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일본이 국제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 해양 방류를 강행키로 한 가운데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Contaminated Water)’라는 표현을 ‘처리수(Treated Water)’로 바꾸려는 정부의 움직임이 있어 매우 유감스럽다. 더욱이 일본의 행보를 적극 저지해야 할 집권 여당이 일본의 논리를 따르는 듯한 태도를 보여 심히 우려스럽다.

그나마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라는 공식 용어를 ‘처리수’로 바꾸는 방안에 대한 검토에 착수했다가 여론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히자 부랴부랴 철회했지만 여당인 국민의힘은 여전히 그런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국민의힘 소속 이른바 ‘우리바다 지키기 검증 TF’는 5월 9일 첫 회의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처리수로 부르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TF단장인 성일종 의원은 방송에서 ‘오염 처리수라고 쓰는 게 맞다’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성일종 의원은 지난 4월에도 후쿠시마 원전에서 배출하는 원전 오염수가 정상적으로 가동하고 있는 원전 배출수보다 안전하다는 식으로 일본의 입장을 두둔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어불성설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말장난에 불과하다. 정상적인 원전에서 방출되는 방사성물질 종류와 핵연료가 녹아내려 원전이 폭발한 상황에서 발생한 방사성물질의 종류는 명백히 다르다. 위험 역시 말할 필요가 없다. 도쿄전력이 자체 공개한 자료에서도 전체 오염수 중 34%를 제외한 약 70% 가량이 기준치의 최대 1만 9909배까지 방사성물질에 오염돼 있는 상황이다.

기준치에 적합한 오염수 역시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걸러지지 않는 삼중수소와 탄소14로 오염돼 있는 상태이며 정상 원전에서는 방출되지 않는 우라늄238, 플루토늄239, 아메리슘 241 등의 방사성물질이 오염수에 포함돼 있다. 오염수를 처리하는 다핵종제거설비(ALPS)의 신뢰성도 문제다. 국제 전문가들은 2018년까지 다핵종제거설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으며 도쿄전력 역시 이를 인정했다고 지적한다. 다핵종제거설비에 대한 검증자료 역시 확인되지 않아 그 성능을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사정이 이러한데 일본 정부의 관리도 아닌 우리나라의 정부와 집권 여당이 일본이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처리수’라는 용어를 사용하자고 선동하는 것은 일본의 오염수 해양 방류를 정당화하는 데 일조하는 것이고 이에 반대하는 국민 정서에 반하는 친일매국노적인 발상에 다름 아니다.

지금껏 후쿠시마 오염수 명칭과 관련 일본만 처리수라는 용어를 고집할 뿐 우리나라를 비롯 국제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처리수 대신 ‘방사성 물(radioactive water)’ 및 ‘오염수’라는 표현을 써 오고 있다.

그런데 일본 정부나 도쿄전력의 대변인이나 할 주장을 집권 여당의 원전 오염수 관련 TF 단장이 직접 나서서 하고 있으니 이쯤 되면 ‘우리 바다 지키기’가 아니라 ‘일본 입장 지키기’라는 세간의 비아냥도 전혀 근거 없는 비난이라고 치부할 수만도 없게 됐다.

일본 정부는 여전히 ‘오염수 처리 기준을 음용 수준에 맞췄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주장하면서 최종적으로 바다에 버릴 오염수의 방사성 물질을 측정하거나 공개할 수는 없다는 자기모순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어떤 물질이 얼마나 수십년간 바다에 버려질지 확인할 방도가 없는 셈이다. 만일 일본의 주장대로 오염수가 안전하고 무해하다면 왜 자국 내에 방류하거나 농업‧공업용수로 쓰지 않고 굳이 바다에 방류하려는 지에 대해 우선 해명해야 할 것이다.

이제 곧 우리나라 시찰단이 일본을 방문할 것이라고 한다. 철저한 검증을 위한 ‘사찰’이 아니라 견학에 가까운 ‘시찰’이라는 점 때문에 이 역시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논란이 일자 정부 당국자는 용어에 집착하지 말라며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에 대한 안전성을 점검한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일본 측은 단순한 시찰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오히려 오염수의 안전성을 입증할 기회로까지 여기고 있다.

시찰을 반기는 일본의 반응과 지금까지 우리 정부의 모호한 태도를 볼 때, 자칫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빌미를 제공하지는 않을지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엄밀한 사찰이나 검증이 아닌 견학 수준의 수박 겉 핥기식 시찰이라면 일본의 들러리 이상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나라의 전문가 시찰단 파견이 일본에 오염수 해양 방류를 위한 명분만 제공하는 게 아닌지, 아니 그런 숨은 의도와 속뜻이 있는 건 아닌지 심히 우려스러운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아무튼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 방류는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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