이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 시대착오적 반환경 정책들이 우후죽순 부활하더니 설악산 케이블카사업 허가를 기점으로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한반도 최고봉 지리산 천왕봉 턱 밑에 감히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엄청난 반역을 다시 선언한 것이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 폐기 선언 후 재생에너지 산업 축소와 원전강화정책을 추진하고 국토파괴의 상징인 사대강 사업을 재추진하는 등 그동안 금기시됐던 반환경 개발 사업의 봉인을 앞다퉈 해제하고 있다.

특히 설악산 케이블카사업의 봉인 해제는 전국의 국립공원과 전국 명산의 케이블카 추진의 도화선이 됐고 제1호 국립공원 지리산 개발의 불씨가 됐다. 이제 산청군에 이어 인근 함양군과 구례군, 하동군과 남원시의 지리산 케이블카사업 재추진 선언은 자명한 일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산청군이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중산리~장터목 구간은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이 있는 백두대간의 주능선으로 생물다양성과 보전가치가 매우 높은 식물군락과 멸종위기종이 존재하는 곳이다.

주목과 구상나무 군락이 자생하고, 2004년 복원사업이 시작된 반달가슴곰이 서식하며, 주요 법정 보호종의 서식지와 산란처가 형성돼 있는 원시 생태의 공간이다. 단순히 인간의 편익이나 경제적 가치나 개발 이익 따위로만 설명할 수 없는 생태적 가치와 생명을 품고 있는 절대보존지역인 것이다.

개발론자들의 주장만 하더라도 그렇다. ‘환경보호’니, ‘등산객에 의한 산림 훼손 방지’니,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니 이런 주장은 오히려 장애인이나 등산객을 모욕하는 궤변에 불과하다. 케이블카 설치보다 더한 산림 훼손, 더한 자연생태계 파괴는 없다. 더구나 자연을 사랑하는 등산객은 산을 제 몸처럼 아낀다. 케이블카 관광객으로 인한 자연 훼손이 더 심할 것이다. 이는 덕유산이 잘 말해준다. 교통 약자의 경관 감상 제공 또한 그렇다.

지리산은 지나치리만큼 자동차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노고단, 정령치, 오도재, 형제봉 등 지리산 주능선 조망을 한 눈에 감상하는 곳이 차고 넘친다. 진정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면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는 사회정책이나 무장애길 확충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지역경제 살리기’ 명분 또한 그렇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지역민은 소외되고 개발업자의 배만 불리는 일은 아닌지 사업의 지속성과 일자리 창출 효과는 얼마나 되는지 따져볼 일이다. 지역사회 발전의 핵심은 지속가능성이다.

요즘 시대 청정 자연은 그 자체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다. 그런데 산을 죽이면서 케이블카를 놓는 것이 당장의 탐욕에 눈이 멀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어리석음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보자.

무분별한 환경파괴에 대한 자연의 역습이라는 코로나19 시대에 100년도 더 지난 낡은 토건사업을 다시 벌인다는 것 자체가 시대착오적인 일임을 자각해야 한다. 지리산은 국민 모두가 공유하고 보전하고 책임지며 미래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줘야 할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따라서 산청군에게는 지리산 막개발의 권리가 없으며 산청군의 케이블카 추진 사업은 지리산을 사랑하는 국민 모두에 대한 모독이자 미래세대에 대한 범죄행위요, 더 나아가 인류와 자연에 대한 죄악임을 알아야 한다. 케이블카는 ‘지리산으로 가는 또 하나의 길’이 아니라 ‘지리산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또 하나의 길’임을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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