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空山無人 水流花開(공산무인 수류화개), 빈 산에는 사람이 없는데, 물은 절로 흐르고 꽃은 절로 피누나.”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유명한 시구이다. 자연은 인간의 행위와 상관없이 스스로의 이치에 따라 운행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말이다. 이는 그 자체로서 자연의 조화로운 이상적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구름은 희고 산은 푸르며, 시냇물은 흐르고 바위는 서 있듯이’ 온갖 자연은 스스로 고요한데, 사람의 마음만 공연히 소란스럽다.

사실 자연은 저마다 있을 자리에 있으면서 서로 조화를 이뤄 고요하고 평화로운데 사람들은 마음 편할 날이 없고 몸담고 사는 세상 또한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기실 세상이 시끄럽다는 것도 세상 그 자체가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 즉 우리네 인간사가 시끄럽다는 뜻 아니겠는가.

“落花流水(낙화유수), 흐르는 물에 꽃잎 떨어지누나.”

당나라 시인 고변의 시 ‘방은자불우(訪隱者不遇)’에서 유래한 구절로 겉으로는 아름다운 봄의 경치를 표현하고 있지만 사람의 인위적 개입이 없는 이상적인 자연을 은유하고 있다. 또한 흐르는 물에 떠내려가는 꽃잎을 통해 인생의 덧없음을 노래하기도 한다. 이럴 땐 ‘열흘 붉은 꽃 없다’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과 뜻이 같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 아무리 높은 권세를 가져도 십년, 즉 오랜 세월을 지속하지 못하고 언젠가는 무너지게 돼 있다. 계절의 운행에 따른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도 세상 만물의 기본 원리인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이치를 깨닫고 “물극필반, 기만즉경(物極必反, 器滿則傾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고, 그릇도 가득 차면 넘친다)”의 진리를 알게 된다면 대자연 앞에서 보다 겸손할 수 있으리라.

그렇다면 우리의 산수에서 수류화개(水流花開), 낙화유수(落花流水)가 가장 어울리는 풍광은 어딜까? 화개동천 십리벚꽃길이 딱이다.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섬진강 화개장터에서 시작해 지리산 쌍계사 초입까지 개울따라 오르는 길이 4㎞ 남짓의 꽃길인 화개동천 십리벚꽃길은 걸음걸음 내내 흐르는 개울물에 꽃잎 떨구는 진경산수가 펼쳐진다. 이곳 화개 십리길의 벚나무는 대부분 이미 수령 100년을 족히 넘긴 고목들인데다가 지리산 벽소령 심산유곡에서 섬진강 너른 품으로 흘러내리는 화개동천의 맑은 벽계수와 신라시대 시작된 푸른 녹차밭이 조화를 이뤄 가히 선경의 풍광을 뽐내고 있다.

이백이 그의 시 산중문답(山中問答)에서 묘사한 “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水杳然去),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의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오죽하면 중국의 시진핑 주석까지 이곳을 동쪽나라 별천지 화개동이라 칭했을까.

더구나 상류로 거슬러 오르면 신라 말 최치원 선생이 신선이 돼 청학 타고 날아갔다는 청학동이 있다고 전해온다.

실제 삼신봉 아래 불일폭포 오르는 쌍계계곡이나 범왕리 대성계곡에는 500년 수령의 고목이 된 선생이 꽂아놓은 지팡이며 귀를 씻은 바위며 학을 타고 간 기암의 흔적이 전설과 함께 곳곳에 남아있기도 하다.

고려 말의 대학자인 이인로도 자신의 시 유지리산(遊智異山)을 통해 “무릉도원이 어디냐고 물어보려 하는데, 흐르는 물에 떨어진 꽃잎이 사람을 헤매게 하네(始問仙源何處是 시문선원하처시, 落花流水使人迷 낙화유수사인미)”라며 이곳 화개동천이 흐르는 지리산 골짜기 삼신봉 아래 어디쯤을 신선의 땅(仙源, 무릉도원, 청학동)이라 지목하기도 했다.

“선생은 청학 타고 신선 되어 가버리고/ 던져놓은 지팡이에 꽃 피고 진 세월 오백년/ 국사는 수도하며 불일(佛日)을 살았는데/ 하찮은 이내 몸은 하릴없이 낙수만 바라보네/ 아훼야, 청학동 어디메뇨? 예가 긔 아닐런가.” -불일폭포 앞에서

“벚꽃잎 바람에 날려/ 푸른 차밭 사이 청아한 개울물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 보니/ 옛시 한 구절이 절로 생각나는구나./ 빈 산에 사람 없어도 물 흐르고 꽃은 피고/화개동천 물길 따라 핀 벚꽃/흐르는 물결에 꽃잎 떨구는데/ 반쯤 취한 이내 몸은/ 한가로이 흥얼거리며 홀로 길을 걷는구나.” -화개동천 십리 벚꽃길을 거닐다

화개동천 십리벚꽃길을 걸으면 누구나 시인묵객이 된다. 혹여 모를 일이다. 운 좋으면 고운선생처럼 우화등선(羽化登仙) 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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